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복날엔 닭을 먹고 일본은 보양식으로 장어를 먹는다. 처음엔 이 비싼 돈을 주고 설탕 발라 구운 생선을 먹는 게 이해가 안 됐지만 점점 장어 먹는 날을 즐기게 되었다. 이건 적응이 아니라 최면에 가깝다. 케군이 술에 취하면 단 걸 찾는 주사가 있다. 그 주사에 가장 덕을 보는 건 하루다. 말차, 녹차, 팥, 얼음 킬러 아이들마다 (특히 남자아이들) 과학 분야 중에 좋아하는 종류가 거의 하나씩은 있는데 생물을 좋아하면 기계는 별로고 별자리 좋아하면 동식물은 별로고 두루두루 좋아하는 아이를 본 적 없는 거 같다. 하루는 화학이나 기계, 날씨 쪽은 엄청 좋아하지만, 생물이랑 별자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 곤충, 벌레는 책에 있는 그림만 보고도 우엑.. 거리며 문제를 풀 정도다. 심지어 식물 뿌리 단면 같..
올해에 해리 포터 전권을 다 읽었다. 나는 그 나이 때 독서에 대한 집념, 흥미 하나도 없었는데 너무 놀랍다. 그리고 상상력이 부족해서 아니 아예 상상 같은 거 할 줄 몰라서 판타지 소설은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진짜 재미가 없었다. 세상에 없는 것들을 글로만 읽고 상상하는 게 너무 귀찮았다. 하루는 소설로 다 읽고 영화도 전부 봤다. 소설이랑 영화가 다른 점을 찾는 게 재밌었단다. 어느 날은 종이에 자기가 아는 주문을 리스트로 만들어서 학교에 가져갔더니 해리포터 마니아 아이들끼리 복사해서 돌려보고 물개처럼 다들 좋아했다고. 너무 순수해 ;ㅁ;하루는 새로 자른 머리가 너무 맘에 들었다. 사방으로 사진을 찍으라고 지시하더니 다음에 미용실 갈 때 이 사진을 보여주자고 한다. 나보다 똑똑하다. 케군의 ..
-엄마 학교에서 준 중요한 종이 (서류) 같은 거 집에 안 주고 가방에 ‘쑤셔 넣은’ 애들 되게 많아. 오오 쑤셔 넣다! 이런 표현 쓰는 한국어 학습자를 본 적이 없다. 구겨 넣다까지는 불가결 한 표현이지만 ‘쑤셔 넣다’는 굳이 쓸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과격하고 지나친 행동을 감정적으로 묘사하려고 기어코 쑤셨다는 말을 고른 것이다. 가끔 하루가 이런 네이티브 면모를 보이면 너무 즐겁다. 어떻게 알았냐면 당연히 내가 과격하고 지나친 행동을 감정적으로 묘사하려고 굳이 썼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하루야 도대체 왜 양말을 이런데 쑤셔 넣는 거야~ 하루야 아니 왜 휴지를 쑤셔 넣고 안 빼! 하루야…. 누가 여기다가 지우개 쑤셔 넣으랬어… 그것도 아주 그냥 산산조각을 내서!!! 등등 수많은 예시를 들어주었지. 이..
고만해 하루야-앵글에 자꾸 먹다 남은 카레 빵 밀어 넣는 좌식.돗자리, 도시락, 군것질 가지고 올해도 동네 식물원에 사쿠라 구경을 갔다. 계속 만발한 꽃잎 위로 비가 계속 내려서 다들 조마조마했는데 잠깐 멈춰준 딱 하루 모두가 사쿠라를 보러 나왔다. 우리도 다 제쳐두고 달려왔다.비록 축축한 잔디에 구름 낀 날이어도 즐거워요.카레 빵 드립 연달아하니까 터짐.하루가 생각해 낸 앵글 with 사쿠라 하루는 해리포터 지금 4편 불의 잔 중간까지 왔어요. 원제목이 Goblet of Fire 란 거 처음 알았다. -엄마 고블렛이 뭐야?-고블렛이.. 뭔데? 어디에 나와?-이거 제목이야.-아 불의 잔의 그 잔이 고블렛인가 뭔가 그거래?고블렛 같이 구글로 찾아보고 컵이랑 고블렛의 차이가 뭔지 읽었다. 비밀의 방은 Ro..
