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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나이가 되어 해를 거듭할수록 무언가를 성취하는 일은 급감했지만 꾸준히 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쉽게도 새로 시작하는 건 없지만 시작한 일을 그만두는 일이 적어진 것. 여전히 파스타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영어 공부를 하고, 매일 미드를 보고, 블로그를 하고,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저녁마다 팩을 하고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한국어 수업도 2025년에 꾸준히해서 적응 했다. 그리고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생각보다 깊은 대화를 많이 나누며 스치듯 안녕하는 일본에서 정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많았는데 반대로 나한테서 위로를 받고 국경을 넘어 인간적인 호감을 많이 느꼈다는 학생들의 리뷰도 100건 가까이 쌓였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를 드러내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인간은 어차피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점점 깨닫는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 자신에게 먼저 너그러워야 다른 사람을 관대하게 볼 수 있다. 올해 귀엽지만 어려운 10살을 키우면서 더욱 더 뼈 아프게 느껴왔다. 내 자식은 특별하길 바랬지만 너무나 보통 아이이다. 틈만 나면 게으름 피우고 말로만 다짐하고 보이는데서만 최선을 다하고 눈치 보며 뒤로 호박씨를 까는 약아빠진 인간 아이이다. 아이가 거짓말을 들킬 때마다 화가 나기보다 꼭 나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냥 나 같기만 해서 이것보다 더 잘하라는 건 바라지도 않게된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금방이다. 너는 열 살 때 어땠니. 땡깡, 잔꾀, 염병이 더하면 더했지 뒤지지 않았다. 나의 열살 보다 너의 열살이 몇배는 더 장하고 기특하다. 그래서 위선적인 훈육을 하기보다 일이 안터지게 예방하는 데 힘쓰려고 노력했다.
지능적이 되어가는 아이에 맞춰 저학년 때보다 내 몸이 바빴다. 관심으로 위장한 감시의 눈길을 늦출 수 없어 일 끝나면 바로 아이 옆에 딱 붙어 공부나 생활을 봐줬다. 아이도 그걸 원했다. 본인 입으로 엄마가 있어야 내가 책상 앞에 앉을 수 있다는 메타인지 발언을 해서 어이가 없었다. 자기 조절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 발로 템플 스테이에 찾아가는 사람 같은 느낌. 그래서 돌이켜보니 올 한 해 정말 아이랑 많은 시간을 보냈다. 부비고 춤추고 안아주는 시간도 많았고 유치한 말싸움도 많았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또 역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솔직하고 부족한 엄마임을 계속 어필하는 것이 제일 인 것 같다는 사실이다.
작년까지 내가 먼저 하루의 수학문제를 학습하고 애를 앉혀놓고 가르쳤다면 올해에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꺼벙이처럼 앉아 아이가 깨우친 수학 설명을 들었다. 멍청하고 부족한 엄마를 이해시키기 위해 아이는 열심히 동영상을 보고 머릿 속에 문제 풀이를 정리하면서 몰라보게 수학 성적이 올랐다. 다른 이야기 같지만 이것도 내가 부족함을 있는 대로 드러내서 얻은 결과인 것 같다.
얼마 전에 무슨 대화를 하다가 나는 이런 말을 했다.
-글쎄... 엄마는 좋은 엄마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네...
그 말에 하루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면 엄마는 좋은 엄마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엄마의 어떤 점을 그렇게 느꼈어?
-엄마는 자기가 안 좋은 점을 알고 고치려고 하잖아. 오히려 나쁜 엄마는 아마 자기가 좋은 엄마라고, 늘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할 거야.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좋은 엄마가 아닐까?
조금 소름이 돋았다.
감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신비로운 순간이었다.
인간 생활 십년만에 이런 철학적인 고찰도 하는구나.





독감 걸려 병원에 온 하루


머리가 엄청나게 뻗친 하루


내가 읽는 소설 다 뺐어 읽는 하루.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2025년 열심히 애 키웠다.
아니 애와 함께 많이 컸다.
누군가의 모범이 되야하는 상황 자체가 인간을 매우 건강하고 착실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나는 모범수로 출소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ㅎㅎㅎ 그날을 위해 열심히 알바해서 한 푼 두 푼 모으는 요즘. 이 모범수에게 꿈이 생겼다. 7년 후에 유럽으로 시니어 유학 가고 싶다. 1년이 너무 빨라서 일곱 번 반복하는 것쯤이야... 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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