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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다치면 된장 바르는 세대는 아니었지만 (이모들이 진지하게 그렇게 조언하던 기억은 있음) 빨간약을 집에 두던 시절에 자란 나는 여전히 다친 손가락엔 소독약 바르고 반창고 붙이고 물에 닿지 않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씨게 박혀있다. 과산화수소를 뿌리면 상처부위에 부글부글 거품이 나는 걸 멍하니 쳐다보는 게 참 재미있었지. 이제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까?
그리고 언제부턴가 하이드로콜로이드 반창고를 쓰게 됐지만 (일명 ‘메디폼’) 나는 지금껏 그 원리에 대한 이해가 한참 부족했단 걸 알게 됐다. 솔직히 어릴 때 쓰던 소독약+건식 반창고만 있어도 아쉽지 않았고 하이드로콜로이드 반창고가 미덥지 않았고 새로운 정보를 내 안에 업데이트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런데 손가락을 7미리 베이고 이렇게 큰 상처를 하이드로콜로이드로 완벽히 치료하면서 나는 드디어 이 놀라운 발명품에 마음이 활짝 열렸다.
얘는 습윤밴드라는 별칭답게 물에 닿아도 되는 방식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지혈밴드를 습윤밴드로 교체하면서 ‘이제 집안일이나 샤워도 다 하셔도 돼요~’ 하셨다. 오...젠장 정말입니까? 다친 다음 날 왜 그게 되는 거지?
베인 날엔 지혈밴드가 젖으면 안되서 설거지랑 빨래는 케군이 했다. 나 머리도 감겨 줘~ 부탁했더니 옆에 있던 하루가 '엄마! 내가 감겨줄게' 라며 아빠를 넣어두고 날 목욕탕으로 데리고 갔다. 하루는 병든 노모를 보살피듯 구석구석 씻겨주고 엄마 어디 더 헹구고 싶은 데는 없어? 자상하기 그지없었다. 딸을 키우는 기분은 이런 걸까. 우리 아들은 자주 딸 같을 때 있어서 약간 상상이 된다.
근데 이튿날부터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
왜지..? 왜 물에 젖어도 괜찮지..?
이제야 하이드로콜로이드의 제대로 된 사용법과 원리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이 녀석 1980년대에 개발돼서 나랑 나이도 비슷한 게 아닌가. 생각보다 오래됐네... 제일 내가 미덥지 않았던 건 이걸 붙일 거면 소독을 안 해도 된다는 점이었다. 소독한 부위에 감염되지 말라고 반창고를 붙였던 거 같은데 물로만 씻으라니... 공부는 귀찮고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원래 알던 거랑 너무 상충되니까 자꾸 거부감이 드는 거였다.
하지만 피를 3시간 쏟고 나니 각잡고 찾아볼 마음이 생기더이다. 살갗색을 가진 얘는 모든 것이 다 피부 같았다. 상처부위에 붙이면 진물이 나오면서 하얗게 부푸는데 그 삼출물이 새포재생도 시키면서 세균감염도 막기 때문에 상처 부위의 소독도 필요 없는 거였다. 딱지 아래 일어나는 일들이 살색 고무 같은 얘 밑에서 일어났다. 근데 우리가 상처 입은 후에 흉터가 생기는 이유는 상처를 입어서가 아니라 딱지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딱지는 사실 생략 가능하다면 생략하는 편이 우리 피부에 이득이었다. 그걸 가능하게 해 주는 게 하이드로콜로이드이고 딱지가 없으니까 정말 너무나 깨끗이 낫고 새살만 재생되는 것이다. 모르고 썼을 땐 얘도 괜찮네~ 나쁘지 않네 그랬는데 알고 쓰니까 이건 뭐 빅 발견. 인류의 승리.. 와- 전율이 일었다.
선생님 지시대로 매일매일 상처를 깨끗한 물로 씻고 새로운 걸로 갈아줬다. 한 달 쯤 됐을 땐가? 진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퉁퉁 불은 손가락 주변의 피부가 양파처럼 겹겹히 떨어져 나가더니 어느 날은 훌렁? 하고 손가락만 한 손가락이 탈피를 했다. 헉! 내 송꾸락이지만 너무 징그럽고 이상했다. 사람은 매일 피부 각질이 조금씩 떨어져 나간댔는데 그걸 못하게 막고 있다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광경을 본 건가?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놀라운 일은 그 다음이었다.
나는 손톱주변을 손톱으로 뜯는 악습이 있다. 그래서 늘 딱딱하게 굳은살이 있고 피부가 벗겨져 빨개 보이고 항상 못살게 괴롭힌 흔적이 많은 못생긴 손이었는데 한 달은 아무짓도 당하지 않은 데다 탈피까지 마친 내 오른쪽 검지 손가락 하나가… 갓 태어난 손가락을 하고 있었다…

너무 소중해…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이런 손가락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하이드로콜로이드에 대한 납득뿐만 아니라 아 놔... 이걸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다는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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