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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눈치 보고 민폐 안 되게 조심하느라? 배려가 지나쳐서 전체적으로 소심한 문화가 옮아서다? 이렇게 말하는 유투버들을 보고 있자니 납득이가 안 갔다. 집채만 한 몸집을 자랑하듯 다니던 외국인도 거기서 좀 살다 보면 어깨를 자꾸 접고 머리를 조아리며 다니게 되어 있다고 일본만 가면 자존감 박살당하는 듯이 말하는데 그건 좀 아닌 기분이 들었다. 외국 살이 하다 보면 처음엔 원래 소심해진다. 그게 어느 나라건 어떤 사람이건. 언어에 자신감이 없어서 우물쭈물하고 서러움도 생긴다. 근데 유독 일본에 간 외국 사람한테 이런 선입견이 있는 게 나는 아닌 기분이 들었다.
원래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사람들이 도쿄에 많은 건 맞지만 (도쿄에 국한하겠음. 다른 지방? 절대 그렇지 않다.) 안 그런 외국인이 이사와서 몇 년 산 걸로 그렇게 달라지지 않는다. 언어만 습득해 봐. 우린 웬만해선 그렇게 쉽게 개조되지 않는다고. 우린 상당하다고. 17년 살아보니 누를래야 누를 수 없는 본연이 내가 나오게 되어있더라.
그러다가 오늘 알았다. 커다란 외국인들이 항상 몸을 접고 종종거리며 다닌다 하는 그 이유를. 동네가 개 좁은 거다. 이놈의 도시가 어딜 가도 사람이며 물건으로 버글버글버글버글. 집도 좁고 도로도 좁고 차 안도 좁고 지하철 통로 가게 식당 학원 다 너무나. 한국에 갔다 오니까 그 차이가 몸으로 느껴졌다.
붐비는 역앞의 인구밀도는 비슷하다. 서울역 앞이나 신주쿠 역 근처는 비슷했다. 서울에 살 땐 강남, 명동 그런덴 우리가 각오하고 가니까 좀 참다가 집 근처에 오면 해소됐다. 근데 도쿄에서의 생활은 더 사사건건 누누이 빈번히 압박감을 느끼는 환경이다.
Chat GPT한테 구체적인 면적에 대한 질문을 해 봤다.
서울의 대형마트 예를들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통로 평균 폭은 보통 2.5미터에서 4미터라고 한다. 입구 쪽 사람이 몰리는 곳은 다섯 배나 열 배 가까이 공간이 확 트이게 해 놨다.
근데 이런 데가... 도쿄는 개좁다.
도쿄의 슈퍼마켓 통로의 평균 폭은 대체로 1.5미터에서 2미터 사이다. 벌써 반으로 줄었는데 실제로 슈퍼에 가 보면 바닥에 이것저것 물건들을 쌓아놔서 체감 통로는 1미터도 안된다. 양쪽에 사람들이 교차할 수 있도록 2명은 들어가게 설계를 해 놔야 될 거 아냐? 이것들은 도쿄 사람들은 항상 양보하고 어깨 안 부딪히게 알아서 접고 다니니까 그걸 믿고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공간만 남겨둔다. 입구도 좁다. 한 줄로 서서 들어가야 한다. 카트나 장바구니 자체가 엄청 작다. 한국 카트 보고 일본 카트를 보면 애들 소꿉놀이 장난감처럼 느껴질 것이다. 사람이 어깨를 접어야 밀 수 있는 크기다.
다른 것도 추가로 물어봤음.
스타벅스 테이블 사이즈
도쿄의 경우
1. 일반적인 테이블 사이즈
- 1인용 테이블: 보통 40cm × 40cm 정도의 크기입니다. 이 크기는 커피와 작은 디저트를 놓기에 충분하지만, 여유 공간을 제공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좁습니다.
- 2인용 테이블: 2명이 앉을 수 있는 사이즈는 대체로 60cm × 60cm 정도입니다. 공간을 조금 더 활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지만, 여전히 좁은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2인용 테이블이 있는 매장이 별로 없다. 거의 40x40짜리 테이블이다.
서울의 경우
1. 일반적인 테이블 사이즈
- 1인용 테이블: 대체로 50cm × 50cm 크기가 일반적입니다. 이 크기는 커피와 간단한 음료, 디저트 등을 놓을 수 있고, 개인적인 작업을 하기에 적당한 크기입니다. 테이블 간의 간격도 비교적 넓게 배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2인용 테이블: 2명이 앉을 수 있는 사이즈는 보통 60cm × 60cm에서 70cm × 70cm 정도입니다. 2명이 앉아서 음료를 즐기거나 대화를 나누기에 충분한 크기입니다. 더 넓은 테이블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정도 크기가 표준입니다.
