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1년에 대여섯 번 초등학교 공개 수업이 있다. 마지막에 참관한 시간은 국어시간이었다. 1년을 뒤돌아보고 제일 기억에 남았던 수업이나 경험에 대해 작문을 하고 발표시간이 되었다. "제일 먼저 발표해 볼 사람" 모두가 주저하고 있는 교실에서 하루가 손을 들었다. (오오오오!!! 이런 게 된다고??? 이런 면모가 있다고????!!) 맨 손으로 단상에 나온 하루에게 선생님이 원고는? 원고는 안 가지고 올 거야? 하며 걱정 반 지도 반의 심정으로 물으셨다. 아마도 스무 명 정도의 보호자 모두 교실 뒤편에 서서 나와 같은 맘으로 걱정했을 것이다. "귀찮으니까 됐어요~ " 하루가 뺀질거린다. 아이고- 이거 괜찮을까. 손을 번쩍 들었을 때 잠깐 기특했던 마음이 갑자기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을 뒤엎고 ..
누운 하루가 정말 길다. 남의 애가 훌쩍훌쩍 큰다던데 매일 보는데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우리 애가 너무너무 빨리 큰다. 치과에서 나오면서 무슨 바람일까. -엄마, 하루 삼학년 되면 지금 먹는 간식의 반으로 줄일거야. 설탕 많은 거 대신에 좀 건강한 걸로 먹어야겠어. -기특한 생각을 했네. 왜 내일 당장이 아니고 3학년이 되면인지 이건 그냥 해 본 소리가 될 확률 90프로라고 맘 속으로 생각하면서 기대하지 않는 내 모습이 내심 맘에 들었다. 아이랑 가장 잘 지내려면 아이한테 기대만 안 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남편에게도 직장 동료랑 친구한테도... 그렇긴 하군. 여기 치과는 진료가 끝나면 지우개 하나 주신다. 오늘은 헬리콥터 모양을 골라 버스를 탔다. -하루야 이 버스 싸다. 오늘은 반 값이래. 이런..
오늘의 먹부림은 아사쿠사. 이란 책을 읽고 이제 슬슬 하루의 일상 포스팅을 없앨 시기다 느껴졌다. 다음에 재탕 삼탕 나들이할 목적으로만 남겨야겠다. 왜냐면 결국 우리가 뭐 먹으러 다녔나를 늘어놓는 하루 일상 포스팅이 되어가고 있더라고~ 그래서 이날은 뭘 먹었냐면 아사쿠사 백화점 루프탑에 있는 바비큐 비어 가든. 해가 져도 습하고 더웠지만 뜨듯… 한 느낌이라 참을만했다. 무엇보다도 아사히 맥주 빌딩을 마주하며 와인 (달달한 칵테일 느낌) 한 잔 하는 게 기분이 좋아서. 여기가 케군과 나의 첫 데이트 장소, 유람선 선착장이었는데. 날씬하던 남친님은 어디가셨어여? 술을 마시면 먹깨비가 되는 케군. 다시 디저트 먹으러 가자며 마구 꼬신다. 하루는 좋아 죽는다. 우린 또 술김에 난 취하지도 않았는데 단거라면 환장..
엄마 하루가 엄청난 거 발견했어. 봐봐. 젤리를 입에 붙일 수 있어. 오. 대대손손 내려오는 그 기술을 연마하다니. 근데 왜 눈을 그렇게 뒤집는 걸까. 전엔 근처에만 와도 벌벌 떨던 개미를 맨 손으로 잡아서 플라스틱 통에 하루가 넣었다. 그리고 경사에서 굴리기. 뜨아! 살짝 경악스러워서 못하게 했다. 자연과 함께 놀고 막 자연과 어우러지고 좋은 거 맞는데 이건 아닌 거 같애... 말린 거 잘한 거 맞죠? 할아버지가 쓰다가 버린 갤럭시 스마트폰을 (할아버지는 시계나 보라고 주신 건데) 가져와서 꾸역꾸역 게임을 다운로드해서 악착같이 하고 있다. 갤럭시는 거의 골동품 수준의 모델인데 아무리 로딩이 오래 걸려도 아무리 멈춰도 끈기 있게 기다리는 아이. 게임을 하고자 하는 그 의지도 놀랍고 그래도 굴러가는 삼성폰..
