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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여자

눈물의 사쿠라

Dong히 2025. 3. 30. 17:16

거의 몇 달 동안 나는 아이 공부를 가르치며 본업이 가정교사인 듯 보냈다.
내 블로그를 다 정독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닐 테니 다시 덧붙이자면 내가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시킨 게 아니다. 중학교 입시에 열을 올리는 건 나보다 아이 본인이다.
주변이 다 하니까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도 있고 거기다가 정말 큰 동기가 있는데 어이없게도 도시락을 먹고 싶다는 거다.  공립 중학교는 전부 급식이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사립학교에 가면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 편식이 심한 하루는 못 먹는 음식을 남기면서 초등학교 생활 내내 고통스러운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난 좀 일본이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학비 엄청 비싼 사립 중학교마다 삐까뻔쩍 시설 차려놓고 실력 좋은 선생님 고용해 놓고 왜 밥은 안 해 주는지가 의문이다. (내 추측이지만) 도시락 스타일이 없어지지 않는 건 상당수가 자청해서  “어머, 우리 아이 밥을 따끈따끈하게 내가 해 먹일 수 있다니. 그것도 6년이나! ” 감격스러워한다는 사실. 가끔 구닥다리 공식이 여전히 저변에 깔린 걸 발견한다. 애 도시락 매일 싸고 진통 없이 자연 분만하고 완모하는게 =모성애=좋은 엄마 이런 거.  근데 또 아이러니하게 도시락 반찬용 냉동식품은 넘쳐 남. 우리 아이한테 직접 산 냉동식품을 직접 도시락 통에 넣어주고 싶은 건가.

그래 뭐 다 좋다.
아이가 도시락이 좋아 어려운 입시를 선택한 것도 사립 중학교가 도시락을 싸야 한다면 까잇꺼 6년 동안 어떻게든 될 거다. 오히려 동기가 뭐든 간에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든 게 기특하다.

그런데 학원에서 5학년 과정에 접어드니 (선행은 피할 수 없다) 껑충 어려워졌다. 과학은 무슨 말인지 나도 모르겠고 산수는 점점 더 복잡해졌다.
2년간 힘겹게 잡아놓은 학습 습관이 위기를 맞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한 난관이 되겠구나. 나는 옆에 붙어 모든 과목에 조금씩 요령도 바꿔보고 암기를 도우며 적극 동영상을 활용해 서포트했다.
뚝 떨어졌던 시험 성적을 평균 이상으로 올려놨다. 약간 자신감을 회복한 것 같았다. 산수에서 제일 효과가 좋았던 것은 나랑 시합하는 거였다. 한 문제씩 풀고 승자를 가렸다. 빨리 그리고 정확히 푸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적당히 져 주는 게 기본이지만 대 놓고 져 주면 또 자존심 상해한다는 게 지랄 맞은 포인트다.

이 방법으로 한 동안 잘 굴러갔는데 어느 날 안 먹히는 날이 있었다. 너무 단순한 문제도 보자마자 오지게 짜증부터 내는 것이다.  연습장을 벅벅 찢으며 연필심을 부러뜨리며 온갖 진상을 부리다 급기야 나한테 버르장머리 없는 말대꾸를 계속 해댔다. 나는 그렇게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전생에 불나방이었을지도 모르는 뒷 일 생각 안 하고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다. 아이가 그 따위 꼬라지를 보이면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간다. 자식이고 뭐고 사람이 사람한테 저렇게 함부로 하는 게 맞아?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백보 양보해서 공부를 내가 시키고 사립학교 내가 가라고 한 거면 비위 맞추면서 설설 기며 참기라도 했을 거다. 나는 그냥 공립학교 가서 급식 먹는 게 더 오예스니까. 같이 문제 풀이하던 걸 뚝 그만두고 자리를 떠 버렸다. 아이가 연필을 집어던지며 소리 지르는 게 들렸다. 이게 맞아? 우리 지금 잘못된 거지? 나는 세면대 앞에 가서 서럽게 엉엉 울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예전과는 다르게 하루가 빠르게 침착해졌다. 그리고 자존심 부리며 한동안 뻐대던 모습도 없이 바로 곁에 와서 잘못을 빌었다. 자기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며. 너무 짜증이 나서 그랬다고. 미안해… 미안해… 아이의 진심이 느껴졌다. 어떤 책에서 그랬다. 용서만이 가장 크게 사람들을 바꿀 수 있단다. 용서가 가장 큰 교육이라고 그랬다. 그래서 나도 상처받아 범벅이 된 얼굴로 끄덕끄덕 용서를 했다. 서로 화해하고 보듬으면서 진지한 이야기도 나눴다. 그렇게 짜증이 나는 건 본인 실력보다 너무 어려운 문제를 풀기 때문이니까 다른 학원에서 천천히 배워보는 건 어떨까. 아니면 중학교 입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 아이는 어렵지만 노력하겠다고 지금 다니는 데 계속 보내달라고 했다. 그만두겠다는 것도 아니고 더 잘해보겠다는데 그런 의지를 꺾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또 같은 일이 일어났다.
19 나누기 2.2를 하는데 몫은 정수로만 구하라는 문제를 아이가 틀렸다. 나는 너무 간단한 문제라 틀린 척하기 어려웠다. 자기가 진 걸 알자 말투부터 달라졌다. 궁시렁을 넘어 계속 화를 내고 있는 애를 보기가 힘들었다. 최대, 최소 공배수도 구하고 반원에서 삼각형 뺀 면적도 구하는 애가 그냥 저건 꼬라지다. 기가차다. 어제부터 목이 붓고 두통이 있어서 병원에서 약을 받아 온 나는 인내심이 쥐똥만큼 밖에 없었다.
“여기 정수로만 구하라고 쓰여 있잖아.”
“어! 근데! 아! 진짜. 알았다고. 하면 되잖아. 하면!!! ”
와…. 오은영 선생님한테 내 말투에 잘못이 있었는지 오디오를 보내주고 싶다. 하늘에 맹세코 짜증 섞인 말로 애를 다그치지 않았다. 정수로만 구하라는 중요한 정보를 알렸을 뿐 썅. 애를 째려보다가 스멀스멀 엄청나게 약이 올라 … 급기야 애한테 소리쳤다.
“나는 이런 사람보다 못한 대우를 받다가 니가 소원대로 학교에 합격하면 난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서 니 도시락을 6년이나 싸야 돼? 내가 네 공부를 도우면서 좋을 일이 하나 없잖아! 엄마도 사람이야! 니가 사람한테 안 하는 짓을 왜 엄마한테 해! ” 정말 눈이 뒤집힌 채 그 뒤로도 한참 발악을 했다.

이제 나한테 공부 도와달라거나 같이 해 달라고 하지 말라고 못을 박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리고 무작정 걸었는데 바깥은 미친 듯이 벚꽃으로 만발했다. 웃고 즐거운 수많은 사람들이 다 거짓말 같았다. 나는 비참하고 처절하게 그 속을 걸었다.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겨우 음악으로 덮어 씌어 막았다.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 신기해죽겠다. 다들 이런 모멸감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하다. 나만 별난 거 같아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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