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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 넘게 정기적으로 수업을 예약해 주는 학생이 있다. 30대 초반, 직장인 에리(가명). 마른 몸, 하얀 피부에 항상 손톱 큐티클과 긴 생머리 헤어 트리트먼트까지 꼼꼼하게 관리하는 미인. 베이지색 원톤만 위 아래 세트로 입어도 밋밋하지가 않는데 이유는 얼굴이 악센트이기 때문이다. 원래도 예쁘지만 화장을 어울리게 정말 잘해서 매번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남자보다 최애가 좋고 연애하느라 소모하는 돈과 시간이 있음 한 번이라도 더 한국에 가서 덕질하고 싶다는 그녀.

두어 달 전에 얘기 좀 들어달라며 하소연을 했다. 에리는 온라인으로 하던 한국어 수업이 하나 더 있었다. 한국인 남자 선생님에 한 50대쯤? 2년 정도 이어오고 있었는데 남자 선생님이어도 매번 아내가 화면 뒤에 앉아있어서 끈적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부인이 자궁암인가…유방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시작 된 끈적한 연락.

온라인이 아니라 대면 수업을 하자고 하자고… 2년이나 배워 온 선생님이라 찝찝하지만 나갔고 수업 후에 밥먹자는 걸 뿌리쳤더니 자기가 에리짱에게 도움될 거 같은 책을 샀으니 한번 더 만나자고… 단칼에 거절하기 뭐해서 책만 받고 오려고 갔더니 부인이 죽고 힘들었던 그 시간에 에리짱의 위로가 큰 힘이 되서 고맙다나 선물한다는 책은 들고 오지도 않았다.

아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50대 걍 길에 채일 거 같은 아저씨 보다 더 구수한 취향에 기름지게 생겼는데 (사진 봄) 왜 자기가 이 조합이 될 거 같은 건데!!! 어느 포인트에서 희망을 본 건데!!! 자존감이 높다못해 미친거야? 사후세계 안 믿지만 먼저 간 부인이이걸 알고 저승에서 이를 갈았음 좋겠다. 아 진짜 말만 들어도 느글거리고 소름이 돋았다. 에리짱은 한국인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지 않았지만 (아마 들었겠지) 잠시 남자 불신, 인간에 대한 환멸이 느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조언을 했다. INFJ의 에리는 못할 거 같다고 했다. 더 치근덕대면 내가 한국어로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할테니 도와주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 말만으로도 너무 고맙다대. 하아.. 착한 기집애.
몇 주후에 다시 만난 에리는 연락 다 씹고 별 일 없이 지내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수업료는 냈는데 아직 못한 2회차 수업이 버려졌지만… (ㅠㅠ 맙소사)

이 사람들 머릿 속은 이런 거 같다.
보낸 톡에 대답한다 - 그린 라이트
만나자니까 약속 장소에 나온다 - 그린 라이트
전화 하면 받는다 - 그린 라이트
인간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거랑 이성적 호감을 아예 구분 못한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걸 요즘 되게 많이 발견한다. 똑같은 톡을 봐도 행간의 의미를 한개도!! 이해 못하더라고. 진짜 이걸 잘 알아차리는 남자가 정말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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