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들과 여자

만 7살 여름 일상 1

Dong히 2022. 9. 13. 23:00

엄마 하루가 엄청난 거 발견했어. 봐봐. 젤리를 입에 붙일 수 있어. 

오. 대대손손 내려오는 그 기술을 연마하다니. 근데 왜 눈을 그렇게 뒤집는 걸까.

치과에서 불소 바르기
어플 써서 아이돌 되기

전엔 근처에만 와도 벌벌 떨던 개미를 맨 손으로 잡아서 플라스틱 통에 하루가 넣었다.

그리고 경사에서 굴리기.

뜨아! 살짝 경악스러워서 못하게 했다. 자연과 함께 놀고 막 자연과 어우러지고 좋은 거 맞는데 이건 아닌 거 같애... 말린 거 잘한 거 맞죠?

할아버지가 쓰다가 버린 갤럭시 스마트폰을 (할아버지는 시계나 보라고 주신 건데) 가져와서 꾸역꾸역 게임을 다운로드해서 악착같이 하고 있다. 갤럭시는 거의 골동품 수준의 모델인데 아무리 로딩이 오래 걸려도 아무리 멈춰도 끈기 있게 기다리는 아이. 게임을 하고자 하는 그 의지도 놀랍고 그래도 굴러가는 삼성폰이 너무 놀랍다. 생각해보니 스무 살 이후부터 쓰던 내 애니콜도 매번 질려서 바꿨지 고장 나서 바꾼 기억이 없네. 오오... 

엘리베이터? 로프웨이?

어느 날 무심코 정수리를 보다 깜짝 놀랐다. 얘가 얘가 머리카락을 뽑는 버릇을 들여와서 가운데가 휑한 것이다. 문득 스트레스받거나 골똘히 생각에 잠기면 무의식 중에 머리카락을 뽑는 케군의 버릇이 뇌리에 스쳤다. 케군한테 아이가 머리를 뽑는다고 했더니 본인이 제일 찔리는 게 생각났는지 아찔한 얼굴을 했다.  이번 기회에 둘 다 고쳤으면... 정말 애 앞에선 물도 못 마신다더니.

방학 시작하자마자 내내 집에서 텔레비전 보다가 질리면 핸드폰 게임하고 멈추면 텔레비전을 보길래 집을 탈출했다. 케군이 애플 스토어에 볼 일이 있어 하라주쿠 매장에 들렸는데 거기서도 게임 체험을 하고 앉았다. 에라이. 

근데 웃긴 게 또 게임을 잘하면 못하는 것보단 괜히 기분이 좋아. 내 자식이 뭘 하든 잘하는 걸 보면 기냥 좋아. 사람 심리 참..

이날은 케군이 가 보고 싶다던 맥주집에 갔다. 오모테산도에 있던 <요나요나> 요나요나는 일본에서 만든 에일 맥주 이름.

편의점에서도 쉽게 볼 수있는 요나요나 맥주.

나는 논알콜 칵테일을 시키고 

음식 몇 가지 골랐는데 다 맛있었다.

독일 맥주 집 느낌의 안주들이 많음.

배불리 먹고 집에 가는 길에 몇 정거장 걷는 것이 우리 가족 습관이 되었다. 아오야마 (부잣 동네)를 지나가는데 신전인가 싶은 부잣집을 보고 저절로 사진을 찍었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아 하루한테 가서 서 보라고 시켜 사진에 남겼다. 돈의 기운이 느껴지는 현관이었어... 

유난히 레트로했던 긴자선 지하철
조하...

우연히 스페셜 에디션 차량을 탄 모양이었다.

맞다. 구독자님께서 세 번째로 그려 준 우리 하루 그림. 하루가 좋아하는 도라에몽 주인공들이랑 같이 있는 모습을 주셨다. 그런데 

몇 장을 프린트해도 우리 집 파란색 잉크가 다 떨어졌는지 도라에몽이 보라색.. ;ㅂ; 

그래도 진짜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너무 좋아해 줬어요 ;ㅁ;  편의점 프린터기로 제대로 된 푸른 도라에몽을 프린트했고요 그림 너무 감사드려요. 행복합니다...

