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젠 거의 데이트 코스를 어려움 없이 소화한다. 항상 매너 있게 행동하고 엄마가 지루하지 않게 끊임없이 대화해 주는 건 정말 케군보다 낫다. 잠깐 핸드폰에 눈길을 주면 “엄마~ 같이 나왔으니까 재밌게 얘기하자~” 하는 하루.

학교 가정 시간에 새알 떡 만드는 법을 배워왔다며 가루를 사다가 엄마 아빠 디저트를 만들어줬다.

팥이랑 콩가루 두 가지 준비해서 입맛 따라 묻혀 먹으라는 서비스 정신까지. ㅎㅎㅎ
하루는 뭐든지 재료를 하나하나 손으로 준비해서 만드는 것에 희열이 느끼는 것 같다. 반죽부터 시작하거나 씨앗부터 심어서 수확한다거나…. 스스로 무에서 유를 낳는 창조주가 된 듯한 우월감 같은 건가? 아무튼 저 떡 하나 만들고 나서도 엄청난 성취감에 치어있었다.

맛도 있었음.

근데 설거지를 창조하고 부엌을 박살 냈네?

엄마 힘들다…


“엄마  내가 밤에 엄청 잘 잘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어. 먼저 잘 준비를 다 하고 방에 있는 모든 불빛을 차단해. 여기는 우주선이야. 그리고 고글을 장착해 (라면서 팥이 들어 있는 찜질용 안대를 쓴다. ) 그리고 우주 헬맷을 써. (라며 군밤 장수 모자를 머리에 쓰고 철컥 철컥 소리를 내면서 턱 밑의 찍찍이를 붙인다.) 다음 세팅된 출발 버튼을 눌러. (머리맡에 갖다 놓은 스톱 워치를 눌러 삑삑 소리를 낸다.) 그다음 고속으로 출발하니까 몸을 맡기고 우주로 떠나는 거야. 포인트는 머릿속을 비우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거야. 그러면 순식간에 잠이 확 빠져들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귀엽고 얼토당토않은 너의 공상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까.  

우주로 출발할 때 얼마나 웃긴 모습인지 본인은 모르는 거 같다. 찍어서 간직해야지.

한참 빠져 있는 말차 만들기

엄마도 한잔 타 주고

머리를 까면 저렇게 보들보들한 솜털이  나 있는 게 너무 간지럽다. 머리를 까고 저기 숨은 털들을 귀여워해주고 있다. 나만 볼 수 없지.

왜 갑자기 눈 감고 자? ㅋㅋ

하루가 할아버지한테 전화로 약속을 잡고 둘이 낚시 센터에 놀러 갔다. 할아버지랑 몇 시에 어디 어디서 만나자~ 먼저 저러는 게 기특해…

허물없이 단 둘이 놀러 가자는 손주가 시아버지는 예뻐서 함박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4시간이나 낚시터에 같이 앉아 계셨다. 하루가 뭘 시도하든 경험치와 여유로 다 기다리고 지켜봐 주신다. 나는 과연 시아버지처럼 늙을 수 있을지… 못 할 거 같애.

벚꽃을 보자마자 할아버지랑 둘이 사진 남겨달라는 하루.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깜짝 놀랐다. 아들보다 손주네.

일본에 사는 사람이 해리 포터 한국어 판 책을 일본 도서관에서 빌려봤다는 글을 봤다. 전권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은 없지만 도쿄 전역의 도서관 어딘가엔 흩어져있다고 한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도서관 홈페이지에 리퀘스트를 넣어봤다.
<해리포터 한국어판>
이렇게 간단하게 입력했다. 너무 애들 장난 같나. 곤란하려나. 괜히 미안해져서 생각을 고쳤는데 취소 버튼이 없다. 아악!!! 포기하고 며칠이 지났다. 이미 기억에서 잊혔을 때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다.

”해리 포터를 찾았습니다. 혹시 몇 권이 필요하신가요? “
어머나
어머나
비밀의 방 1,2권을 부탁하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멀리 있는 도서관에서 받는 모양이었다. 도착하는 대로 메일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엄마 왜? 누구 전화야?“
”하루야… 엄마 지금 너무 감동했어.“
”왜?“
”도서관에서 해리포터 한국어 책을 찾아주셨어. 빌릴 수 있대. 엄청나지 않아?”
감격한 내 말에 하루가 답했다.
“ 뭐 우리가 낸 세금으로 하는 거니까. 엄마도 많이 이용해. 그 사람들도 공짜로 일하는 건 아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이렇게 시니컬한 아들 적응이 안 돼서 터졌다.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일도 생기다니.

신주쿠로 같이 데이트를 갔다. 대형 서점 키노쿠니야에 가서 실컷 책을 구경하고 수제 우동을 먹었다. 요즘 넷플릭스로 원피스 애니를 보기 시작해서 단행본으로는 몇 권이나 나왔는지 만화 코너에 가 봤다. 20년 전쯤부터 나오는 건 알고 있었지만 100권이 넘어 있어서 나도 놀랬다. 가까운 점원에게 물어봤다.
“원피스는 완결이 아직 안 나온 거예요?”
어리둥절한 표정의 남자분이
“그렇죠 원피스는 아직..” 이라고 답했다.
“아이가 이제 보기 시작했거든요. 와.. 완결이 안 나왔구나.“
하루의 쪼꼬맴을 확인하고 직원이 이해한다는 얼굴로 인자하게 웃으며 “걸작이죠~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는 것이 웅장했는지 친절하게 재밌다고 계속 보라고 응원(?)해 주셨다.

나는 우동 짬뽕.
일본 짬뽕은 하얗고 짭짤한 라면 느낌이다.

집에 가는 길에 공차를 사서 나눠먹었다.
신주쿠 지점 누나들이 연예인처럼 예뻤는데 전혀 쫄지 않고 눈을 보면서 빨대 하나 더 달라고 한다.
“저 누나들 되게 이쁘다. 하루 긴장 안 됐어?”하니까
“예뻤어? 잘 모르겠는데? 엄마가 더 예쁜데?“

사춘기는 아직이네. 이렇게 사춘기 체크하고 있다. 언젠가 엄마가 안 이뻐지기 시작하면 엄마가 안 이뻐져서가 아니라 니가 사춘기인 걸로.

따라 해 보랬더니 상상 이상으로 귀여웠다.
나도 세상 누구보다 네가 제일 예쁘다.

반응형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6/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