반대로 한국에 일인용 테이블보다 엄청 큰 테이블 많이 봄. 그리고 도쿄는 스타벅스가 아닌 다른 커피 체인점도 다 테이블이 저렇다.
얼마 전에 이케부꾸로 맥도널드에 잠깐 들어갔다. 테이블 간격이 너무 좁아 옆 사람 머리카락이 나한테 닿을 거 같았다. 근데 남의 머리카락이 닿는 건 너무 싫잖아!!! 어깨!! 접어!!! 으아!!!! 주위를 둘러보니 햄버거는 양손으로 잡고 입에 넣어야 하는 메뉴일 텐데 사람들이 하나같이 어깨를 접고 간사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로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옆 사람이 다 먹고 나갈 땐 내게 바짝 엉덩이를 보여주며 겨우겨우 퇴장해야 한다. 나도 나갈 땐 내 옆 테이블에 엉덩이를 뽐내며 나가지.. 흑흑...
라멘이나 햄버거 규동, 정식집 같은 저렴한 서민음식을 도쿄에서 먹을 땐 도서관 책꽂이처럼 꽂혀 당연히 어깨를 접어야 한다. 일면식도 없는 옆자리와의 간격이 진짜 상상을 초월한다.(애도 생길 거 같음) 라멘 먹기 전에 머리를 묶을 때도 절대 양팔을 벌리지 않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묶어야 할 정도다. (집에서 묶던대로 묶음 옆 사람한테 엘보 어택 날릴 수 있음)
살다 한 번씩 날 잡아가는 그런 데가 미어터지는 건 문제가 안된다. 이렇게 매일매일 피할 수 없이 가야 하는 생활권에서 굉장한 인구 밀도를 끊임없이 경험한다. 우리 동네는 신주쿠나 시부야 같은 곳이 아니고 내가 가는 슈퍼는 그냥 비관광지역의 역에서 10분 넘게 걸어야 하는 곳인데도 말이다.
코딱지 만한 가게 안에 다 갖추려고 빼곡히 채운 물건, 물건, 일렬로 줄 서서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게, 끝없이 마주치는 사람들, 좁은 통로도로도 알아서 피해 가는 본성들을 믿고 억지로 만들어 놓은 모양새들에 오늘 좀 짜증 났다. 편의점, 슈퍼, 백엔샵, 뿐만 아니라 은행, 백화점, 카페, 심지어 긴자 고급 부티크 샵도 좁다. 탁 트인 곳을 여행가지 않는 한 내 생활권 안에선 볼 수가 없다.
사람들이 주눅 들거나 의기소침해서 어깨를 접고 다니는 게 아니라 그냥 물리적으로 부딪히지 않으려고 움츠리는 거였다. 오래 살다 보니 이게 더 와닿는 이유다.
이렇게 인구밀도가 높는데 누가 지나오면 누구라도 움찔움찔하고 살살 피하게 되어있는 거지 덤벼봐라 이러면서 어깨빵하고 지나가는 나라 사람들이 어디 있냐는.
나는 사람 없는 심야의 서울을 친구나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며 걷는 걸 좋아했다. 그럴 수 있었다. 같은 도쿄라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인구 밀집도가 달라지긴 하다. 근데 서울과는 달리 밤이 되면 도쿄에서 중년은 할 게 없다. 이것도 좀 서글펐다. 코로나 때, 그 많던 사람들이 도쿄에서 사라졌을 때 나는 숨을 크게 쉬며 다닌 기억이 난다. 한산한 도쿄가 짜릿했다. 그래.. 그거 하나 좋았지.
도쿄에 오면 아 내가 지금 슈퍼 마리오 카트를 타고 있구나 생각해야 한다. 항상 큰 역에 가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다닌다. (다른 사람이랑 부딪힐 때마다 하트 하나씩 깨진다고 생각함. 한 번도 안 부딪히면 레벨 업임.)
서울처럼 다 있고 재밌는 데가 어딨 다고 엄마는 왜 자꾸 나이 들면 시골 가서 살고 싶다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내가 나이 들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도쿄가 좀 해도 해도 너무 한 것도 있다.
도쿄살이 조건 : 국적 불문 어깨 폴딩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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