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 1년 전부터 오려서 화장실에 붙여둔 잡지 기사가 있었다. 지구 광장이라는 박물관 소개가 있어서 꼭 가보고 싶댔다. 집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가까운 곳인데도 박물관 문 여는 시간엔 학교에 가니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참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쩌다 학교 빠진 날, 집에서 감정만 상해 있지 말자고 박물관에 다녀왔다.



아프리카 학교를 재현해 놓은 교실인데…
선생님들의 교육도 미달이라 칠판의 산수가 오답이었다 ㅠㅠ 디테일 리얼하네. 이걸 열심히 받아 적을… (받아 적을 만한 것도 없어서 그냥 눈으로 외우고 있을…) 아이들이 짠했다…
가난과 전쟁으로 생활 수준이 처참한 나라들에 대한 소개가 많았는데 새롭게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여전히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나라들에서 소년 소녀들이 군인이 되어 사람을 죽이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는 현실이었다… 열두, 열세 살의 아이들이 강제로… 끔찍했다…

박물관 안의 식당에 갔더니 동네 맛집인지 주변 회사원들이 엄청 밥을 먹으러 왔었다. 인기 많았던 세계 요리 시리즈. 오늘은 북인도의 카레.

국이랑 밥에도 이국의 향기가 느껴지는 제대로 된 직원 식당이었다.

학교도 안 가고 팽팽 놀다 우동 먹는 이 아이.
나와 한 동안 긴장감 최고조로 줄다리기를 했던 새로운 걸림돌은 늦잠이었다. 아니 왜 돌 하나 치우면 또 다른 돌이… 치우면 또 다른 돌이. 퀘스트처럼 계속해서 등장하는가. 사람 만들기 너무너무 힘들다.
밤에는 잠이 안 와서 뒤척이다가 겨우 새벽에 잠이 들면 당연히 제시간에 못 일어나서 끙끙거리길 몇 달째가 되었다. 원래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는 스스로 맞춘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나 티브이도 보고 그 짧은 시간에 장난감으로 놀고 뭘 만들고 쓰고 적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알아서 학교에 갔다. 그런데 5학년이 되고부터 알람소리가 몇 번을 울려도 몸이 안 움직이는 아니.. 전날 도무지 잠들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신기한 일이지 싶어 여러 책과 동영상을 찾아봤더니 뭐 고딴 것도 사춘기의 증상이라더라.
졸린 호르몬이 아주 밤늦게 분비되니까 새벽 한 두시에도 눈이 말똥말똥해서 본인들도 죽을 맛이란다. 하지만 역시 성장기 때 잠은 한 번 잠들면 오래 자니까 제시간에 일어나려면 아침엔 정말 물 안 준 콩나물처럼 흐느적흐느적 맥아리가 없고 몸에 정신이 들지 않는다. 이때 아이들 밤낮이 심하게 바뀌면 지각이 결석되고 하루가 이틀 되고 한 달이 일 년이 되고 이것 때문에 등교 거부 아닌 등교거부가 생긴다. 최악의 경우 히키코모리로 된 사례를 다큐에서 본 적이 있다. 하루에게도 그게 온 것이다. 게다가 이게 남자애들이 심하대. 아… 정말이지 엄마에겐 최악의 조건만 갖춘 것이 아들이다. 상극이야 상극.

엄마가 알바 끝나고 올 시간에 맞춰서 말차와 과자 세트를 준비해 놓은 하루.


이런 이쁜 짓 없었으면 벌써 탈덕했다..하.
늦잠 이야기로 돌아와서,
자고 싶은 시간에 잠들 수 없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이 몸이 안 움직이는 게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면 그것도 참 안쓰러운 일이다 싶어 나는 아이를 탓하지 않고 전적으로 이해해주고 싶었다. 나도 잠드는 게 수월하지 않아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그래서 호르몬 이야기도 나누고 다른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 생각도 해보고 알람 시계에만 의존할 수 없으니까 엄마가 꼭 깨워주기로 약속해서 매일 아이를 깨우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내 팔자엔 이거 없는 줄 알고 일찍 샴페인 터뜨리며 자만했던 나.. 안녕.
달래도 보고 일으키고 잔소리를 하며 좀 싫은 과정을 넣어야 했지만 대개 꿍얼대면서도 결국 씻으러 일어났다. 그런데 어느 날, 이좌식이 깨우고 있는 나한테 개짜증을 낸 것이다. (그냥 짜증 아니고 완전 개.짜.증.) 이게 지금 오냐오냐하니까 상황 파악이 안 되는구나..? 나는 깨우는 걸 그만두고 냅뒀다. 8시 15분이 지나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학교는 제2의 연락망인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고소하게도 케군도 전철 안에 이동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제3 연락망인 할아버지에게 연락이 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아버지가 나한테 전화를 하셨다.
“하루가 학교에 안 왔다는데 괜찮냐!!”
“네~ 아버님~ 쳐 자고 있어요~.”
이런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난 하루는 그날 결국 모든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하고 학교를 결석하게 되었다.
(케군이 나 대신 학교에 연락해 주었다.)
체면이 매우 중요한 하루에게 늦잠 자다 긁힌 이미지의 손상은 어마어마해 보였다. 아주 심장이 발 밑까지 철렁했을 듯. 게다가 친구랑 놀려고 학교 가는 아이에게 긴긴 하루는 심심하고 지루한 고행이 될 것이었다. 실제로 힘든 오전시간을 보내고 기분을 바꾸려고 박물관으로 갔던 것이다.
진지하게 정말 많은 말을 하며 보냈다.
성장기 어려움을 이해하고 널 도우려는 엄마에게 짜증을 낸 것이 잘못이라고 그런 대우를 받으며 계속 도와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루는 진심으로 사과하며 반성했다. 방학 전까지 여전히 하루를 깨웠지만 그 일 이후로 나한테 짜증을 내며 일어나는 일이 없어졌다. 암.. 고마워해야지. 사회생활 똑바로 하는 제일 기본 중의 기본을 말이야. 응?
만약 나한테 이게 사춘기의 한 증상이라는 지식이 없었다면 매일 이렇게 깨우다 아이 인생을 오히려 망치는 게 아닐까 불안하거나 혹은 이런 것도 못하는 아이에게 화가 났을 것이다. 이건 정말 일시적인 거고 (최장 고3까지라는 일시적이기엔 매우 긴 얘길 주변에서 들었지만 ㅋㅋㅋㅋ) 확실히 학창 시절을 벗어나면 진짜 다 좋아진다는 결말만은 다들 입을 모아 말해서 안심하고 깨우기로 했다.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길.

