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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복날엔 닭을 먹고
일본은 보양식으로 장어를 먹는다.
처음엔 이 비싼 돈을 주고 설탕 발라 구운 생선을 먹는 게 이해가 안 됐지만 점점 장어 먹는 날을 즐기게 되었다. 이건 적응이 아니라 최면에 가깝다.
케군이 술에 취하면 단 걸 찾는 주사가 있다. 그 주사에 가장 덕을 보는 건 하루다.
말차, 녹차, 팥, 얼음 킬러
아이들마다 (특히 남자아이들) 과학 분야 중에 좋아하는 종류가 거의 하나씩은 있는데 생물을 좋아하면 기계는 별로고 별자리 좋아하면 동식물은 별로고 두루두루 좋아하는 아이를 본 적 없는 거 같다. 하루는 화학이나 기계, 날씨 쪽은 엄청 좋아하지만, 생물이랑 별자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 곤충, 벌레는 책에 있는 그림만 보고도 우엑.. 거리며 문제를 풀 정도다. 심지어 식물 뿌리 단면 같은 것도 징그러서 못 보겠다나. (환공포증 같은 건가)
방학 때 별자리 파트가 나왔는데 전혀 관심이 없으니 이름을 외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튜브로 쉽게 외우는 암기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노래로 만들어서 따라 부르는 것도 찾아보다가 케군이 시부야에 있는 과학관에 꽤 재미있게 만든 학습용 플라네타리움 프로그램을 찾아냈다.
시부야에 구글 사무실이 있나 보네.
이 지역 풍경 많이 바뀌었다.
별자리 신화 이야기 섞어가며 다른 아이들이랑 같이 퀴즈 맞추는 플라네타리움. 대성공이었다. 적어도 큼직한 이름들은 외웠다.
요즘은 특별한 곳을 가지 않는 한 아이 사진을 전혀 안 찍는 줄 알았더니… 왜 이렇게 많아. ㅋㅋㅋ
방학 때 사진이 계속 나오네.
일본 여름방학 숙제 중에 <자유연구>라는 게 있다. 관심 있는 주제를 알아서 정해서 형식과 구성도 마음대로 연구해 제출하는 숙제다. 대학생들 논문 주제 정하고 연구하는 느낌의 애들 버전이랄까.
일단, 테마를 정하는 것부터 보름이 걸렸다. 정말 골치 아팠다. 뭐 하지…? 엄마… 나 뭐 하지…? 입에 달고 지냄.
하루가 관심 있는 많은 것들 중에 가시화할 수 있고 또 애들한테 쪽팔리지 않을 수준이면서 그렇다고 또 심오하고 싶지 않댄다. 진지충처럼 또 하고 싶지 않대.... 나 참.
그렇게 해서 결정된 것이 아빠와 하루의 공통 관심사인 주식으로 결정했다. 도쿄 증권 거래서를 견학 가서 사진과 설명을 정리한 리포트를 쓰기로 했다.
니혼바시 근처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증권 거래소가 있었다. 여기도 너무 고풍스러운 외관이라 난 너무나 즐거웠소.
증권 거래소 마스코트는 소였소.
몇 년 전부터 케군은 하루 생일 선물로 주식을 선물했다. 항공사, 코카콜라, 베네세 (학습지) 등 하루가 생활하면서 눈에 띈 기업들의 주식을 사줬는데 경제 공부 말고도 이게 의외의 효과가 있었다.
어느 날, 본인이 갖고 있던 주식의 학습지를 직접 하면서 아… 이거 시스템이 이렇게 바뀌었네… 안 되겠네 라던지. 이번 스티커는 콜라보가 좋네. 오너의 시선으로 상품을 체킹 하더라 ㅋㅋ 매일매일 주식 어플을 확인하면서 아빠랑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묻고 뉴스에 관심을 갖는 거 같아서 너무 괜찮다.
