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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하루가 정말 길다.
남의 애가 훌쩍훌쩍 큰다던데 매일 보는데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우리 애가 너무너무 빨리 큰다.
치과에서 나오면서 무슨 바람일까.
-엄마, 하루 삼학년 되면 지금 먹는 간식의 반으로 줄일거야. 설탕 많은 거 대신에 좀 건강한 걸로 먹어야겠어.
-기특한 생각을 했네.

왜 내일 당장이 아니고 3학년이 되면인지 이건 그냥 해 본 소리가 될 확률 90프로라고 맘 속으로 생각하면서 기대하지 않는 내 모습이 내심 맘에 들었다. 아이랑 가장 잘 지내려면 아이한테 기대만 안 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남편에게도 직장 동료랑 친구한테도... 그렇긴 하군.

여기 치과는 진료가 끝나면 지우개 하나 주신다. 오늘은 헬리콥터 모양을 골라 버스를 탔다.

-하루야 이 버스 싸다. 오늘은 반 값이래.
이런 시시한 농담에 진짜 뒤집힐 정도로 빵 터지는 남자랑 같이 사는 기분이란.. 행복을 넘어 천국.
이제보니 난 사랑받고 싶은 것보다 누가 내 말에 웃어주는 게 제일 좋은 거 같다. 왜 나는 손예진보다 장도연이 더 부러워…. 그래도 얼굴 이쁜 여자 예능인이 좋은 본심 나온다. 예쁘고 키 크고 웃기고 웃긴 장도연 정말 완벽하네? 

-엄마 밸런타인데이 때 하루 멋진 초코 사 줘. 막 포장이 잘 돼있고 맛있게 만들어진 그런 거.
-(비싼 거 달라는 말이지?) 알겠어~
-그리고 하루한테는 주기 전까지 비밀로 해 줘.
-(이미 비밀이 아닌데?) 알겠어~

밸런타인데이가 가까워지니 초콜릿을 찾으러 나서지 않아도 지하철이고 쇼핑몰 로비고 행사장을 차려 눈앞에 초코들이 난무했다. 이케부쿠로에서 일을 보고 가려는데 가판대에 그거 뭐지 나사 쪼이는 거. 공구 이름을 모르겠네. 뺀찌 망치 이런 거.

찾아보니 스페너인 거 같군요.
공구 모양 초콜릿을 팔고 있었다. 하루는 침까지 흘리면서 웃고 좋아했다. (웃기 시작해서 다물지 못하고 오래 웃다 보면 침이 흐릅니다.)

괌에 사는 친구가 <맥도날드와 함께 성장하는 미국 아들> 사진을 보여줘서 <콤비니와 함께 성장하는 일본 아들> 사진을 답장으로 줬다.
한 5,6년 전까지만 해도 발품을 팔면 마트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 편의점에서 사는 건 게으르고 사치스러운 이미지였지만 편의점끼리 경쟁도 심해지고 독자적인 상품도 쏟아져 나오니 어떤 건 편의점이 더 싼 것도 있다. 생필품(세제, 문구, 화장품 요즘은 건전지랑 팩도 나옴)을 중간을 거치지 않고 아예 편의점 브랜드가 생산에서 유통 판매까지 해치워버리니 말이다.  게다가 커피는 그 가격에 이런 맛을? 까암짝 놀란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이 극찬하는 커피 중 세븐일레븐 커피가 랭킹 되어있는 기사도 본 적 있다.  요즘은 또 냉동식품, 반찬, 국 종류가 버라이어티 하고 맛있어서 우리 집처럼 식구가 적은 집은 남겨서 버리는 것보다 소량으로 사는게 노동력과 코스트를 절감시킨다. 편의점은 편리함을 보태는 것을 넘어 생계 수단이 되었다. 거의 우리집 인프라 수준. 세븐일레븐 포인트 조금만 더 모으면 쌀 5킬로 받을 수 있다. 

