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5시 톡톡 건드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케군이 나갈 채비를 하고 너무 가까이 얼굴을 맞대 또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그날 밤, 요양시설에 계시던 어머님의 호흡이 멈췄다. 2018년 병을 진단받자마자 증상이 시작되셨다. 소뇌가 축소되는 희귀병이었다. 아버님은 그 후 몇 년 간 몰라도 될 걸 알게 돼서 괜히 아프기 시작했다며 건강검진을 탓하셨다. 어머님은 외출을 못하고 누워계시다가 점점 근육이 쇠퇴해서 진짜 거동을 못하게 되셨다. 나는 그때부터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알바를 시작했다. 급속도로 근육을 잃는 어머님을 보고 무서웠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운동 기능을 잃으셨다. 1년 반 전부터 요양시설에 모셨다. 그리고 그날 밤 새벽 4시 반에 호흡을 안 하신다는 간호사의..

나의 단골 출몰 지역 중 하나인 이케부쿠로오랜만에 뻔하지 않고 맛있는 집을 캐냈다. 심봤다!!!예전에 예약없이 가서 퉁겼던 곳이지만 다시 재도전 해 성공했다. 타이밍 좋게 테이블 한 자리를 차지했다. 촉촉이 빵은 직접 만들어 바로 구운 느낌.조미료 맛 아닌 깊은 맛의 스프.그리고 대망의 샐러드 런치. 견고하게 잘 쌓아올린 야채라서 보기보다 양이 엄청 많았다. 드레싱이 진짜 일품이었는데 육수 맛이 나는 바질 소스였다. 저것만 퍼먹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최상의 밸런스였다. 훈제 오리고기도 맛있었지만 구운 순무랑 버섯이랑 고구마랑 복숭아!!! 신기하게 내가 유독 좋아하는 재료들만 모아놔서 깜짝 놀랐다. 운명적 만남... (혼자 밥 먹으면서 머릿 속으로 발 동동 했다는) https://g.co/kgs/C..

치바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집 주변이 너무 투박한 시골이라 기타센주는 굉장히 번화한 도심이라고 생각했다. 도쿄 생활 년수가 쌓인 지금은 기타센주에 가면 조금 촌스럽고 서민냄새 가득하다 느낀다. 나녀석 어쭈구리 많이 컸다.20대 때 데이트를 자주했던 곳이라 추억이 많기도 하고 이유없이 너무 좋아하는 동네. 그래서 자주 산책을 하는데 그것말고도 기타센주는 카페나 맛집이 자주 뿅뿅 생겨나서 질리지 않는다. 오늘은 슬로우 젯 커피 라는 카페에 찾아가봤다. 지난 번에 어떤 파스텔 톤의 카페에서 맛있는 라떼를 마셨다. 메뉴 앞 장에 한국 카페를 좋아해서 오랫동안 준비해 오픈한 가게라는 소개와 원두는 슬로우 젯 커피에서 가져옵니다 라는 문구를 보고 원두 가게를 찾아봤다. 이 집의 시그니처는 볼로네제 토스트였다..

어린 시절 나는 산타의 존재를 한 번도 믿어 본 적 없는 아이였다. 부모가 새벽 6시에 나가서 밤 11시쯤 귀가하는 맞벌이 집의 모든 가정보육은 ‘테레비’가 도맡아 하게 되어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방송에서 아무렇지 않게 산타에 대해 여과 없이 말했다. 밤 8시가 넘어가는 방송에선 당연했다. 드라마에서 부부가 이번엔 애들 산타 선물 뭘로 준비하지? 이런 대사를 한다거나 저는 국민학교 졸업할 때까지 산타를 믿었거든요. 하는 예능 인터뷰 같은 장면을 유치원생 때부터 봤었다. 혼자 대충 생각해도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실 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도 안 생겼다. 전 세계에 딱 하루 동안 그것도 심야에 선물을 나눠주는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그래서 하루가 초4까지..