요즘 부모는 일단 시작부터 을이 된 기분이다. 공부하는 자식 앞에서는 괜히 더 약해진다. 화내지 않고 조곤조곤 아이에게 뭐든 타이를 줄 아는 것이 부모의 기본 소양인 데다가 공부하는 애가 기분 상할라 분노가 날 삼키기 전에 이 상황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아이랑 딜을 할 땐 무슨 거래처에 굽신거리는 영업직이 된 거 같다. 그걸 또 아이가 아는 거 같을 땐 더럽게 약 오른다.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공부 잘해보겠다고 선언한 아들은 내 속으로 나온 새끼란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기특했다. 그래서 공부 방해하지 않게 괜히 기분 상하지 않게 살살 내가 눈치를 보게 되더라? 근데 얘는 불행하게도 말만 번지르르하다. 얘가 불행한 게 아니라 내가 불행하다. 진짜 객관적으로 타고난 공부 머리도 평범한데 의지가 독한..
비정규 학습지가 종종 날아온다. 나는 계약 안 했는데… 무료 체험하라는 뜻인가. 사진첩에 볼따구가 도드라진 사진들이 남아있다.어릴 때 사진도 볼따구가 귀여운 사진은 비교적 오래 갖고 있는 거 같다. 생일 포함 새해, 크리스마스, 결혼기념일까지 다 무덤덤한 내가 화이트 데이라고 감흥이 있을 리가 없는데 케군이랑 하루가 꼭 챙겨야 한다며 회전 스시집에 판을 벌렸다. 그냥 얘들이 스시가 먹고 싶은 것뿐이다. 와방 촌스러운 스페셜 케이크가 있어서 먹었다. 너무 촌스러워서 사진 찍은 건데 엄마가 화이트 데이를 기뻐하며 기록하는 줄 알고 엄마 사랑해~ 축하해~하며 부비부비 얼굴을 비벼온다. 이 얼굴까진 덤덤할 수 없지. 크 기여워리모컨 자동차를 자전거에 싣고 공원에 나갔다. 또래 친구들을 그때그때 만들며 일회성 만..
손주들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는 시아버지 집에 하루가 부린 어리광…방 한가득 이(딴) 것을 만들어놨다. 할아버지랑 하루는 비밀기지라고 우기는데노숙텐트임. 하루가 아버님 집에 쌓여있는 박스들로 집을 만들기 시작하자 아버님이 바닥에 돗자리도 깔고 막 전기 선도 연결하고 (아버님 더 신나신 거 확실하다) 안 쓰는 티브이도 전화도 연결하고 라디오, 거울, 손전등빗자루 쓰레받기둘이 꽁냥꽁냥 만든 장난감에쓰레기통까지꽃으로 장식한 창문으로 뭘 자꾸 주문하래. 하루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겠다. 도시 한복판의 복합주택에서 뛰지도 못하는 손주들이 항상 안쓰럽다는 아버님. 하루가 놀러오면 톱질 칼질 망치질 같은 걸 하면서 놀아주셨다. 하루가 만들기나 뚝딱이는 놀이를 좋아하게 된 건 이공계 출신에 설계가 직업이셨던 할..
하: 엄마 오늘 학교에서 윷놀이했어. 학교에서 돌아온 하루가 느닷없이 말했다. 뭐라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본 초등학교에서 다 같이 한국의 전통 놀이를 했다고?? 나: 진짜야? 그… 그걸 어떻게 알고 했어??? 하: 원래…. 다른 시간인데 선생님이 하자고 그래서 다 같이 나가서 했어. 운동장에서. 나: 세상에.. 그걸 어떻게 했지? 선생님은 어떻게 알았대? 케이 컬처 위상을 느껴야 하는 대목인가. 아니면 다양한 나라의 전통놀이 경험해 보는 건가? 윷을 어디서 났지? 와!! 진짜 신기하네!!! 별 상상이 다 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신기한 것이다. 나는 어벙벙하기도 했지만 너무 기뻐서 서랍 안의 잊혀져 있던 윷놀이를 꺼내왔다. 나: 이거 봐. 우리 집에도 있어!!! 엄마가 하루 다섯 살 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