오랜만에 시댁 박물관도 갔다.
어머님의 유골에 생전에 자주 쓰시던 모자를 씌워 놓은 아버님. (빵-)

8미리 비디오카메라.
이거 들고 운동회 가신 거임.
ㅋㅋㅋㅋㅋㅋㅋ 와… 옛날이여~~

언제 적 핸드폰…

케군이 놀던 생선 이름 적힌 트럼프
케군은 해양동물 마니아였음.

하루가 태어났을 때쯤 구입하신 거 같은 대량의 육아 책
뇌를 키우기 위해 하면 안 되는 것들 55

초등생 때 차이가 나는 스스로 공부하는 법

머리 좋은 아이로 키우기 위한 조부모의 습관
손자를 위해 요즘 육아 공부하셨던 마음씨가 너무 감동인데 하나같이… 공부 잘하길 원하셨던 건 아닐까 ㅋㅋ 흑심도 엿보이는 셀렉들 ㅋㅋ

어머님은 알고 보면 음대생이었다.
그래서 전 세계에 딱 4대밖에 없다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음. 그런데 거기다가 도레미파솔라시도 스티커 덕지덕지 붙여놓은 철없는 손자들.. (후… 안 볼란다.. ㅠㅠ)

왜 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자고 있죠?

동네에 스시로가 생겼다.
회전초밥 체인점이 서로 미친 듯이 앞다투며 경쟁을 벌이는 덕분에 에헤라디야- 마냥 좋다.


스시로가 테이블마다 붙어있는 대형 화면에 오리지널 캐릭터들이 경주하는 게임을 내놓았는데

너무.. 귀여워 ㅠ,.ㅠ 하루랑 나는 완전 첫눈에 반해버렸다. 많이 시켜 먹을수록 게임을 할 수 있는데 뭔가 당첨되면 캐릭터 인형을 받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전 캐릭터 수집하고 싶은 본능을 자극시킨다.



요즘 더듬더듬 읽던 한글도 빨라지고 정확도도 높아져서 듀오링고 무료버전을 한 번 시켜봤는데 하룻밤 새에 모든 레벨을 다 깨고 말 그대로 만렙을 찍어버렸다.

저런 복잡한 발음도 AI 스피킹으로 패스했다.
너무너무 발음 잘한다….

신주쿠에서 볼 일을 보고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다. 학교 갔다 온 하루한테 엄마 어디야? 전화가 왔다.
-엄마 아직 신주쿤데 하루 오늘 학원 없지?
-신주쿠…? 집에 오려면 멀었네? 힝…
-여기.. 올래?
혼자서 전철을 타고 동네를 벗어나 본 적 없는 하루에게 모험을 하나 시켜봤다. 솔직히 못하겠다고 내뺄 거 같았는데
-어!!! 엄마 나 가 볼래! 00선 타고 가면 되지? 알았어! 기다려!!
말이 끝나자마자 신이 나서 채비를 시작하더니 금방 전철을 탔다는 문자가 왔다. 총알처럼 역까지 뛰어왔나 보다. 그러더니 내리는 그 순간까지도 계속 문자가 왔다.
엄마 00 지나고 있어.
엄마 다음은 00지?
엄마 이제 다음 00역으로 가고 있어.
엄마 이제 나 00랑 00지나면 내려.
엄마 지금 뭐 보여? 나는 카드 찍고 나가?
전철 타는 내내 라이브 중계를 하듯 쉴 새 없이 문자를 보내서 답장을 할 타이밍 잡기가 힘들 정도였다. 내심 엄청 불안했다는 증거다. ㅎㅎ
내리자마자 에스컬레이터 딱 한 개만 올라와서 기다리라고 한 곳에 잘 와줬다. 이게 뭐라고 또 감동적이면서 뭔가 울컹한다.



신주쿠 루미네 레스토랑에 가서 엄청 큰 말차 빙수를 사 줬다. 하루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다.

신주쿠에 있는 이케아에서 100엔짜리 핫도그를 먹고 자질구레한 살림도 조금 샀다.




그리고 저녁까지 해결하고 집으로 갔다.

타임 스퀘어 근처 남쪽 출구 쪽에
너무 익숙한 터널이 있었다.
왜 이 터널… 익숙하지..?

아.. 하루랑 커플티네 ㅋㅋㅋㅋㅋㅋ
터널이랑 커플티야ㅋㅋㅋㅋㅋㅋㅋ
'아들과 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루 인생 엿보기 : 이시카와 (8) | 2025.11.27 |
|---|---|
| 육아기록 : 만 10살 (7) | 2025.10.31 |
| 하루 만 10살 기록 (16) | 2025.05.23 |
| 눈물의 사쿠라 (21) | 2025.03.30 |
| 하루의 10살 기록 : 키자니아 12시간 (12) | 2025.03.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