학교 친구랑 집에 가방 내려놓고 놀이터에서 만나자 약속하고 온 날. 절친이 적어줬다는 준비물 종이를 펴 봤다. 

쪼꼬만 것들이 뭐가 이리 필요한 게 많다고 어디어디... '여자 데리고 오지 말 것.' 첫 줄에서 빵 터졌다. 아니 여자 왜 왜 안 되는데 반대로 데리고 오는 애는 누구야 도대체 이게 얼마나 중요했으면 젤 첫 항목인데 웃겨 죽겠다. 4번 항목을 읽고는 감탄도 했다. '뛰기 편한 신발 (좋아하는 것)' 안전대책과 취향존중이 공존해서. 

케군이 회식하는 날 둘이 밖에서 우동 먹고 디저트로 스타벅스에 갔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집에서 숙제하다간 시간은 촉박하고 애는 느긋해서 내 복장이 터지니까 음식 만드는 사람 치우는 사람을 외주주는 느낌으로 밖에서 해결한다. 어딜 가도 자기가 직접 또박또박 주문하는 하루는 스타벅스의 낯선 음료 이름들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운 스타벅스 언니가 '우라메뉴' (실제로 표기는 없는데 말하면 해 주는 히든 메뉴)를 알려줬다. 

-와플에 캬라멜이랑 초코시럽 뿌려줄 수 있는데 뭐가 좋아요?

그런데 이자식 고민도 안 하고 우라에 우라를 더했다.

-둘 다 뿌려주세요.

(헉스, 이게 된다고?)

언니들은 저시키 어딜 가도 잘 살게꾼이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쫙쫙 뿌려주시길래 하루가 자리에 간 순간 귓속말로 

-언니 조금만 뿌려주세요.

속닥속닥했다.

조금만 뿌려달래서 이 정도... 'ㅅ' 동무룩

스타벅스에 가면... 당을 대하는 감각에 마비가 온다. 

도서관에서 아이용 요리책을 하나 빌리더니 쿠키 만드는 법을 옮겨 적어 재료를 사고 준비를 하고 야심 차게 만들기 시작한 밤.

 1시간이나 걸려 열심히 만들었는데 나도 너무 경험이 없어서 반죽이 물컹한데도 괜찮은 줄 알고 발효했다가 

도저히 틀로 찍을 수가 없었다. 물 웅덩이 같은 모양으로 겨우 구웠다. 하루가 가장 고대하던 과정이 틀로 찍는 거였는데.. 그래서 실패했다고 직감한 순간부터 애는 옆에서 엉엉 울고 밤은 깊어 나는 졸리고... (지옥) 그래도 이건 두 번 못할 거 같아 이왕 벌린 김에 그냥 하자. 한 번 더 구웠다. 옆에서 계속

-엄마 힘들텐데 다시 해 줘서 고마워. 엄마 고마워.

계속 중얼거리던 너. ㅋㅋㅋㅋ 눈치는 있으니까 진짜 다행이다..

그리고 드디어 성공. 참을 인자 20개 썼다. 

에이 깨불이. 너무 귀여운 깨불이 

나는 가끔 맥도널드보다 '긴다코'의 타코야끼랑 탄산음료가 열렬히 먹고 싶어 진다.

타코야끼를 좋아하진 않는데 긴다코의 달걀 (삶은 계란 으깨서 마요네즈 섞인 토핑) 토핑 올라 간 타코야끼만 그렇다. 오늘은 계절메뉴 명란 소스도 올려보았다. 절대 냉동 타코야끼로 만들 수 없는 바삭함. 탄산을 땡기는 맛입니다.

그다음 날이었나. 내가 온라인 영어 수업 하는 동안 하루가 혼자 쿠기를 만들 테니 재료만 꺼내달란다. 그랬더니 30분 만에 빠르고 깨끗하게 뚝딱 만들어냈다. 혼자서! (주변이 깨끗한 것이 제일 놀라움!!!) 필리핀 튜터에게 아들이 지금 반죽 발효까지 혼자서 쿠기를 만들었어라고 자랑했다. 똑같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튜터가 정말 놀라면서 같이 아이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선물 같은 녀석

동네에 저렴한 장어집이 생겨서 온 가족이 다녀와봤다. 원래 장어 덮밥은 비싼데 요새 들어 이런 가게들이 가끔 눈에 띈다. 

