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독 많은지 아니면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다 가지고 사는지 문득 궁금하다. 일 끝나고 커피 한 잔 마시러 가는 빵집에서 호두 빵을 볼 때마다 부끄럽고 미안한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하루 종일 혼자 애를 보느라 억울함 가득했던 때, 사회에서 고립된 거 같아 열등감이 폭발하고 늘 표정이 온화(하다기 보다 없는) 해 보이는 케군이 퇴근하고 올 때마다 분노와 복수심까지 일던 이상한 시기. 아주 작은 일에도 가을 날 산불처럼 활활 타올라 이성을 잃으면서 지랄맞게 화를 내다가 이건 또 뭐야!! 이런 건 왜 먹지도 않으면서 사 와서 계속 저기 내버려두는 거야!! 하며 애먼 빵을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그때 작은 소리로 “여보짱이 호두 빵 좋아해서 사 온 건데….” 라던 케군. 산불이 잠잠해지고 땅이 꺼져라 ..
하루가 6학년이 되고 가장 큰 변화는 토요일에도 학원에 간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어 수업이 끝나면 혼자 밥도 먹고 네일도 하러 가고 깨알같이 잘 지낼 수 있지만 매주 하루랑 둘이 시아버님 댁에 가던 케군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저렇게 큰 녀석이 둥둥 혼자 떠다니는 것이 어찌나 처량하던지. 나는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주기로 했다. 먼저 탄탄면에 환장하는 케군을 위해 중국집 한 번 뿌셔준다. 나는 탄탄면이 참 별로다. 땅콩을 으깨서 텁텁하게 만든 국물에 알싸한 향료가 끝맛으로 남는 게 어디 하나 맘에 들지 않는다. 마라탕도 어렵다. 원래 태생이 맵찔이라서 스파이스에 약하지만 그나마 고추장은 고향의 맛이라 좋아했던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다른 어느 나라 스파이스 중 새롭게 좋아하게 된 건 없다. ..
시간이 나면 어딜 자꾸 나가자고 하는 거 보니까 얘도 E 성향인 거 같다. 그래서 어디가 가고 싶은데? 산 같은 숲 같은 자연을 보고 싶단다. 동네 식물원은 빨리 문을 닫고… 가 떠올랐다. 도쿄 한복판의 울창하고 우거진 곳. 그러고 보니 나도 제대로 가 본 적이 없네.하라주쿠역은 너무 복잡할 거 같아서 기타산도 역에서 내려 들어갔다. 이거야? 이거 맞지?“응 엄마 너무 좋아. 근데 공기는 별로 생각했던 것만큼 안 좋다.”얼마나 청정한 데를 기대한 것이냐.요즘 자연이 좋다 노래를 한다. 이러다 속세 떠나서 살겠다고 헐벗고 나무뿌리 먹고사는 아저씨 되는 거 아니야. 세상에 이런 일이 나오는 거 아니야.. 아이의 말 몇 마디에도 이상한 걱정이 싹이 트고 또 쑥쑥 소설을 쓴다. 본당에 외국인이 정말 많았다.시부..
쇼핑몰 구경하다가 너무 예쁜 색 조합을 발견했다.너무나 화장이 잘 먹었던 날. 필터 때문이었구나.신오쿠보에서 자주 가던 마카롱 카페가 긴자에도 입점을 했다. 그래 여기 마카롱은 평균레벨을 훨씬 웃도는 맛이었어. 이 정도로 맛있으면 개인 가게를 긴자에 끼워주는군. 마카프레소.오늘은 마카롱이 아니라 두쫀쿠 사러 왔다. 처음으로 두쫀쿠 두 개 사서 케군이랑 하나씩 먹어봤다. 한국에서만 폭발적으로 유행한 이유가 이건가? 나는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너무너무너무 맛있었는데 케군은 그냥 그렇대. 일본에도 없는 건 아닌데 한국처럼 돌풍을 일으키진 않았다. 뭐지? 왜지? 왜 이렇게 미각이 다르지?나도 톤28을 주문했다. 한국만큼 싸지 않았지만 정가보다 훨씬 저렴했다. 이제 진짜 일본 정도는 유행도 유통도 국경이..
