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작 몇 달전 일인데 참 아기다. 이것 저것 아침에 밥을 차려놔도 편식이 심하고 미소시루를 마실 기분이 아니네. 별로 안 배고프네. 내 마음만 상해서 전자렌지 사용법을 가르쳐줬다. 간장 바른 냉동 야끼 오니기리 하나를 데워 먹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가 학교에 가겠다며 (밥 대충 빨리 먹고 텔레비전 보면서 준비하고 학교가고 싶은 하루) 일어나지 말란다. 하루가 알아서 밥 먹고 옷을 다 입을 때까지 자다가 느즈막히 일어나서 물통 챙겨주고 안녕~ 배웅만 해주게 되었다. 왠지 중학교 가면 매일 도시락싸느라 새벽같이 일어나야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원래 인생이 공평한 법이니까. 같이 ‘카모메 식당’ 영화를 보고 거기에 등장하는 시나몬 롤이 너무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시켜줬다. 운동부족인 두 ..

100엔샵에서 그릇만들게 점토 사 달라길래 도예 체험이 없을까 찾아 봤다. (집에 점토 들러 붙는게 싫었던 이기적이고 못된 애미...) 하루는 자기가 만든 그릇에 진짜 따뜻한 밥을 담을 수 있냐고 한 열 다섯 번 확인하고 나서도 반신반의한 얼굴로 따라나섰다. 허당 애미는 엄청 멀리도 예약하고 말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탔다. 일찍 도착해서 애매한 시간을 메꾸려고 아이스크림을 사 주고는 다 먹기도 전에 이제 시간 없다고 재촉하는 이럴거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를 말지 상황을 만드는 나 진짜 반성합니다. 나는 왜 이런 작은 일들부터 이렇게 어른스럽지 못할까 사스가 (역시) 에비수.. 역하고 상당히 떨어진 주택가였는데도 맛집 멋집 밀집 되있기로 유명한 곳이라 우연히 들어 간 곳도 분위기가 좋았다. 반려 동..

100엔샵에서 나를 엄청 졸라 꽃가루 박을 사더니 엄마 생일상 차려주려는 거였다. 위에 금색 동그라미에 밑으로 나있는 끈을 당겨 도르르르 ‘축하합니다’ 라는 글씨가 굴러떨어졌다. 이 박을 일본말로 くすだま쿠스다마 라고 하는데 동서가 듣더니 “쿠스다마로 축하해줬어? しぶいね〜” 라고해서 쿠스다마가 가진 이미지를 나도 처음 배웠다. 시부이라는 형용사는 늙은이 같다. 중후하다. 연식있다. 애늙은이 같다.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은 뜻의 늙은 느낌을 말한다. 한국말로는 요즘 세대 같지 않은 멋을 뭐라고 수식할 수 있지? 화이트보드에도 엄마 40살 축하해. 이제 만나이도 마흔을 찍어버렸다. 내 깊은 슬픔을 알 턱이 없이 하루는 계속 축하하고. 이때가 아니면 이런 장난은 못하지. 아주 맛있는 얼굴을 하고 신나게 폭죽을..

엄마와 관련된 말들을 엮어보는 건데. やさしい 착하다 (오.. 의왼데) おとな 어른 (뭔데… 더 생각해봐 그렇게 없어?) いちばんすきなひと 제일 좋아하는 사람 (엄마두..) いきてる 살아있음 ( 엌ㅋㅋㅋ 심하게 고갈됐구나) 젤리 같은 장난감 만들기 이벤트에 참가했는데 한국제품이었다. -엇 한국 장난감이였어요? -네 저희 에디슨 회사 사장님이 한국제품을 여러가지 수입하고 있거든요 수저세트로도 유명하고 직원분은 째끔씩 한국말로 말을 걸어주셨다. 요즘은 문화적으로 단지 비지니스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맨날 하루한테 하는 당부가 이거다. “한국말로 하면 아무도 모를 줄 알고 막 함부러 무례한 말 하면 안 돼. 하루야 네 뒤에도 네 옆에도 모두 한국말을 공부하고 있어.” (공포영화도 아니고 ㅋㅋㅋ) 차가 ..

