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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에 느닷없이 시작한 영어공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놀랍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걸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렇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열공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은은하게 마치 일상의 BGM처럼 ‘하고’ 있다기보다 이어지고 있다.
내가 했던 온라인 영어 회화 사이트를 소개해도 도움 안될 거 같았는데 이번에 세 번째로 옮긴 온라인 사이트는 한국에서도 서비스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이트가 너무 맘에 들어서 매우 알려주고 싶은 거. 내 말 좀 들어봐요.
이전 서비스에 큰 불만은 없이 잘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신용카드 유효기간이 끝나서 자동 결제가 해제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길 잃어버린 김에 여행하는 식으로 (진짜로 저러진 않음) 그럼 다른 사이트 체험 해 볼까 검색하다 우연히 Native Camp를 발견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됨.
한 달 이용료가 저번 사이트보다 싼데 횟수가 무제한이라고? 이해가 안 갔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일본 어카운트용 요금 : 1달에 6480엔
한국 어카운트용 요금 : 1달에 69800원
지금까지 이용해 본 곳은 25분씩 하루에 한 번 예약이 가능했다. 그게 원래 이 세계 룰이라 생각했다. 근데 하루에 몇 번을 수업해도 괜찮다고? 게다가 예약이 필요 없었다. 많은 이 세계 룰이 무너짐. 대기하고 있는 강사들에게 바로바로 접속해서 헬로~ 바로 토킹이 가능하다는 거다. 막 누르면 영어 하는 사람이 대답한다고. 걍 막 말 걸면 막 영어로 말해줘. 그것도 하루 종일. 크뤠이지. 짧은 체험이지만 확신이 들었다. 가치 있어!
바로 3개월 사용한 후기 들려줌.
9월에 26회
10월에 26회
11월 25일 현재 29회 활용했다.
29회면 한 번에 25분씩 12시간을 영어로 떠든 것이다. 저번 사이트에서는 평균 1달에 16번씩 쓰고 있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영어 수업을 해도 꽤 분발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뽕을 뽑는 이 뿌듯함.
완벽하게 메리트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대기실에 있는 분과 접속하니 (하늘사랑에서 아무 하고나 채팅하는 그 느낌. 귀에 쏙쏙 들어오져?) 같은 튜터를 만날 기회가 너무 없어서 98프로는 처음 만나 매번 자기소개와 나를 알리는 이야기로 물꼬를 터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생각하기 나름인데 내가 먼저 이 수업의 주도권을 가지고 토픽을 미리 생각해 뒀다가 대화를 끌어오면 시간낭비를 줄인다. 가만히 있으면 튜터가 질문을 줄 수밖에 없는데 보통 어디 출신이니, 직업이 뭐니, 일본 남자는 어떠니, 아이가 몇 살이니, 어느 나라 여행 가 봤니. 이런 뻔한 대화가 이어진다. (물론 이 질문에 단련하며 매우 좋은 공부가 되었음) 그러다 보니 지겨움을 타파하기 위해 들어 봐 내가 오늘 이런 말을 들었어. 나는 오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 라며 (살짝 돌은 여자)처럼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스킬이 늘었다.
사족인데 프리토크의 내 통계. (90프로 필리피노, 여성) 20대 튜터는 한국인인데 일본에 산다고 하면 일본남자와 국제 결혼한 정황을 만남에서 결혼까지 풀 스토리로 다 물어보고 싶어 한다. 결혼이 가장 큰 관심사고 국제결혼만큼 아름다운 로망이 없다. 연애했을 때 기분으로 돌아가는 거 같아서 이 대화도 좋아합니다ㅋㅋㅋ
30대 튜터는 가장 관심사가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필리핀 여성들은 결혼이 빠르고 아이를 일찍 낳는 경향이 있어서 같이 육아하고 살림하는 사람이 많았다. 8살 애가 있다고 말하면 아이랑 무슨 말로 대화하는지 자기 시간을 어떻게 확보하고 보내는지 어떤 일을 틈틈이 하는지 무슨 밥 만드는지 아츄 잼난다.
