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달레가 아침부터 빼꼼 얼굴을 보여주더니

계속 내 옆에 와 줬다. 헝… 난 이제 가는데…

마지막 밤에 혼자 택배 부치러 편의점에 다녀오면서  허름한 떡볶이 집을 발견했다. 호떡도 팔고 계셨다. 완벽한 밤이다!!! 언니가 엽떡 배달을 시켜놔서 나는 호떡을 사러 들어갔다.

-호떡 두 개만 싸 주세요.
-우리 집은 주문하심 그때 굽자나 알져?
-아~ 제가 여기 안 살아서요.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그려? 그럼 어디서 왔는디?
-저는 일본 살아요.
-그려? 가족들 보러 잠깐 왔구나? 일본서 뭐 해? 일 해?
-거기서 결혼해서 남편이 일본사람이에요. 그냥 애 낳고 살아요.
-뭐잉? 애가 있어? 결혼도 했구? 엄마야. 엄청 어려보이네잉
-정말요? 애가 아홉살이에요. 전 올해 마흔셋 됐구요.
-엄마야 서른 셋 바께 안되보이는디. 그런 말 안 들어?
-그래요? 한국 엄마들 다 이쁘게 하고 다니고 젊어보이든데요.
-아녀!! (떽!) 엄청 이쁘고 어려보여!  
호떡집 가서 칭찬을 한 바가지 먹고 배가 불러서 날아갈 거 같았다.

일본에서 가끔 호떡 믹스 사다가 직접 해 먹인 적도 있다고 했더니
-내가 그르믄 가만있어 봐. 일본 사니까 비법을 살짝 갈켜줄께. 잘 들어. 반죽에 ….
반죽의 가루 비율 (여러 종류 섞여 있음)도 신기했는데 물 온도까지 레시피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와… 감탄… 너무  레시피가 복잡해서 못 따라 할 거 같다. 손이 엄청 가고 재료도 여러 개 필요했다.


언니 집에 뛰어들어 가 언니!!!! 호떡 아줌마가 나보고 애 안 낳은 거 같대!! 인나 봐 대박 사건이야. 주저리주저리 내 얘길 다 듣고 언니가 말했다.
-이번에 한국 와서 호떡집 간 게 젤 좋았겠네.

이분은 왜 이렇게 예리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마지막 날 호떡과 엽떡을 먹으며 <이혼숙려캠프>에 입문했다.

언니…. 왜 이걸 마지막 날 알려준 거야…

2부 1화부터 다시 보기를 하는데 이게 혼자가 아니라 같이 보니까 너무 재밌는 것이다.
(언니는 이미 한 번 봤음) 내가 울그락 푸르락 속 터져하니까 언니가 옆에서
후후후… 계속 봐 봐. 저 부인도 이유가 있어.
어머 저 남자 왜 저래…?
후후후… 계속 봐 봐. 저 남자도 이유가 있어.
반전의 재미를 남겨두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혼숙려에서 내가 제일 짜릿했던 부분은 철옹성 같던 한 사람의 그릇된 선입견이 모노드라마나 주변 사람들이 의견을 마주하고 드디어 조금씩 금이 가는 순간이 생길 때였다. 지금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행동과 말들이 근본적인 가치관이 흔들리니까 참회와 후회의 감정으로 덮이는 것이 꿀잼이었다. 그리고 안락하고 관대하기만 할 거 같은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일침을 가하는 게 너무 신나…. 사람마다 어떤 부분이 과민하게 작용했고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심리적 원인을 찾아주는 게 너무 신기했다. 전문가의 매직…

엽떡을 먹으며 쌍욕과 눈물을 흘리는 (왜 이렇게 울컥한 장면이 많던지 ㅋㅋㅋㅋ) 여자 둘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뼛속까지 훈훈했다. 이걸 보면서 언니랑 인생의 가장 깊은 이야기를 빠르고 대량으로 엄청 많이 했다.

하루가 같이 와서 이런 방송을 봤으면 한국은 무서운 나라라고 생각했을 거야 ㅋㅋㅋ  늦은 시간까지 (그것도 엽떡에 호떡을 먹으며) 이런 막장 예능을 볼 수 있다니 진짜 잘 놀다 갔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 달레는 심지어 나한테 궁둥이 팡팡 해주라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멈추니까 무릎에 애교 부리면서 몸을 비볐다.
헐…
달레야…. 이제 나 가는데 

드디어 둘 다 내 물건 건드림.
경계심 무너짐 ㅋㅋㅋㅋ

 

언니랑 밤새 마지막 수다를 떨었다. 언니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줬다. 남의 사회생활 이야기를 듣는 건 원래 재밌지만 언니처럼 사이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래서 엄청나게 재밌다. 같이 일하던 동료분이  '서녕씨는 어쩜 그렇게 그때그때 잘 받아쳐요? 난 저런 말 들으면 머리가 하얘져서 부들부들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나중에 후회하는데 말이야.'라는 말을 했단다.