-엄마 고속도로도 에디슨이 발명한 거야 -엄마 자전거에도 자동차처럼 수신호가 있는 거 알아? 진심으로 놀라운 정보를 가르쳐주는 일이 많아져서 연기가 아니라 오!!! 진짜? 하고 찐 리액션 할 수 있어졌다. 요즘 크레용 신짱 (짱구는 못 말려)가 자주 먹는 초코비 과자에 빠져서 저것만 먹고 스티커 모으는 중 볼이 흘러내려쪙 할아버지가 준 세배 돈으로 산 첫 리모컨 카가 고장 났다. 어린이날 뭘 사줄까 하다가 그냥 2천엔 돈으로 줬더니 한 푼 두 푼 모은 소지금이랑 합쳐서 좀 더 힘 있는 사륜구동 리모컨 카를 장만했다. 나는 지난번 자동차가 살짝 듣보잡 메이커라 쉽게 고장 난 거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어서 이번에는 건담 만드는 반다이 회사에서 나오는 걸 사자고 했다. 산 날 바로 공원으로 달려가 개시. 그러..
진짜 오랜만에 하루가 좋아하는 츠케멘 먹으러 왔다. 나 닮아서 오동통한 면을 좋아한다. (보통 오동통한 면을 좋아하나? 도톰한 면이 쫄깃하쥬) 뒤에 큰 글씨는 라이스 바- 마음껏 드세요. 무료. 라멘 시키고 흰밥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무서운 탄수화물 폭탄 세례 ㅎㅎ 그리고 기분이닷 집에 가는 길에 계속 가 보고 싶다던 네코카페에 데려갔다. 저녁 6시 평일은 매우 한산했다. 너무… 강질강질해… 솔직히… 내가 오고 싶어서 왔… 촛점 안 맞는 저 두 마리가 하루랑 또래였다. 다들 몇 번 반응하다 시큰둥 하는데 고양이 장난감에 지치지도 않고 날뛰던 두 마리. 저 두 마리만 아기 고양이였다. 하루도 얘네도 에너자이저였다…. 참, 얘는 코로나 전에 여기 사장님이 우크라이나에서 데려온 아이라고 하셨다. 특별한..
쉬는날 하루 꼬셔서 타이완 디저트 카페에 아쿠 맛있어하는 너 ‘ㅂ’ 나는 고구마 들어있는 고구마라떼 느낌의 타피오카 오래오래 우리 데이트 계속 되길 똑같은 얼굴이 무리지어 다니는 거 봐도 봐도 웃기다. 러시아 전쟁 뉴스를 보다가 하루가 그려서 우리집 창에 붙여놓았다. 파닉스를 배웠더니 알파벳을 불러주면 쓰는 아이. 막 영어 그림책을 읽고 이해하고 이런 거 아니지만 이제 겨우 알파벳 아는 정도도 너무 기특해…ㅠㅠ 나는 한국 어머님들 이야기를 인터넷으로 보다보면 내가 너무 욕심없고 설렁설렁한 거 같기만한데 일본 엄마들 사이에서 얘기들어보면 나같은 교육맘이 없는 기분이다. 어제도 마마토모들이랑 이야기하다가 지금 가라테, 체조, 주판 학원을 다니는데 하나 더 늘리면 너무 애가 불쌍해서…. 라고 하길래. 흠칫 놀..
어?? 어???!! 하루야 눈 온다! 강아지는 헐레벌떡 밖으로 나갔다. 짓눈개비처럼 애매할까봐 쥐어 준 우산은 장식이 됐다. 아휴 머리에 벌써 이렇게 올라앉았네. 친절히 털어주는 나에게 소스라치며 말한다 -엄마!!! 아까우니까 털지마!! 하루한테 온 눈이니까 하루 거야. 내리는 눈에 소유권을 주장한다. 그도 그럴만 하다. 15년 넘게 도쿄에 살고 있는 나도 하얗게 색을 띄는 눈을 보는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눈이 도로를 덮도록 소복히 쌓이는 풍경은 도쿄 어른들에게도 동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할 흔치 않은 일. 사실 하루가 태어난 후로 한 번은 왔던 거 같은데 어릴 때 기억은 모조리 나지 않나보다. -엄마 하루 이렇게 발자국 내면서 걷는 거 처음이야 -엄마 하루가 이렇게 혼자 눈 모으는 거 처음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