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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하는 여자

미얀마 한국 일본

Dong히 2024. 2. 20. 14:47

오늘의 오픈 멤버는 세 명이었다. 보통은 둘이 나와 한 명은 홀을 맡고 샐러드 바와 계산대의 시제를 정리하고 한 명은 키친의 납품된 식자재를 정리하며 손님맞이 준비를 한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도 부랴부랴 끝나는데 오늘은 세명이라 여유로웠다. 어? 그러고 보니 세 명 중에 내가 가장 고참이다. 어느새 파스타 집 아르바이트는 4년 차에 접어들었다. 나는 흔치 않게 생긴 시간을 놓치지 않고 묘에게 말을 걸었다. 경험상 선배로서 잡담을 터 주는 게 수다 떨기 편하더라고.

나: 일본에 미얀마 친구는 생겼어요?
조심스럽게 묘가 웃으며 말했다.
묘: 네. 조금 생겼어요.

그는 원래 생소한 발음의 긴 본명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다 외울 수 없어 특징적 음절만 따서 묘라고 불리는 중이다. 묘는 6개월 전에 미얀마에서 일본으로 정사원 계약을 하고 이곳에 와 있다.
일본에서 근무하기 위해 2년간 모국에서 일본어를 배웠다고 하는데 너무 훌륭하다… 현지에서 배운 것도 아닌 데다 한자권이 아닌 나라 사람이라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부치에게 말을 걸어 본 건 그날이 거의 처음이었다. 나는 항상 바쁜 점심시간에 3시간만 반짝 일하고 주방에는 갈 일이 없어서 키친 멤버들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이와부치는 21살이었다. 몇 학년이냐고 묻고 실수를 깨달았다. 대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이 가게를 골랐어요? 묻자 그냥 아르바이트면 아무거나 괜찮았다고 한다. 근데 너무 레시피 복잡해서 얼마 안 있어 후회했단다. 관심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지금은 딱히 없어 찾는 중이라고 했다. 찾아지길 기다리는 것 같다고도 했다.

묘는 모국에서 상당히 우수한 인재였고 공부도 적성에 잘 맞았지만 안정적인 직업과 확실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는 공무원밖에 없었는데 그러기엔 모험심이 발동했던 묘는 젊은 시절 뭔가 더 용기 내 볼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일본 회사에 취업하는 루트에 닿았다고 했다.

묘는 정말 놀랄 정도로 일을 빨리 배웠다. 몇 년 간 이 직장을 위해 쏟아부은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가 여느 아르바이트생들이랑은 시작부터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본사 교육팀은 묘에게 항상 칭찬을 쏟았다. 일본인이라면 8개월 걸려 세워 둘 포지션에 묘는 2주 만에 섰다. 내가 어쩜 그렇게 일을 잘하냐고 물으니 못 할 게 뭐 있냐는 듯. 정확한 매뉴얼과 지침이 있는데요. 뭐. 으쓱 강인한 생명력이 담긴 제스처를 했다.
그가 모국에서도 성실하고 재빨라서 무슨 일을 한대도 성과를 인정받을 타입이라고 생각했다.

나: 하긴.. 공무원도 나쁘지 않지만 미얀마 지금 정부가.. 좀 그렇죠..?
묘: 네. 맞아요… 정부 자체가..

이런 대화가 오가자 이와부치가 세이후…(정부) 스고이데쓰네.. 감탄을 흘렸다.
나도 21살 때 이런 대화를 들으면 그냥 막 엄청났을 것이지만 걍 마흔이 되니 아웅산 수지도 알게 되고 쬐끔은 세상 돌아가는 게 (제일 재밌) 들렸을 뿐이다. 그리고 아는 건 그냥 아웅산 수지까지만… 더 깊이 알지도 못한다.

이와부치는  공부하는 건 정말 싫었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 무작정 고향 떠나 상경해 있는 거라고 했다. 그 말에 나도 고등학교 때까지 정말 공부도 못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지만 일본어는 공부가 아니라 그냥 몸에 기술을 익히는 것처럼 익힌 거라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어떻게 외국에 왔냐는 질문에 비행기 표를 사서 타고 처음엔 여행을 왔고 그렇게 조금씩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말 아주 작은 출발이었다고 했다. 상경하는 것이랑 별로 다르지 않다고 했다. 서울은 이미 수도여서 더 이상 상경할 곳이 없으니 외국으로 간 것일 뿐 친구도 아무도 없는 새로운 문화 속에 던져지는 건 매 한 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외국어는 배울 수 있으니까 손해 볼 건 없다는 계산이었다고.

이와부치가 나에게 처음에 외국에 왔을 때 어땠냐고 물었고 묘에게 지금 어떠냐고 물었다. 나랑 묘는 똑같은 말을 했다. 힘들지만 재밌다고. 그 나라 사람들에겐 평범한 일들이 우리에겐 모험이라 재밌었다고.  꿈을 찾는 아니 기다리는 이와부치에게 우리 둘이 외국 경험을 추천했다. 꿈은 딱히 없어도 좋다. 누구나 가져야 하는 의무도 아니고 삶의 목적이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뿐이니까. 외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감이 목적을 계속해서 만들어낼 것이라고. 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아남는다는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스고이데쓰네… 스고이나..
이와부치가 또 말했다.

나도 딱 21살에 도쿄에 사는 경민이랑 스티브를 만났을 때 똑같은 말을 했었다. 시부야의 타베호다이 중국 식당이었는데 호주에서 살다가 일본에 유학하고 있는 스티브랑 뉴질랜드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경민이가 (우린 채팅에서 만나 도쿄에서 번개를 했다)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에서 놀러간 경미랑 내가 진짜 너네 짱이다… (당시 대박이란 말이 아직 없었다. ) 와… 진짜 짱이다.. 이 말을 한 백 번하고 있었던 거 같다.

20년 후에 호주에서 경민이가 와이프랑 도쿄에 놀러 와서 같이 밥을 먹으면서 말했다.
경민 : 나는 너가 도쿄에 와서 살고 나보다 일본말 잘하게 될 줄 진짜 몰랐다. 이제 니 앞에서 일본말 못하겠어~ 인생 참 모를 일이다.
나 :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지. 근데 너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어. 내가 일본에 오게 된 건 널 만나서 받은 자극이 진짜 커.
경민이 아내 : 진짜요? 경민오빠가요?
나: 응~ 난 외국 나가 사는 사람들은 엄청 대단한 줄 알았거든. 근데 뭐 이런 애들도 나가 사는데 ㅋㅋㅋㅋ
경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민이 아내: ㅋㅋㅋㅋㅋㅋㅋㅋ

셋이 밥 먹다 뿜었다. 그냥 경민이가 이런 내 코드 좋아하는 거 아니까 하는 농담이다. 아 백 프로 농담은 아니기도할지도ㅋㅋㅋ 내 또래의 아이들이 거기 가서 있는 모습을 보니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내 미래를 새로운 배경으로 상상해 본 계기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나에겐 그 짧은 우리의 대화가 운명을 바꿀 만남이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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