어느 주말, 여름이면 이제 연례행사처럼 열리는 금붕어 아트 전시를 보러.

사실 데이트하러 많이 오는 곳입니다

긴자 끝자락에 자리한 슈하스코 Churrasco를 먹으러

우리 가족이 브라질 바비큐에 맛 들인 게 언제부터였지? 싱가포르 여행 때부터였나? 정말 케군이 사랑하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이날은 중간에 간식 먹을 곳도 없었고 어쩌다 보니 배고파서 지친 몸을 이끌고 가게에 도착했기 때문에 사진이 없다. 가게가 너무 어두워서 찍을 맘이 안 생기기도 했고. 브라질에서도 어둡게 하고 먹는지 궁금해지네.

 

이 말을 하니 갑자기 생각나는 일화. 케군은 나쁜 강박이 있다. 거하게 먹을 일이 생기면 그 전엔 무척 배를 고프게 해 두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식구들한테까지 배고파서 뭘 입에 넣으려고 하면 말린다. 금식을 강요하는 건 아닌데 쓸데없는 걸로 배를 채우지 말라는 식으로 은근한 압박을 한다. 일부는 나도 동감하는 편이라 몇 년은 참았는데 생각해보니 이게 폭식을 부르는 나쁜 습관 아닌가? 다이어트를 하며 여러 지식을 습득하다가 별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자마자 짜증이 확 났다. (게다가 배가 고프니까) 그래서 저럴 때마다 니 배 사정과 내 배 사정은 각자 다른 거니까 신경 끄라고, 우리가 그렇다고 저녁밥을 안 먹을 것도 아닌데 네 방식을 제발 강요하지 말라고 ZRAL을 몇 번 해주니 이제 안 한다. 그렇게 다시 찾은 이너피스. 

이날은 긴자에서 놀다가 수제 시계를 만들 수 있는 이벤트에 참가했는데 도중에 갑자기 하루 만들기를 돕고 있던 스텝이 내 쪽으로 뛰어 오셨다. 그거 있잖아 왜 납땜 같은 거 할 때 쓰는 전기 인두기. 송곳처럼 뾰족하고 뜨거운 열 전달되는 쇠꼬챙이. 그게 실수로 맨손에 닿아 하루 손에 옅은 화상을 입었다. 그분이 너무 대역죄인처럼 미안해하셔서 하루한테 괜찮냐고 확인하고 나도 괜찮다고 웃으면서 넘어갔는데.

사실 내 속이 말이 아니었다. 너무 속상해.. 헐... 진짜 내 손을 대신 지지고 싶었다. 으아!!! 사용하기 전에 설명해 준 거 맞아?? 으아!!!! 시간이 지나면 잊을 줄 알았는데 그 속상함은 내 예상보다 오래 남아있다. (현재 진행형) 자식이란 게 이렇구나. 나도 절대로 다른 사람의 아이를 실수로라도 해치지 말아야겠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자식이고 아이니 아무에게도, 털끝 하나라도, 아픔을 주지 말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근데... 위에 저런 생각을 잘도 해 놓고 나는 가끔 내 자식의 등 스매싱을 날려놓고 분통이 터져 저래도 싸다고 생각한다. 어휴 스스로가 한심해. 엄마가 더 노력할게... 

내게 인터뷰 타이핑 일을 주는 기자 언니랑 그 아들이랑 같이 로봇 전시회를 보러 간 날. 너무 배우는 게 많고 늘 놀라운 세상 이야기를 해 주는 분. 

아들 이야기는 없고 죄다 내 수다네..

이거슨, 아들의 일상 포스팅인가 내 이야기인가.

엄마, 나도 인형 같은지 해볼게. 

진지하게 그렇게 말했다. 

아무튼, 여름의 절반은 이렇게..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