공부하다가 지나가는 길에 잠시 찍었다. 매년 가는 식물원에 공부 거리를 들고 하나미를 했다. 제발 엄마 사진 그만 찍고 나랑 같이 공부하자… 개빡친 하루 이렇게 옆에서 사진찍고 있는 거 들켜서 겁나 삐짐그래도 엄마는 올해 사진을 남기겠다.오늘이 내가 제일 젊으니까요!!!공부 그만하고 놀자고 꼬드겼더니 저항없이 넘어왔다.이런 정신상태로 무슨 공부를 한다고-라는 말이 목구멍에 나왔지만 나도 같은 정신 상태였으니까 할 말이 없다. 진짜 나랑 잘 놀아주는 우리 아들도로 교통법을 달달 외운 하루가 자기를 잘 따라오라고 꼭 앞장선다. 듬직하기도 하지만 같잖아죽겠다. 키가 좀 많이 크신 다음에 오세요.
나한테 아직 친구가 남아있는 이유는 내가 먼저 만나자는 말은 잘 못해도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꼬리 치며 바로 뛰어가기 때문인 것 같다. 반드시 언제 만날 수 있는지 빈 스케줄 보내서 고르게 만든다. 처음엔 빈말로 연락했는데 진짜 나는 만나러 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란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신중하고 섬세한 미니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이 조용한 친구가 나를 간택해서 정기적으로 만나자고 해 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울따름. 내가 먼저 만나자고 안 하는 건 주말 평일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승무원이 당연히 훨씬 바쁘겠지 싶어 잠자코 기다리는 것이다. 많이 수다떨고 싶으니까 아침 일찍 불렀다. 미니가 알려 준 카구라자카의 새 도넛 집에서 만났다.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다. 저 수레째 끌고 ..
아니 그건 변함없이 맞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책이 원작인 영화는 대부분 책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역 이용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었다. 그랬더니 그려지지 않았던 비주얼들을 검색해서 눈으로 확인한 후에 납득하면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또 영화보다 훨씬 디테일하고 깊은 세계관이 느껴지니까 두 번 꿀이었다. 해리포터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들이다. 내가 해리포터 책을 다시 들다니. 하루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해리포터 작가가 보낸 내 전용 마케터처럼 수 없이 해리포터 이야기를 해대니까 안되겠다. 그러면서 알게 됐는데 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등장인물이나 장소 같은 건 에 찾아보면 있었다. 해리포터의 세계관을 망라해 놓은 웹 사이트가 존재했다. 심지어 거기에도 없..
품절 대란이라던 국중박 (국립중앙박물관의 준말이 입에 착착 붙어) 소주잔을 가지고 홍이가 왔다. 십 년 만에 도쿄에 왔다. 하도 통화를 많이 해서 그냥 어제 본 친구처럼 편하고 좋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내가 맨날 가는 슈퍼에 길가에 가게에 우리 집 앞에 홍이랑 같이 걷는다는 게 일일이 벅차올랐다. 케군에겐 얼굴이 얼큰하게 달아오르는 소주잔나한테는 책들이랑 파운데이션 퍼프랑 속옷이랑 하루한테는 김이랑 파자마를 이고 지고 가져와줬지만 내가 하루 파자마를 보자마자 이건 내가 입어야겠다고 뺏는 바람에 하루가 홍이 이모가 정말 자기건 김밖에 안 줬냐고 홍이의 사랑을 의심했다. ㅋㅋㅋㅋ 김이라도 감지덕지 받아야지. 항상 일본 오는 내 친구들이 퍼줬더니 배은망덕해졌네 이좌식. 우리가 십 년 만에 만나 같은 거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