40대 튜터는 좀 더 성장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서 여러 가지 내가 조언을 얻는 경우가 많은데 발음이 알아듣기 어려운 분들이 많아 대부분 선택을 안 한다. 젊은 필리핀 사람들이 본토 발음 미디어에 압도적으로 노출되니까 영어 발음도 확연히 세대차이를 보인다.
가끔 트렌스젠더 필리피노의 경우 25분 꽉꽉 채워 미용얘기한다. 보톡스, 레이저, 마스크 팩, 수분보충, 얼굴요가, 클렌징 할 말 너무 많음.
그리고 남자 튜터랑은 꼭 일본만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 옛날의 드레곤 볼이랑 슬램덩크를 2,30대 필리피노가 100프로 알더라. 그리고 전 연령을 아울러 빠지지 않고 한국 드라마 (케이팝보다는 드라마 관심도가 엄청나다) 이야기를 꼭 한다.
가끔 싱글맘이었던 엄마 이야기가 나오면 수많은 튜터가 우리 집도 그랬다며 필리핀 사람 죄다 별거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 진짜 오버가 아니라 정말 많았다. 필리핀은 종교국가라 이혼은 불법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따로 살거나 다른 파트너와 살거나 형식만 있는 모양이었다.

무제한에 이용료가 저렴한 것 말고도 맘에 드는 포인트, 강사를 검색할 때 연령, 성별 말고도 사람들이 평가해 놓은 특징을 지정할 수 있다.
나는 발음이 좋은 사람으로 지정해 놓았다. 영어는 네이티브한테 배워야 한다며 필리핀 강사에 대해 부정적인 글도 많다. (솔직히 그런 발음이어도 그 정도로 영어 문장이 나왔음 소원이 없겐네) 근데 그것도 옛말이 아닐까. 내 귀가 막귀라 그럴 수도 있지만 젊은 필리핀 강사의 발음에서 아쉬움을 느껴 본 적이 없다! 필리핀 강사 발음을 흠잡는 사람들을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나도 발음이 좋은 강사만 검색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아직 단어가 부족하니 독특한 악센트에 가려지면 더 알아듣지 못하는 탓이다. 아무튼, 저런 검색 옵션하나로 100프로 좋은 발음 강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맘에 들었다. 스트레스가 없어짐.

애니멀 캐릭터를 고를 수도 있는데 ㅋㅋㅋㅋ
목소리도 변조해서 얼마나 귀여분지 중독성………..
이건 부끄러움이 많은 튜터를 위한 사회적 배려가 느껴져서 기분이 좋고 나도 상대방도 너무 이야기하기 쉬워진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밤에 곰돌이랑 이야기하다가 잠들면 되게 좋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자동으로 내 카메라가 작동되는 다른 사이트와는 달리 오디오 수업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몸을 움직이며 전화처럼 떠들 수 있다. 낮에 집안 일 하면서 이제 계속 영어 프리토킹을 한다. 전에는 하루에 한 번 쓸 수 있는 귀중한 25분을 이렇게 막 대충 흘려듣듯 쓴 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집안일하다 단어 하나 줏어 먹으면 그걸로 땡큐. 이 강사와 이야기가 잘 안 맞아도 또 다른 분이랑 수업하면 되니까!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질이 떨어졌을 수는 있어도 사이트 전체의 평가가 현저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인해전술마냥 수업 횟수로 웬만한 불만을 해소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수업시간도 5분 단위로 설정할 수 있다. (최대 25분) 그래서 역에서 집까지 이동하는 15분 거리를 걸으며 나는 네이티브 캠프를 한다. 친구한테 전화 걸듯. ”나 지금 집에 가. 보여줄게. “ 후방 카메라를 켜고 날씨가 어떻네, 여기 공사하네, 육교는 영어로 뭐야? 자전거 대박 많지? 이런 시시콜콜한 말을 하며 걷는다. 이런 영어 회화. 상상만 하던 그 상황. 아무 때나 아 내가 영어로 말 걸면 영어로 대답해 주는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했던 그 시추에이션.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제가 또 단점을 잘 찾아보겠습니다. 근데 아직 뽕만 뽑고 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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