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를 시작하고 생기는 경험들은 다양하기 그지 없다. 영어가 또 한 번 나한테 세상은 이렇게 재밌다는 걸 발견하게 만든다. 그날은 영어 회화 학원에서 한국에서 살아봤던 영국 남자 튜터를 만났다. 아직 20대인데 이미 두 나라 취업 유경험자라니 부럽고 신기하도다. 그룹 레슨이었지만 나 말고 아무도 예약자가 없었다. 운 좋게 일대일 수업이 되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화색이 돌며 한국에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개 에피소드 만으로도 긍정이 터지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어 나는 즐겁기 짝이 없었다. 사기 당한 경험도 인생의 거름으로 즉각 응용 가능한 유형이랄까. 보통 몇십년 쯤 흘러야 웃으며 회상할만한 걸 단 몇달 만에 과거형으로 만들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나는 좋아하고 동경..
# 돼지갈비와 밑반찬 내가 방 안에서 코로나와 싸우는 동안 하루는 너무 잘 지냈다. 서녕언니는 인생 두 번짼가. 육아도 잘했다. 입에 침 마르게 대답해야 하는 질문쟁이 하루의 질문을 다 접수 대응. 한국에서 처음 보는 거 투성이라 평소보다 질문력이 3배쯤 상승했었는데 그걸 다 막아내었다. 그리고 무슨 질문을 하든 마지막엔 기승전결로 그러니까 엄마한테 잘해야 돼 엄마가 얼마나 힘들겠어. 한 마디씩 꼭 붙였다. 언니 ㅋㅋㅋㅋㅋ 모든 질문의 결론을 어떻게 그렇게 ㅋㅋㅋ. 그 기술 훔침. 나 대신 하루는 언니네 동네에서 젤 맛있는 갈비를 먹고 너무 맛있었다고 감탄 감탄을 해서 언니랑 형부는 사 줄 맛이 났다고 한다. 여행 끝나고 하루 디지털카메라 사진을 노트북에 저장하면서 갈빗집 사진을 봤는데 먹지도 않았을 밑..
#한국에서 본 신기한 것들 몇년 전 자전거 스탠드를 처음 봤을 땐 아기라서 걸쳐 앉는 게 어려웠다. 이게 뭐라고 여기 걸쳐 앉은 형들이 엄청 멋있어 보였다나? 드디어 성공한 기쁨에 기념사진도 찍어야 한단다. 횡단보도 앞에서 아저씨가 도라지를 팔고 계셨다. 의문의 의자에 앉아. 저 의자의 용도는 혹시 횡단보도 기다리는 동안 쓸 수 있는 노약자용인가? 아저씨 도라지 파는 데 쓰시고 계시는데 ㅎㅎㅎ 근데 아무리 힘에 부쳐도 성격 급한 한국인이 저 의자를 펴고 앉느니 그냥 서서 기다리실 거 같은 느낌도 든다. 신기한 의자였다. (도라지도 아저씨 등산가신 김에 캐 오신 스멜~) 일본 버스 천장에도 벨은 있는데 한국 버스는 훨씬 높다. 하루는 정말 저길 닿는 사람도 있냐면서 놀라워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고등학..
#유모차 체험 낮잠에서 일어난 하나짱과 이동하기 위해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유모차에 타 줄까 샬샬 꼬셔보았더니 하루 오빠야가 밀어주면 타겠대 ㅎㅎ 제법 하루 키가 커서 유모차 밀면서 앞이 보이더라. 서울 거리를 요리조리 밀었다. 턱이 나오면 용쓰다가 엄마한테 SOS를 치고 울퉁 불퉁한 곳은 몰래 이모가 밀다가 하나한테 들키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꿔치기하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 한참 유모차를 끌고 이모네랑 헤어져서 둘이 집에 가는 길에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엄마.. 하루.. 유모차 끄는 게 이렇게 힘든지 태어나서 처음 알았어.. 엄마는 참 힘들었겠다. (ㅋㅋㅋㅋㅋ 입틀막) #츤데레 환전소 인사동에 있는 환전소를 찾았다. 먼저 하루가 용돈으로 받은 2천 엔을 직접 환전하겠다고 했다. -어서 오세요~ 작은..
# 바늘에 실 꿰듯 5년 만에 만나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멀리서 와 줬다. 무지 좋은 차를 운전해서 왔다. 분명히 삼겹살집 아저씨가 주차장 있다고 했는데 건물을 빙글빙글 둘러봐도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들어가서 물어보니 저기가 맞단다. 저긴… 화장실로 가는 복도 아니에요? 일단 뒷 꽁무니를 살살 맞춰서 넣어보기 시작했는데 너무 꼭 끼는 듯한 느낌에 자신 있게 유도를 못하겠다. 내가 왼쪽 오른쪽 왔다 갔다 하며 불안해하자 담배를 피우러 나온 남자 손님 두 분이 “예~ 안 부딪혀요~ 쭉쭉 들어가세요” 도와주셨다. 후진하던 바퀴가 보도블록 턱에 걸리자 나랑 친구는 ‘이거 맞아?‘ 눈빛을 교환하며 순간 얼음. 다시 아저씨 두 분이 “밟아요~ 괜찮아요~” 안심시켜 주셨다. 더더! 더더!! 호령에 맞춰 바..
#아빠를 떨구고 가는 길 오랜만에 하루랑 단 둘이 한국에 간다. 2019년 8월이 마지막이었으니까 4년 만이다. 네 살 아이였던 하루 몸땡이는 여덟 살이 되었지만 한국말도 잘 자라주었는지 두근두근했다. 일요일 케군이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다. 쓸쓸히 차를 빌려서 쓸쓸히 운전해서 쓸쓸히 같이 아침밥을 먹고 공항 검색대에서 헤어졌다. 혼자 우두커니 우릴 들여보내는 케군 모습을 보니까 갑자기 원거리 연애할 때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생각났다. 항상 손을 흔들며 이별해야 했던 공항검색대 앞. 인천과 나리타에서 몇 번이나 눈물범벅으로 출국심사를 받으러 갔었던지. 근데 오늘 난… 들떠서 촐싹대는 생명체를 케어하느라 외롭지 않은데 케군은 다시 혼자 외로웠다.. 혼또니 미안네. #너도 하루니? 나도 하루야 제주항공 탑승 ..
무장을 하고 제일 먼저 국민은행을 찾아갔다. 인사동 너무 좋다. 술집, 밥집, 서점, 찻집, 카페, 옷집 (종각역 지하상가 옷집 많음!!) 은행, 경찰서 (이건 왜 ㅋ) 다 가까워 너무 편리하다. 고객이 아무도 없었다. 여유로운 은행의 모습. 일본은 점심시간이고 뭐고 오전부터 영업 종료까지 은행 창구에서 일을 보려면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절대 온라인 업무 안 하시고 (ATM도 안 쓰시는 분들이 많다) 가게나 회사들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은행 창구 이용해서 업무를 봐야 하는 게 많아 영원히 차례가 돌아오지 않음. 한국은 원래 이렇게 늘 여유로운가? 뭐 하나 인터넷에서 처리할래도 핸드폰 인증 해야 한다는 시스템 때문에 창구를 찾아야 하는 나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차례가 돌아와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