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 다치면 된장 바르는 세대는 아니었지만 (이모들이 진지하게 그렇게 조언하던 기억은 있음) 빨간약을 집에 두던 시절에 자란 나는 여전히 다친 손가락엔 소독약 바르고 반창고 붙이고 물에 닿지 않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씨게 박혀있다. 과산화수소를 뿌리면 상처부위에 부글부글 거품이 나는 걸 멍하니 쳐다보는 게 참 재미있었지. 이제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까?그리고 언제부턴가 하이드로콜로이드 반창고를 쓰게 됐지만 (일명 ‘메디폼’) 나는 지금껏 그 원리에 대한 이해가 한참 부족했단 걸 알게 됐다. 솔직히 어릴 때 쓰던 소독약+건식 반창고만 있어도 아쉽지 않았고 하이드로콜로이드 반창고가 미덥지 않았고 새로운 정보를 내 안에 업데이트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런데 손가락을 7미리 베이고 이렇게 큰 상처를 하이드로콜로이..

또 징그러운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10년에 한 번씩은 손을 썰고 다니는 나. 이번에도 일하다가 무가 아니라 손을 썰었다. 왠지 무를 썰면서 나 이러다가 손을 다치겠는데라고 생각한 순간 다쳤다. 다행히 손님이 없어 손을 부여잡고 일찍 나와 택시를 탔다. 그런데 아무리 압박을 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다. 택시 안에서 집에서 일하고 있던 케군에게 전화를 했다.-손… 손 잘랐어 ㅠㅠ 너무 아파…케군의 첫마디는 -괜찮아? 보험 되나? 산재받을 수 있대?였다. 내가 여친이었으면 서운했을까? 아줌마라 그런가... 나의 반응은 ‘… 똑똑한데? 회사에 물어봐야겠다.’ 생각했다. 집에 와서 한 시간을 끙끙 앓다가 오후 진료가 시작되자마자 동네 피부과로 달려갔다. 여기는 내가 내성발톱을 수술한 곳이기도 했다. 피부과 선생..

새벽 5시 톡톡 건드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케군이 나갈 채비를 하고 너무 가까이 얼굴을 맞대 또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그날 밤, 요양시설에 계시던 어머님의 호흡이 멈췄다. 2018년 병을 진단받자마자 증상이 시작되셨다. 소뇌가 축소되는 희귀병이었다. 아버님은 그 후 몇 년 간 몰라도 될 걸 알게 돼서 괜히 아프기 시작했다며 건강검진을 탓하셨다. 어머님은 외출을 못하고 누워계시다가 점점 근육이 쇠퇴해서 진짜 거동을 못하게 되셨다. 나는 그때부터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알바를 시작했다. 급속도로 근육을 잃는 어머님을 보고 무서웠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운동 기능을 잃으셨다. 1년 반 전부터 요양시설에 모셨다. 그리고 그날 밤 새벽 4시 반에 호흡을 안 하신다는 간호사의..

사람들 눈치 보고 민폐 안 되게 조심하느라? 배려가 지나쳐서 전체적으로 소심한 문화가 옮아서다? 이렇게 말하는 유투버들을 보고 있자니 납득이가 안 갔다. 집채만 한 몸집을 자랑하듯 다니던 외국인도 거기서 좀 살다 보면 어깨를 자꾸 접고 머리를 조아리며 다니게 되어 있다고 일본만 가면 자존감 박살당하는 듯이 말하는데 그건 좀 아닌 기분이 들었다. 외국 살이 하다 보면 처음엔 원래 소심해진다. 그게 어느 나라건 어떤 사람이건. 언어에 자신감이 없어서 우물쭈물하고 서러움도 생긴다. 근데 유독 일본에 간 외국 사람한테 이런 선입견이 있는 게 나는 아닌 기분이 들었다. 원래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사람들이 도쿄에 많은 건 맞지만 (도쿄에 국한하겠음. 다른 지방? 절대 그렇지 않다.) 안 그런 외국인이 이사와..