발품을 팔면 시장 느낌 나는 마트에서 싼 식자재를 살 수 있다. 게다가 도쿄 중심가에서 벗어나면 더 싼 마트에 갈 수 있다. 한 달에 두어 번 기타센주로 한국어 수업을 가는 날은 배낭을 메고 간다. 도쿄의 서쪽 끝에 있는 이 동네는 구석구석 이런데가 있다. 그날은 801엔에 이걸 다 샀다. 대파 한단무 한 개청경채표고버섯 (6개)가지 2개애호박단감숙주나물고구마영수증을 근데 자세히 보니 아줌마가 고구마를 안 찍으셨네? 고구마... 90엔이었는데... 남기긴 하셨을까 ㅠㅠ 갑자기 걱정스러움과 미안함이. 얼마 전에 기타센주 역 앞을 가다가 뉴스 방송 인터뷰에 응했다. 기타센주 역 앞은 길거리 인터뷰 단골 장소라서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오고 싶은 분..

사람들 눈치 보고 민폐 안 되게 조심하느라? 배려가 지나쳐서 전체적으로 소심한 문화가 옮아서다? 이렇게 말하는 유투버들을 보고 있자니 납득이가 안 갔다. 집채만 한 몸집을 자랑하듯 다니던 외국인도 거기서 좀 살다 보면 어깨를 자꾸 접고 머리를 조아리며 다니게 되어 있다고 일본만 가면 자존감 박살당하는 듯이 말하는데 그건 좀 아닌 기분이 들었다. 외국 살이 하다 보면 처음엔 원래 소심해진다. 그게 어느 나라건 어떤 사람이건. 언어에 자신감이 없어서 우물쭈물하고 서러움도 생긴다. 근데 유독 일본에 간 외국 사람한테 이런 선입견이 있는 게 나는 아닌 기분이 들었다. 원래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사람들이 도쿄에 많은 건 맞지만 (도쿄에 국한하겠음. 다른 지방? 절대 그렇지 않다.) 안 그런 외국인이 이사와..

달레가 아침부터 빼꼼 얼굴을 보여주더니계속 내 옆에 와 줬다. 헝… 난 이제 가는데…마지막 밤에 혼자 택배 부치러 편의점에 다녀오면서 허름한 떡볶이 집을 발견했다. 호떡도 팔고 계셨다. 완벽한 밤이다!!! 언니가 엽떡 배달을 시켜놔서 나는 호떡을 사러 들어갔다.-호떡 두 개만 싸 주세요.-우리 집은 주문하심 그때 굽자나 알져? -아~ 제가 여기 안 살아서요. 괜찮아요. 기다릴게요.-그려? 그럼 어디서 왔는디?-저는 일본 살아요.-그려? 가족들 보러 잠깐 왔구나? 일본서 뭐 해? 일 해?-거기서 결혼해서 남편이 일본사람이에요. 그냥 애 낳고 살아요.-뭐잉? 애가 있어? 결혼도 했구? 엄마야. 엄청 어려보이네잉-정말요? 애가 아홉살이에요. 전 올해 마흔셋 됐구요.-엄마야 서른 셋 바께 안되보이는디. 그런 ..

참한 길 고양이그 짧은 시간에 별거 별거 다 하고 왔죠?못 본 새 언니는 고양이 키우면서 세상에 위험하고 악한 것들에 대한 고찰이 늘었다고 한다. 항상 고양이 밥이랑 그릇, 담배꽁초를 주울 쓰레기봉투까지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보이던 쓰레기들이 (냥이들에게) 얼마나 해롭고 위협스러운지 다시 보인다고. 고양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공중도덕, 지구 환경, 윤리 문제 모든 걸 생각하게 된 언니. 이날 밤 언니가 몇년 전에 자전거 타고 가다가 날아간 이야기를 해줬다. 비싼 자전거를 하나 장만해서 룰루랄라 좀 멀리까지 돌던 날 갑자기 돌뿌리에 걸렸다. 몸이 몇 미터나 떠올라 슬로 모션으로 땅을 향해 낙하해서는 밭두렁 같이 깊은 바닥으로 온몸이 패대기 쳐졌다. 기어올라오며 너무 아픈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