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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나랑 있으면 입에 침이 마를 때까지 수다를 떤다. 어릴 때부터 수도꼭지처럼 침을 흘리는 침부자기 때문에 진짜 입이 마른 적은 없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내가 국민학생 때 엄마가 나한테 쟤는 물에 빠지면 조둥아리만 동동 물에 뜰 거라고 그랬다. 입을 뻐끔대면 반대로 물 먹고 바닥에 가라앉을 텐데 왜 물에 뜬다는 건지 나 참, 당시에는 자존심 상했지만 아들을 보면 부끄럽게도 그때의 내가 상상이 간다. 진짜 입이 나불거리는 것이… 발장구 마냥 아… 물에 뜰 수도 있겠구나 싶다.

웃다가 입 다물 타이밍을 못찾아 침 흘리는 중
주체를 못하고 빵 터져서 바닥에 머리를 박음

덕분에 바깥에서의 일들을 거의 동영상 수준으로 전해 듣는데 마치 또 하나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꽤 재미가 있다.

최근 제일 재밌는 건 이시카와 핫뉴스. 반에서 가장 문제아로 꼽히는 남자아이다. 2학년 땐 얘가 착한 담임을 만만하게 봐서 매일 싸움질에 말대꾸에 수업 훼방에 아주 교실을 풍비박산 냈다. 긴급 학부모 소집이 여러 번 열릴 정도로 우리 학년 모두가 휘둘렸는데 이시카와도 5학년이 되니 조금 철이 들었는지 꽤 잠잠해졌다. 그리고 아이들 기강을 잡을 줄 아는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다. 역시 어떤 시대에도 선생님께 권위를 심어주려면 큰소리도 내시고 제압할 수 있게끔 힘을 허용해야 한다. 갓 태어난 인간은 천성이 원래 기고만장하고 틈만 나면 사람을 얕보는 습성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시카와가 입이 거칠고 행동이 극단적이어서 그렇지 그 나이 답지 않게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빨리 이해하고 놀랍도록 똑똑하단 생각이 든다. 엄마가 어느 대학 교수님이라던데 머리가 너무 좋아 학교 공부는 지루해서 수업시간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을지도. 그런데 아빠가 진짜 무서운 성격이란다. 아들이 평범하게 굴지 않으니 화가 나서 그런 거겠지만 잡아도 너무 잡는다. 옆자리였던 하루는 이시카와네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자기가 뭐만 하면 아빠가 불같이 화를 내서 너무 짜증 난다. 부모님은 매일 싸워서 우리 집은 이혼할지도 모른다. 아… 학교 행사 때마다 아빠 오는 게 너무 싫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나는 이시카와가 오늘은 학교에서 뭐 했는지 묻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오늘은 교실마다 전화기가 하나씩 있는데 선생님이 받거든? 근데 오늘 선생님이 없는데 전화가 온 거야. 그랬더니 그걸 이시카와가 받고 “선생님 없다!! 멍충아!!!” 하고 뽝! 끊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으면 안 되는데 아놔.  진짜 엄청난 기세로 전화기를 끊는 시늉을 하는 하루 말이 떨어지자마자 둘이 미친 듯이 웃었다. 걔 진짜 왜 그러냐 ㅋㅋㅋㅋㅋㅋㅋ 엄마 넘 웃기지 ㅋㅋㅋㅋㅋ 솔직히 웃기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어떤 날은
학교에 경비아저씨랑 가정과 선생님이 복도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 그랬더니 이시카와가 “난파하는 거 아냐?” (난파 = 헌팅) 이랬어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웃기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항상 드립력이랑 타이밍이 너무 좋다. 내용이 선을 넘어서 그렇지 머리가 진짜 보통 좋은 아이가 아니다.

근데 하루야 난파(헌팅)가 뭔지 알아?
몰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지는 모르지만 분위기상 그게 웃겼다니 두 번 터졌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초5 남자아이들은 하루처럼 순진한 게 보통이다. 하루한테 난파가 뭔지 자세히 설명해 줬다. (이것도 인스타그램이나 인터넷 없던 아주 옛날 시절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게 슬프지 뭐야. )

엄마랑 아빠도 난파로 만났어?
우린 合コン고콩 (미팅)으로 만났어.
아~

난파도 모르는데 고콩을 어떻게 이해했지?
하루야. 고콩은 뭔지 알아?
合唱コンテスト?
합창단 콘테스트?

머리말을 자기 혼자 조합해서 결론내고 있었다. 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 건전햌ㅋㅋㅋ고콩에 대해 또 열심히 설명해 주고 다시 한번 이시카와에 대해 생각했다. 도대체 집에서 혼자 무슨 유튜브를 보고 있는 걸까. 이시카와는 왜 이런 걸 다 알까. 내가 유튜브도 안 보여주고 곱게 키워놓은 자식을 학교에 보내면 이시카와가 별의별 말들을 가르쳐서 분통이 터질 때도 있다. (여자 생식기를 뜻하는 말이나 신박한 욕을 다 전수받음… 이시카와 이눔색히야….)

학교에 늙은 가정과 할머니 선생님이 있는데 항상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고 실습을 시킨다며 하루가 늘 불만스럽게 말한다. 그래놓고 잘 못하면 막 짜증을 낸다고. 어우 이상한 선생님이네… 그런데 어느 날은 갑자기 동네 대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서 한참 삼천포에 빠졌더란다. 아무도 관심 없는 말을 길게 해 놓고 수업이 끝나니까 오늘은 너네들 때문에 여기까지 밖에 못했네 툴툴거렸다고. 모두가 갸우뚱하고 있을 때 이시카와가 큰 소리로 ”그건 선생님이 뭐시기 대학교 이야기 오래 하셔서 그런 거 아니에요? “라고 했고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고 교실을 나갔다. 하루랑 나는 모두가 생각만 하던 말을 용기 내서 하다니 정말 똑똑하고 행동력 있는 거 같다며 칭찬했다. 우리 집 방구석에서 이시카와의 행동에 자주 감탄하고 있다는 걸 이시카와 아빠에게 말해주고 싶을 정도.

이렇게 또 감탄하다가도 그다음 날 이시카와 이야기를 물었더니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엄마가 학교에 불려 왔고 선생님이랑 경비 아저씨까지 다 동원해서 인간 바리케이드를 쳤는데도 담을 넘어 학교 뒷문으로 도망을 갔다는 핫뉴스를 전했다.
뭐여…
이눔시키 또 뭘한겨…
(결국 무슨 짓을 했는지 모름)

얼마 전에 2박 3일로 수련회 비슷한 학교 캠프를 갔다 왔었다. 다 같은 방에서 친구들이랑 자는 첫 경험.
밤에 잘 잤어? 원래 그런데 가면 엄청 이야기하고 베개싸움하고 밤새 놀잖아.
우리 일찍 잤어.

의외로 되게 일찍 푹 잤단다.
이시카와가 졸렸는지 한 번만 더 떠들면 죽탱이 날린다고 경고했고 진짜 한 마디 더 한 놈이 이시카와한테 펀치를 맞아서 다들 찍소리도 안 하고 다 꿈나라로 갔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매일 좋은 컨디션으로 지내서 하루는 애들을 조용히 시킨 이시카와가 고마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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