지난 번에 날 잡아서 특정 온라인 영어 서비스를 호되게 추앙하며 그게 마치 전부인 양 포스팅했지만… 예. 이제 전 그걸 안 해요. 마흔 넘게 살며 드디어 깨달은 것 중 하나가 내게 영원한 건 없단 것이기 때문에 별로 놀랍지는 않다. (여러분도 적응을 하셨을 거예요) 한 서른 중반부터 포스팅 말미엔 ‘지금은 그렇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추가 조항이 꼭 써 있지 않았나요. 나는 그거 하나 깨달은 걸로도 스스로 성장했구나 되게 기특했다. 자화자찬하는 이 버릇은 개를 못 주는구나. 내가 쓰던 온라인 서비스의 최강점은 아무 때나 레슨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거였는데 회원수가 급증하고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결국 좋은 선생님은 쟁탈해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타 회화 서비스랑 다름없는 예약제에 손을 대야 수..

우연히 발견한 브런치 북이 있다. 울고 부들부들 치를 떨다가 무릎을 치면서도 필력에 감탄 또 감탄하는 중인데 아직 완결이 안 났다. 목요일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몇몇 친구들한테 가르쳐줬다. 내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 싹 다 정독을 하고 나랑 같이 목 빠지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나만 기다릴 땐 매우 약 오르더만 같이 기다리니까 좀 낫구만? ㅋㅋ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도 알려드릴려고요. (심술보 백만개) 이게 다 실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실 겁니다. 급한 일 없을 때 읽기 시작하세요. 시간이 순삭! https://brunch.co.kr/brunchbook/chaeakyoung [연재 브런치북] 고딩엄빠의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원조 “고딩엄빠”입니다. 준비없이 갑자기 어른이 되었기에, 인생을 겪으면서 배웠습니..

대부분의 상황에선 연예인이 연애를 하든 말든 연기만 잘하면 된다. 물론 둘이 만나다가 시간을 갖자 해 놓고 금세 다른 여자 친구랑 하와이에 갔다는 이야기는 한 때 개꿀잼이었다. 그렇다고 막 열 올릴 것까진 없고 팝콘 좀 씹고 싶은 정도. 근데 얼마 전에 어느 연예인의 사생활 때문에 깊은 빡침을 경험했다. 오랜만에 엄청 재밌는 미드 시트콤을 발견해서 정주행을 하고 있었다. 잘생긴 동생이랑 웃긴데 알고 보면 깨알같이 성실하고 맘이 너무 따뜻한 형의 티키타카가 실없이 터지게 만드는 대사가 계속 나왔다. 주인공인 콜트 (동생)보다 루스터 (형) 때문에 푹 빠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드라마였다. 막 동생 구박하는 척하면서 뒤에선 동생이 돈 없어서 다른 지역에 못 가고 있을 때 자기 돈 탈탈 털어서 몰래 돈 대 주고..

벌써 1년 넘게 정기적으로 수업을 예약해 주는 학생이 있다. 30대 초반, 직장인 에리(가명). 마른 몸, 하얀 피부에 항상 손톱 큐티클과 긴 생머리 헤어 트리트먼트까지 꼼꼼하게 관리하는 미인. 베이지색 원톤만 위 아래 세트로 입어도 밋밋하지가 않는데 이유는 얼굴이 악센트이기 때문이다. 원래도 예쁘지만 화장을 어울리게 정말 잘해서 매번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남자보다 최애가 좋고 연애하느라 소모하는 돈과 시간이 있음 한 번이라도 더 한국에 가서 덕질하고 싶다는 그녀. 두어 달 전에 얘기 좀 들어달라며 하소연을 했다. 에리는 온라인으로 하던 한국어 수업이 하나 더 있었다. 한국인 남자 선생님에 한 50대쯤? 2년 정도 이어오고 있었는데 남자 선생님이어도 매번 아내가 화면 뒤에 앉아있어서 끈적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