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의 몇 달 동안 나는 아이 공부를 가르치며 본업이 가정교사인 듯 보냈다. 내 블로그를 다 정독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닐 테니 다시 덧붙이자면 내가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시킨 게 아니다. 중학교 입시에 열을 올리는 건 나보다 아이 본인이다. 주변이 다 하니까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도 있고 거기다가 정말 큰 동기가 있는데 어이없게도 도시락을 먹고 싶다는 거다. 공립 중학교는 전부 급식이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사립학교에 가면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 편식이 심한 하루는 못 먹는 음식을 남기면서 초등학교 생활 내내 고통스러운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난 좀 일본이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학비 엄청 비싼 사립 중학교마다 삐까뻔쩍 시설 차려놓고 실력 좋은 선생님 고용해 놓고 왜 밥은 안 해 주는지가 의문..

키자니아 종일권을 사서 갔다 왔다. 무려 장장 12시간의 고행이었다. 이건 하루가 리퀘스트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기 때문에 내 의사는 낄 자리가 없었다. ㅎ__ㅎ 산타 있는 척할 걸… 이런 종류의 희생이 따를 줄이야. 5:24분에 기상했다. 해외여행 갈 때 빼고 이런 시간에 일어 난 적이 없다. 나 해 뜨는 거 보면 흡혈귀처럼 죽는 타입인데… 일어나자마자 관에 들어가고 싶음. 흑흑하루는 아침부터 아드레날린을 뿜으며 눈을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나 흐느적거리며 준비하는 엄마를 북돋고 알아서 아침밥을 차려먹고 전장에 나갈 채비를 마쳤다. 8:30분 오전 1부 입장 시간 30분 먼저 도착했다. 줄 서기 전에 체크인을 미리 하고 번호표를 부여받고 코인 사물함에 겉옷을 넣어놓고 할 게 많다. 자, 입장합니다.집에서..

요즘 부모는 일단 시작부터 을이 된 기분이다. 공부하는 자식 앞에서는 괜히 더 약해진다. 화내지 않고 조곤조곤 아이에게 뭐든 타이를 줄 아는 것이 부모의 기본 소양인 데다가 공부하는 애가 기분 상할라 분노가 날 삼키기 전에 이 상황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아이랑 딜을 할 땐 무슨 거래처에 굽신거리는 영업직이 된 거 같다. 그걸 또 아이가 아는 거 같을 땐 더럽게 약 오른다.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공부 잘해보겠다고 선언한 아들은 내 속으로 나온 새끼란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기특했다. 그래서 공부 방해하지 않게 괜히 기분 상하지 않게 살살 내가 눈치를 보게 되더라? 근데 얘는 불행하게도 말만 번지르르하다. 얘가 불행한 게 아니라 내가 불행하다. 진짜 객관적으로 타고난 공부 머리도 평범한데 의지가 독한..

-하루야, 한자 테스트는 그럼 언제쯤 할 건지 얘기만 해줘. 그걸 정하는 건 하루 마음이고. 진심으로 같이 의논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렇게 말한 건데 갑자기 버럭! 하고 아이의 감정이 날아든다. -아!! 알았어! 지금!! 지금 하면 되지!! 지금 하면 될 거 아냐!! 헐… 얼탱이 없어. 예전의 그 울음이 들어있는 징징이 아니다. 짜증을 넘어 화가 담긴 사내의 외침 같은 느낌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가만히 내가 했던 말을 돌아본다. 그래 네 입장에선 저 말들이 마치 ‘어 널 못 믿어. 난 널 안 믿는 전제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거야.‘ 하는 것처럼 들렸겠구나. 진짜 나는 대충의 시간만 알면 거기에 맞춰 마음의 준비나 스케줄을 짜려고 했던 것뿐인데. 내가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 동안을 노려본다고 오해하고 있나. ..

하루는 발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않았다. 여름에 생긴 물사마귀를 연고로 치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도 처음 알았는데 아이들에게 자주 생기고 대부분 물놀이할 때 옮는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액체질소로 물사마귀 하나하나 지져 없애는 치료만 존재했다. 지진다는 말은 엄밀히 다르다. 뜨거운 게 아니라 반대로 -196도의 저온 질소를 피부에 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알아보니 비보험이지만 미량의 수은이 함유된 물사마귀 연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단점이 있었다. 액체질소 치료는 빠르게 없앨 수 있지만 아프고, 연고 치료는 아프지 않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달을 발라야 한다. 하루에게 선택지를 넘겼다. 연고치료를 골랐다. 정말 약속대로 두 달 열심히 스스로 발라줬고 얼굴과 목 가슴에 퍼져있던 물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