주말엔 좋아하는 후리카케를 뿌려서 혼자 오니기리를 만들어 먹는 아들. 자취생 스멜 물씬. 넘나 기특하기도 하고… 이건 엄마가 주는 건강식 (야채가 잔뜩 들어간 미소시루 국이나 나물 등등)이 먹고 싶지 않아서 알아서 차려 먹는 척 선수를 친다고도 할 수 있다. 알지만…. 나도 너무 편하다.. ;ㅂ;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하나비’란 즐거움을 잃어버린 일본. 얼마 살 지 않아 본 아이도 책이나 사진에서 여름=하나비 공식을 하도 본 탓에 여름만 되면 불꽃놀이를 그리워한다. 요란하지 않은 불꽃을 사서 베란다로 나갔다. 나는 거실 테이블에 빨래를 개키며 그 모습을 바라봤는데 처량.. ‘센코우 하나비’가 사그라드는 과정을 볼 때 누구나 똑같은 얼굴이 되는구나. 혼자 피식 웃었다. 90년대 일본 대중가요 러브송 뮤비..

슬슬 외모에 신경쓰시나봐. 모자를 사 달랜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멋부렸다!!! 낯설다 ㅎㅎㅎ 울애기 이러는 거 라멘 먹을 땐 벗어두자 했더니 뒤로 쓰면 된대요. 엄마에게 사랑해. 내일 프로그래밍학원 끝나면 점심 밥 뭐 먹을까? 하루는 아직 생각 중이야. 내용도 알차고 일러스트도 있네. 앞머리가 너무 대머리라 내가 앞머리만 채워서 그려넣음 (앞머리에 집착하는 정신병자엄맠ㅋㅋㅋㅋ) 이건 바닷 속 숫자가 높을 수록 바다 깊은 곳이고 0인 곳의 해수면에는 튜브를 타고 노는 아이가 있음 아래로 내려갈 수록 문어, 오징어, 해파리, 물고기, 가장 아래 미역이 있다. 오오… 납득이 가는 그림. 둥둥이 이모는 화장품 뿐만아니라 귀한 한글 학습지도 보내줬다. 어려운 거 쉬운 거 골고루 보내줌 센스센스. 진보..

발꼬닥 꺄물고 싶다. 미슈까루 먹고 있는 해루. 파슈타 먹고 있는 해루. 학교에서 지구 환경을 위한 포스터 작품 응모전이 있었다. 뭐든지 참가해보는 건 좋은거지. 응원해 주기로 했다. 같이 포스터 그리는 요령같은 걸 유투브에서 보고 멀리서도 알기쉬운 색을 쓰고 간단하고 명료하게 그리고 글씨는 자로 칸을 만들어서 균일하게 쓰면 좋고 여러가지 팁을 얻었다. 냄비 뚜껑 뒤집어서 동그라미 도와주고 정말 내가 도와 준 건 그거 뿐!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그림이 나왔다! 케군한테 보여줬더니 엄마가 다 해 준 건 의미가 없을거 같은데? 하면서 걱정을 했다. 아니!! 진짜 이거 하루가 한 거야! -지구가 이빨닦으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이빨 닦는 거 같으니까 그건 어때? 지구 사진 좀 보여줘 엄마. 색깔 잘 보..

전날 밤 단단히 준비를 하고옷도 쫙 빼 입고단 둘이 어색하고 쑥쓰럽게 학교를 향했다.나도 하루도 첫 경험인 일본 소학교.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1명만 출석할 수 있었고 서류다 교과서다 짧은 시간 안에 할 일이 많아서 제대로 사진도 못 찍어줬다. 선생님 소개받고 교실에 가 봤더니 내가 다닌 국민학교 교실 그 모습 그대로여서 얼마나 일제 잔재 속에 자라왔는지 슬프면서도 나랑 내 아들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솔직히 좀 좋기도 한 복잡한 느낌이 뽷 왔다 갔다. 일일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이제 살면서 느끼기도 했으니까. 의자는 그냥 의자고, 실내화는 그냥 실내화고, 교실은 교실일 뿐이다. 볕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이 곳에서 그저 행복한 상상만 가득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