
오늘의 오픈 멤버는 세 명이었다. 보통은 둘이 나와 한 명은 홀을 맡고 샐러드 바와 계산대의 시제를 정리하고 한 명은 키친의 납품된 식자재를 정리하며 손님맞이 준비를 한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도 부랴부랴 끝나는데 오늘은 세명이라 여유로웠다. 어? 그러고 보니 세 명 중에 내가 가장 고참이다. 어느새 파스타 집 아르바이트는 4년 차에 접어들었다. 나는 흔치 않게 생긴 시간을 놓치지 않고 묘에게 말을 걸었다. 경험상 선배로서 잡담을 터 주는 게 수다 떨기 편하더라고. 나: 일본에 미얀마 친구는 생겼어요? 조심스럽게 묘가 웃으며 말했다. 묘: 네. 조금 생겼어요. 그는 원래 생소한 발음의 긴 본명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다 외울 수 없어 특징적 음절만 따서 묘라고 불리는 중이다. 묘는 6개..

영어 이전에.. 역시 책이다.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익혀도 대화를 이어가려면 자기 생각이란 걸 해야 하는 법. 그런 걸 가지고 있어야 뭐라도 끄집어 내서 영어가 나온다. 내가 하는 온라인 영어 회화 서비스에 토픽만 100개 표시되는 ‘5분 디스커션’ 이란 게 있다. 추상적인 것부터 어떤 물건까지 미신, 행복, 결혼, 취미, 전자제품 이런 식으로 나열만 되어있는데 내가 고르면 튜터는 정해진 질문을 하면서 영어를 끌어내는 수업이다. 나는 프리토킹인 듯하면서도 아닌 이 수업을 제일 좋아한다. 물론 5분씩 하고 칼 처럼 자르지는 않는다. 25분 동안 주제 하나로 벅찰 때도 많다. 튜터에게는 늘 정해진 질문지가 있어서 그들에게도 참 쉬운 교재일 테고 나는 같은 토픽을 다음에도 고르면 무슨 질문이 올지 미리 아니까..

아르바이트 가는 길이었다. 출근길 피크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사람들 발걸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정확히 계산된 속도로 한치의 변수를 허용하지 않는 결의에 찬 자세들이었다. 구로디지털 단지로 출근하던 서른의 나도 그랬다. 게다가 우리 회사는 8시 30분에 업무시작이라 1분이라도 더 잠을 자기 위해 출근에 필요한 이동 시간은 극도로 빡빡했다. 중간에 생각지도 못한 돌발 상황이 생기면 바로 지각의 나락. 출근길에 정신 집중이 필요한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어폰으로 크게 노래를 들으며 세상과 단절한 채 빠르게 걸었다. 하루는 어떤 중년 여성이 차가 고장 났는지 길거리 사람들에게 애원하듯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말을 걸었다. 사람들은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피해 갔다. 그중에 ..

야구는 모르지만, 아니 모든 스포츠를 모르지만 오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너무너무 좋다. 인간에게 약점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도록 외모도 실력도 성격도 알면 알 수록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가장 큰 매력은 야구밖에 모르는 바보임. 저런 사람을 아들로 두면 어떤 기분이려나. 나는 가끔 평범한 하루를 보면서도 어떻게 내 속에서 저렇게 착한 아이가 나왔을까 경이로울 정도인데 명실공히 세상을 경탄하게 만드는 사람이 자기 아이라면 내내 기분이 어떨까. 얼마 전 오오타니 쇼헤이 구단 이적에 일본이 축제 분위기였다. 10년에 7억 달러 계약. 1019억 엔? 9000억 원? 저런 돈이 어디서 나는 건지 모르겠다. 놀라운 스포츠의 세계였다. 계약 금액에도 놀랐지만 내가 너무 놀랐던 건 뉴스마다 도배..

1. Found 다큐영화중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여성 3명이 뿌리를 찾아주는 전문가와 함께 부모를 찾는 이야기였다. 그 넓은 중국이라니 망망대해 같은 곳에서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추리 영화 요소를 살짝 느끼기도 했다. 2. Our farther 다큐영화원래 이런 종류 안 보고 웃기고 실없는 장르를 좋아하지만 예고편이 강렬해서 본편 때렸다. 살짝 난임치료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딴… 장르의 범죄를… 그렇게 오랫동안 실제로 했다고??? 믿기가 어려워서 내내 어안이 벙벙한 내용이다. 체외수정을 위해 찾아온 환자에게 자신의 정자를 수정시킨 산부인과 의사 이야기. 개소름. 과연 최종적으로 몇 명의 아이가 태어났는지 궁금하시면… 영화를. 3. 일본 드라마 소개일본 드라마도 가뭄에 콩 나듯 가끔 본다. 거창한 이..

2021년 4월에 느닷없이 시작한 영어공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놀랍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걸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렇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열공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은은하게 마치 일상의 BGM처럼 ‘하고’ 있다기보다 이어지고 있다. 내가 했던 온라인 영어 회화 사이트를 소개해도 도움 안될 거 같았는데 이번에 세 번째로 옮긴 온라인 사이트는 한국에서도 서비스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이트가 너무 맘에 들어서 매우 알려주고 싶은 거. 내 말 좀 들어봐요. 이전 서비스에 큰 불만은 없이 잘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신용카드 유효기간이 끝나서 자동 결제가 해제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길 잃어버린 김에 여행하는 식으로 (진짜로 저..

난 일어를 공부할 때도 오른쪽 왼쪽이 (여태) 헷갈리고 영어 공부하면서도 오른쪽 왼쪽이 팍팍 입에서 안 나온다. 왼쪽 오른쪽을 말하는 건 언어영역이 아니라 수리 영역인가? 우뇌 좌뇌하는 그 부분. 하루도 한국말로 왼쪽 오른쪽을 한 번에 맞추지 못한다. 예전에 같은 한국 유학생이 가르쳐 준 팁인데 오른쪽을 뜻하는 미기는 右한자를 떠올리며 右ㅣ 한글로 ㅁㅣ 를 만들어 보라고. 오른쪽=右=미기 이렇게 연상해서 함께 외웠다. ㅋㅋㅋㅋㅋ 영어는 Right 옳은 쪽이니까 =오른쪽이라고 외웠다. ㅋㅋㅋㅋㅋ 그런데 부작용으로 왼쪽은 모두 ‘그 외의 것’으로 분류를 한 번 하고 생각해야 해서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신기하게 좌회전 우회전은 일어로 해서 ‘사세츠’ ‘우세츠’ 바로바로 알아듣고 바로바로 말이 나온다는 것..

국민학교 동창친구를 만났다. 솔직히 친했다고… 말하기엔 어려운… 정도의 교류를 하던 친구였다. 그래도 내 결혼식에도 와 줬고 동창 모임에 항상 빼놓지 않고 얼굴을 봤으니 - 나 사실 도쿄에 있어! 라는 카톡을 받고 - 진짜? 낼 시간 있는데 우리 동네 올래!? 자연스럽게 만날 사이 정도는 된다. 결혼식 이후로 처음이다. 세상에 그것도 벌써 11년 전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아니 솔직히 그전에 어떻게 지냈을까. 나는 이 친구랑 단 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며 처음으로 이 친구의 개인사가 궁금했다. 이건 아예 안 친했다고 봐야 하는 사이일지도 ㅎㅎㅎ 근데 어릴 적 친구라는 게 무서운 것이 마치 살갗처럼 그냥 익숙하고 거리낌이 없었다. 이건 어디에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