그날, 견학 프로그램 중 가상 투자를 체험하는 교실에 참가했다. (예약제)
모든 자리에 태블릿이 있고 천만 엔의 가상 머니가 주어진다. 20분을 1년이라 설정하고 가상 뉴스를 토대로 자동차, 부동산, 제약회사 등 가상 회사에 투자를 하며 이윤을 남기는 게임이었다. 24명 정도 참가했는데
나는 8위를 했다!! 돈을 까먹지는 않았다!
그리고 하루가 6위 케군이 5위를 했다. 진짜 이거 누가 입금해 주세요. 너무 기분 째진다.
그런데 1위 아저씨… 밋친.. 2위도 200만 엔밖에 못 벌었는데 저 아저씨 혼자 4천만 엔 가까이 불렸다. 어나더레벨… 진정한 프로였다.
강사님이 1등 누구세요? 물어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는데 정말 어디 교감 선생님처럼 안경 쓰고 푸근하게 생긴 중년의 아저씨였다. (겁나 잘생겨 보임.)
여름방학엔 나도 방학이라 저녁을 자주 사 먹는다.
다이소에서 500엔 주고 채소 다지기를 사 봤다.
진짜 잘 된다. 이렇게 모양을 흔적도 없이 조사놓으면 다 잘 먹을 거 같다고 하더니 카레를 싹싹 먹어줬다.
편식쟁이도 키 큰 사람들 어딘가 있겠지..?
참 신기한 게 한국어는 나한테 밖에 안 배웠는데 어디 청춘드라마에서나 나올 거 같은 사춘기 남자 말투가 튀어나온다. 아! 알았다고!!! 아 진짜!!! - 이를 갈며 눈에 불을 켜고 하는 거친 말투.
이번 방학 때 사춘기에 대해 진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성장 호르몬이 뇌와 감정에 미치는 영향. 몸의 변화, 주변 사람들이 처하게 될 감정.
인터넷에서 사춘기 아들에 대한 책도 하나 주문했는데 과민하고 격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성에 대한 관심과 생리적 변화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해서 실패했다.
중간까지 읽던 하루가 아무래도 너무 내용이 이상했는지 -엄마.. 이건 좀 이상해… 하며 책을 덮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진짜 진짜 이성에 대한 관심이 제로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사춘기랑, 반항적인 기분이 드는 사춘기랑은 좀 다른 종류인가 보다. 같이 오지는 않는 모양. 나도 아직 배우는 중이다.
내 생일 때 하루한테 돈을 받았다.
ESTJ에게 최고의 선물인데.. 어떻게 알았지.
주말마다 할아버지 집에 가는데 시아버님 댁에 6마리의 거북이가 있다. 아주 작은 거북이를 아들들 (케군임) 이 데리고 와놓고 결국 아버님 어머님이 먹이 주고 청소하고 되었다고. 어이구…그런 게 거북이, 고양이, 토끼. 아주 다양하다. 그런데 다른 동물들은 수명을 다했지만 … 여러분 거북이는 진짜 신중해야 합니다. 장수의 심벌 아닌가. 번식까지 해서 바위만 한 거북이가 6마리…. 여태… 장수 중이다.
아무튼, 하루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집에서 거북이 밥을 주며 놀았다. 그런데 아버님이 힘이 부치시는지 요즘 거북이 밥 주는 걸 잊을 때가 많으시단다. 생각이 있으셔서 밥을 줄이신 건지 진짜 잊으신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루가 어느 날 할아버지 집에 다녀와서 자기 전에 나한테 이런 말을 하며 울었다.
-엄마, 지지네 집 (할아버지) 거북이가 너무 불쌍해.. 지지가 밥을 일주일이나 안 줬대. 배가 고파서 너무 고파서 내가 오면 하루한테 이렇게 막 (허겁지겁) 달려와. 하루가 밥을 엄청 퍼 줬는대도 또 달라고 발로 이렇게 이렇게 해. 너무 불쌍해…. 진짜 귀여운데… 오늘도 굶고 있으면 어떡해 … 지지가 죽으면 거북이 어떡해… 엄마는 우리 집에 거북이 못 데려오게 할 거지?
-응…
-하루가 결혼할 때까지 살아있어 줄까? 하루가 집 짓고 살면 하루가 데려올 거야
하며 내 품에서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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