1490엔

나는 장어 맛을 원래 몰라서 그게 그거였지만 케군은 좀 아쉽다고 그랬다. 근데 케군은 혀가 간사해서 브랜드 딱지 붙여놓으면 괜히 맛있다고 느끼는 애라 믿을 건 못된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번 해 봐야 인정을 하지. 쯪쯪.

아버님이랑 다 같이 밥 먹다 종이도 아니고 이번엔 나뭇잎 접시가 나와서 신기했다. 찾아보니 '호우바'라는 박잎 위에 미소와 재료를 넣고 구워 먹는 기후현의 '호우바 미소'라는 요리였다. 

혼자 먹은 퓨전 점심

일식처럼 보이지만 닭고기에는 머스터드 마요네즈 소스였고 튀김은 칠리소스였다. 난 느끼했는지 보라색 오이 짱아치를 제일 맛있게 먹고 

집에 가는 길에 사 왔다. 저 짱아치 이름은 시바즈케다. 이 시바즈케 입에도 잘 붙고 참 맛있다. 카레랑도 이 시바즈케는 잘 어울린다. 잊을 수 없겠죠? 이 시바즈케.

하루는 컴퓨터를 좋아하는 거 같다. 워드랑 엑셀을 알려줬더니 곧잘 한다. 손가락 위치는 하나도 못 외웠지만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도 친다.

틀린 문제 복습하자고 하면 안 할 거 같아서 틀렸던 문제 스스로 워드로 만들어 볼래? 라고 했더니 좋다고 몇 시간이고 이걸 만들었다. 진짜 귀찮아 보이는데 왜 좋을까 궁금하지만 자기가 만든 워드를 프린트해서 풀어보고 앉았으니 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었다. 

식욕 터졌던 지난달, 혼자 도쿄 구경하고 모르는 동네의 오프라인 영어 수업 예약해서 다녀오고 저녁밥으로 <링가하-토> 흰 짬뽕을 먹었다. 여긴 좋은 게 면을 저 칼로리로 시킬 수도 있게 되더니 나중엔 면 빼고 야채만 들어있는 짬뽕 스프 메뉴를 내놔서 다이어트에 최적화되었다.라고 결론짓고 싶지만 사실 볶음밥이랑 교자를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그게 되겠냐고요. 볶음밥이 바삭하거든요.  다이어트에 최적화는 개뿔 그냥 들어가면 배 터지게 먹게 됩니다. 작정하고 가시길.

그리고 예전엔 몰랐는데 이런 매운 미소를 추가할 수 있더라? 짬뽕에 이거 섞어 먹으니까 좀 우리 취향 (한국인 입맛)됐다. 세 덩이는 너무 많아서 만두도 이거 찍어 먹었다. 

원래 테이블에 '유즈코쇼' 유자 후추 항아리도 있다. 매콤하니 좋다. 와사비 아닙니다. 귤향 나는 후추라고 설명해야 하나. 매콤하고 짭짤해요. 초록색인 이유는 다 익은 노란 유자 아니고 라임처럼 초록초록한 유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품종이 다른 건지 덜 익어서 색이 다른 건지는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성공한 살림템.

다이소에서 와플기 발견해서 사 왔다. 물론 100엔은 아니었다. 천 엔이었다. ㅋㅋ 너 버젓이 백엔샵에 있지마쇼 태클 걸고 싶었지만 300엔짜리 500엔짜리도 요즘은 너무 많기 때문에 이젠 백엔샵이 아니라 다 있는 가게인 걸로. 

그리고 여기에 밥을 넣고 누룽지를 해 줬다. 와! 최고다. 누룽지 툴은 이거였네.  It couldn't be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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