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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전에.. 역시 책이다.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익혀도 대화를 이어가려면 자기 생각이란 걸 해야 하는 법. 그런 걸 가지고 있어야 뭐라도 끄집어 내서 영어가 나온다.

내가 하는 온라인 영어 회화 서비스에 토픽만 100개 표시되는 ‘5분 디스커션’ 이란 게 있다. 추상적인 것부터 어떤 물건까지 미신, 행복, 결혼, 취미, 전자제품 이런 식으로 나열만 되어있는데 내가 고르면 튜터는 정해진 질문을 하면서 영어를 끌어내는 수업이다. 나는 프리토킹인 듯하면서도 아닌 이 수업을 제일 좋아한다.

물론 5분씩 하고 칼 처럼 자르지는 않는다. 25분 동안 주제 하나로 벅찰 때도 많다. 튜터에게는 늘 정해진 질문지가 있어서 그들에게도 참 쉬운 교재일 테고 나는 같은 토픽을 다음에도 고르면 무슨 질문이 올지 미리 아니까 평소 혼자 중얼거리며 연습을 해 둘 수도 있다.


근데 이 교재를 쓰면서 다시금 느꼈던 건
영어회화를 할 때 문법과 단어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대화력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 대화력이란 건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있지만 상식과 정보다. 뭐라도 주워들은 게 있어야 그걸 토대로 언어화하는데 너무 흔한 그런 거 말고 가끔은 기발하고 진중하고 획기적인 것으로. 그래야 상대방도 진심으로 감동도 하고 웃음도 짓고 설레며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그리고 더 이럴 때 쓰는 영어 단어가 궁금해지는 것 같다.

한 번은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지어진 백화점은 일본인이 만든 미츠코시 백화점이고 그것이 현재 명동의 심볼 신세계 백화점의 전신이라는 이야기를 영작했다. 튜터는 신세계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전광판 모습을 인스타그램에서 본 적 있다며 신기해했다. 나는 이걸 얼마 전에 빠져 있었던 <경성 탐정 이상> 소설에서 읽고 알았다.

<경성 탐정 이상>은 추리 소설이지만 가상과 실제가 혼재해서 재미가 쏠쏠했다. 실존했던 소설가 구보와 날개의 이상을 등장시킨 것처럼 소설 내내 진짜와 허구가 사건에 맞물려있어서 등장인물이나 소설 배경 설명이 새로 나올 때마다 한참 검색해서 그 시절 역사에 푹 빠졌다가 다시 나와 소설로 돌아오곤 했다. 신세계 백화점이 미치코시 경성지점이었다대?? 그러고 보니 외관이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이랑 상당히 닮은 것도 같았다. 와- 왜 이걸 지금 알았지?

어떤 날은 감정을 주제로 이야기하다가
얼마 전 열심히 읽은 <호르몬과 건강의 비결> (요하네스 뷔머) 책 속 내용을 생각해 냈다. 여성호르몬이며 코르티솔이 내게 주는 변화에 감정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뭐 이런 영작을 시도했던 거 같다. 그러다가 우리는 꽤 오랫동안 호르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단순히 끝날 뻔했던 토픽이었는데 말이다.

참, 그리고 책 다음으로 요즘엔  유튜브 영상에서 얻는 유익함들을 무시할 수 없다. 책을 대신 요점 정리해서 읽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양질의 컨텐츠가 많다. 다 진실만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책도 마찬가지) 보고 느끼는 게 너무 많다. 가끔 보는 정신과 의사들의 채널이 있는데 일본의 정신과 의사와 합동 컨텐츠를 만든 영상이 너무 좋았다. 일본과 한국의 환자 유형? 거기에서 보이는 각 사회의 특이점이 담겨있었다. 양국을 좀 안다 싶은 나는 너무 수긍이 가는 부분이 많아서 무릎을 치며 봤다. 정말 재밌었다.
https://youtu.be/nZexHG4MgxA?si=-hH_tnudkxLjVKj9


아무튼, 영어 회화 시간에 그날의 주제가 Ploblem이었는데 튜터가
What is the major social problem in your country?
이렇게 물었고

The major social problem in my country is that these days, younger people don't want to get married or even get into a relationship and Japanese are usually not sociable, they rather spend time at home alone.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이렇게 대답하려고 노력해서 튜터가 맞는 문법으로 고쳐 준 문장임.

요즘에 일본에서 많이 느끼고 있던 일이었는데 내가 가르치는 한국어 학생 여자분들이 결혼도 연애도 정말 딱 잘라 관심이 없다ㅎㅎㅎ 정말 너무 매력적인데 말이다. 최애만 있으면 된다는 대답. 그러다가 위 동영상에서 크게 납득한 부분이 있었다. 요즘 일본 사람들은 경제활동 이외에 그 어떤 사회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커뮤니티 없음. 커넥션 없음. 그저 개인으로 둥둥 떠 있다고. 그 대신 예전에는 소외 계층이었던 성소수자, 특이한 성향, 정신적으로나 뭐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관대해지는? 현상이 발현되었다. 아니 관심 없으니까 그것이 비난이나 차별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사회 전체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 그냥 그러든지 말든지 관심이 1도 없어진 것이라고.

영상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튜터와 나누면서 신나게 떠들었다. 요즘 사람들을 결혼시키고 싶은 그런 마음이 아니다. 그런 현상이 있다고 나는 들었고 내가 알게 된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전달하고 싶을 뿐. 이 말도 저 말도 영어로 하고 싶은데 이걸 뭐라고 하지!!

역시 사람은 무얼 하든 어떻게든 독서를 이어가야 한다는 깨달음…

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엔 유명하다는 <아비투스>를 소장해서 읽고 있다. 아직 1장이라 그런가 상대적 박탈감만 느끼고 유익한 자극을 주는 책이라는 느낌이 없다. 왠지 그들만의 리그를 보는 느낌이랄까. 과연 이 책 다 읽고 나면 건설적인 충동이 일어나는 걸까. 이걸 기다리는 것 자체가 이미 출생했을 때부터 갖고 태어난 패 때문에 대부분을 포기하며 삶을 바라보는 중인 걸까. 왜 이 책은 자본마다 계속해서 계급적 선을 긋는 것인가. 잔인하다 잔인해. 내가 글러먹었나. 일단 끝까지 잘 읽어볼게요. 좋은 감상을 가지고 계신 분들께 의견을 묻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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