 

어느 날 현장에서 일하는 남자가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아~ 거기 경리년은 멍청해서 맨날 실수를 한단 말이죠.' 하며 가벼운 투의 말을 던졌는데 언니는 잠시의 시간차도 없이 ' 가르치는 관리자 놈이 멍청한가 보죠~' 라며 똑같은 말투로 수비공을 날렸다. 듣고 있던 동료분은 나한테 한 욕은 아니니까 뭐라 할 수도 없는데 이쪽 경리로서 야릇하게 기분이 나쁠 뻔하다가 서녕언니의 수비로 상쾌해졌단다. 보통 재능이 아니다. 정말 그 피를 수혈받고 싶다. 이런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서녕언니가 살면서 후회하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는데 지나간 일을 빨리 잊어버리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전환한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항상 반격을 똭똭 해서 후회할 게 애초부터 없었던 게 아닐까.

 

대신 언니는 사람들에게 더 잘할걸. 이런 종류의 후회 섞인 아쉬움을 자주 말한다. 언니가 너 저번에 왔을 때 이것도 못해줬고 저것도 못해줬다고 맨날 그런다. 갈비 집에서 계란찜을 퍼 먹는 나한테 계란찜 먹지 말고 고기 먹어~ 해서, 언니 나는 계란으로 만든 세계 모든 요리를 엄청 좋아해~ 했더니 지금껏 내가 그렇게 계란을 좋아했는지 몰랐다며 그건 몰랐네~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철렁해했다. (말투에 감동...) 나도 그렇다. 언니한테 너무 어리고 철없어 못 했던 것들만 끊임없이 생각난다. 우리 둘 다 나이가 들었다. 

 

언니는 날 보러 일본에 딱 한 번밖에 오지 못했다. 처음 왔다 가서 두고두고 나한테 했던 말이, 비행기 출발하기 한참 전에 준비해서 기다리고 수속하고 짐을 찾아서 공항에서 또 시내까지 하루 종일 이동하고... 니가 한국 올 때마다 이걸 계속했다고 생각하니까 어우 힘들었겠다. 간단한 게 아니네. 라며 한국 한 번 와서 얼굴 보여주는 것도 기특하고 고생했다고 토닥였다. 그걸 이제 알아서 미안해했다. 나는 언니가 너무 가족 같고 친해서 진솔하게 감정을 표현할 때 가끔 쑥스러운데 언니는 나보다 이렇게 섬세하게 애정을 표현해 준다. 사실 대외적으로 언니는 무뚝뚝하고 애교 없고 단호박 이미지인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서녕언니를 보며 내가 아끼는 동생들한테 내가 먼저 오글거릴 정도로 애정을 담아 진지한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공항철도가 아닌 버스 이동이 문명의 후퇴 같지만 너.... 너무 좋다!!! 직행 버스... 짐 한 번 버스에 실으면 걍 직행. 반해버렸음.

통복시장을 못 갔네.

다음엔 재래시장 쓸어버린다.

오는 비행기는 진 에어였다. 

수화물 15KG가 가능했는데 짐이 16.2KG였다. 내 등에 1킬로 업느니 추가요금을 내고 어깨를 보호하려고 데스크에 갔다. 나는 앓는 소리 하나 안 했는데 그냥 실어주셨다. 서비스에 대한 생색도 안 내고 스리슬쩍 해 주셨다. 생색이라도 내시지!!!  난 너무 고마워서 목소리를 낮춰 "너무 감사해요. 행복하세요." 속삭였다.

그리고 태어나서 제일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모자 상봉을 했다. 귀여운 캐릭터 안경닦이를 흠흠... 하며 보다가

현미 누룽지를 꺼내자 산삼 캔 사람처럼 엄청나게 소리 지르며 좋아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다이소에서 사 온 마이쭈는 하루 기억에 영원히 남았다. 지금까지 먹었던 까까 중에 제일 맛있다고 한다. 어머- 그 정도야?

그러고 보니 오버된 수화물 1.2kg 는 현미 누룽지랑 딱 같은 무게였다. 진 에어 누나가 선물해 준거나 마찬가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