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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여자

하루 만 10살의 기록

Dong히 2025. 2. 17. 21:56

이제 5학년이 되는 하루. 너무 드라마틱한 대화를 많이 해서 다 기록해두고 싶은데 훅훅- 지나가버린다. 사진도 남길 시간이 없다. 우리의 시간이 광속처럼 빠르다. 참 신기한 건,  하루가 나처럼 똑같이 느낀다는 것이다. 엄마랑 있는 시간은 앞으로 점점 더 짧아질 거라고 나랑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해서 예전 같으면 뭐든 끝까지 우겼을 텐데 요즘은 적당한 선에서 참는다. 어쩌다 상처가 될 만한 말을 하면 곧바로 아, 미안해.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고쳐 말한다. 이기적이게 굴던 상황에서 한 발 양보를 한다. 
 
유독 그런 날은 자기 전에 침대에 나란히 누워 하루 등을 안아주며 말했다.
"하루 오늘 엄마랑 좋은 시간 보내려고 애써준 거 알아. 너무 고마워."
"하루는 엄마랑 싸우기 싫었어. "
어떤 날은 내가 좀 화가 난 거 같으면 잘잘못 따지는 건 제치고 하루는 나한테 와서 말한다.
"엄마 화해하자... 우리 빨리 화해하자.." 
어디서 화해하자는 단어를 배웠는지 신기하다. 내가 먼저 화해한 적이 있어서 저런 말을 배웠을까. 그랬으면 참 좋겠다. 요즘 나는 먼저 손 내밀어 멋져 보일 기회조차 없다. 하루가 이렇게 늘 대인배처럼 내 잘못도 다 덮고 품어준다. 그제야 부랴부랴 

"엄마가 억지 부린 부분도 있었어. 하루 억울했지? 근데 먼저 말 걸어줘서 고마워. 엄마가 인내심이 많이 없고 나쁜 엄마라 그래. 엄마도 미안했어."  청산유수 하나는 다행히 타고나서 말로 변변치 않은 인간 됨됨이를 항상 땜빵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뭘 했길래 우리 아들은 엄마의 광팬이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육아 책에 나올 법한 테크닉 좋은 엄마도 아니고 천성적으로 사랑이 넘치는 엄마도 아닌데… 오히려 기분이 널을 뛰고 타이르긴커녕 몇 번 잔소리해서 안되면 소리 지르고 내가 이 집 왕 노릇한다.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내 냄비 성향에 질려하던 케군도 어느새 세뇌당해서 내 덕분에 이렇게 우리가 행복하게 산다고 알고 있다. 의심도 없이 이건 가스라이팅이다. 지독한 여자다 나는.
 
그래도 한 가지 짐작 가는 건 기분이 널을 뛰는 중간중간 너무 무드가 좋은 시점에서 내가 주는 사랑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이 집의 개그맨이 된다. (조울증인가?) 그때 물고 빨고 안아주는 엄마의 느낌이 하루는 세상에서 가장 좋단다. 중독적이라고 했다. 엄마랑 싸우면 험악한 분위기가 끝날 때까지 안아주지 않을 거라는 게 하나의 위협인가 보다. (나 너무 잔인하네 ㅠㅠ) 약간 똘끼 무드가 되면 유치한 몸개그가 폭발하는데 그런 엄마를 보고 하루는 오장육부가 아파질 때까지 웃어젖힌다. 한 번씩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웃음이 안 멈추면 그만 웃으라고 멱살을 잡아야 진정이 된다. 웃다가 뒤진 사람... 없겠지? 근데 숨을 안 쉬니까 무섭단 말이야....


이거 밖에 내 인기의 비결이 생각이 안 나네.


쓰레기장 청소하는 로봇 체험하는 전시였는데

쓰레기 미니어처들 너무 잘 만들었어..

 
12월은 열이 두 번 났었다. 
열이 난 날이면 꼭 악몽을 꾼다. 
그날도 자다가 일어나 울면서 내 방에 들어왔다.
같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 또 한 번 울었다.
매번 기억을 못 해서 동영상을 찍어놨다. 
너무 … 귀엽다.
 

 

지긋지긋하던 12월의 콧물
콧물 빼는 기구를 알아봤다. 입으로 빨아주는 기구는 내 자슥이지만 비위가 상한다. 내 입에 들어가는 구조가 아닌데도 그냥 기분이 그렇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케군도 싫어했다. 다행이다..? 전동은 너무 비싸서 망설여졌다. 그러다가 손으로 펌핑하는 획기적인 걸 발견했다. 

제대로 잘 뽑아준다.
게다가 초4는 혼자도 된다. 
세정도 간단했다. 가격은 3850엔 

대만제품이었다. (확실하지 않음) 

아프지도 않았는데 엄마랑 같이 자고 싶다고 찡찡댄 날.
싱글침대라고 이좌식아. 끝까지 거절했더니 
내 침대 밑에 자기 방 침구를 끌고 와 혼자 세팅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같은 방 공기를 마시고 싶은 팬심 같은 건가 보다.
다 같이 따라온 인형 친구들과 판다개 (판다+개 라고 함) 슬리퍼까지 고생이 많다....

미국 언니가 하루한테 신기한 문구를 많이 사다 줬다. 이거 봐 이 냄새 너무 신기하지? 이 냄새 완전 웃기지? 

그런데 의외로 흥분하면서 제일 좋아한 부분이
007 가방 같이 생긴 색연필 케이스였다.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2 스쿱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셔서 냉큼 성취해 줬다. 

 

야키토리 이자카야에서 저녁밥도 해결했다.

(케군 줄 거) 포장되냐고 물었다. 일본어가 안 통해서 점장님이 뛰어나오셨다. 요즘 이자카야 아르바이트생은 라떼와는 다르게 중국인 한국인이 거의 없고 남아시아 (방글라데시... 네팔 이런 분들로 보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유학생이 아니라 오로지 일만 하러 왔는지 진짜 일본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영어로도 소통을 시도해 봤는데 영어가 됐으면 일본 따위 오지 않았겠지 역시 통하지 않았다. 다음엔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봐서 번역기로 시도해 봐야겠다. 鳥貴族 토리키조쿠 (닭귀족) 는 포장이 가능했다. 비닐봉지랑 일회용 포장 케이스를 주문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여기 모든 메뉴가 370엔인데 맛있고 금연이다. 타블렛에 한국어 메뉴도 있다. 일본어 서로 못해도 괜찮다. 특히 추천하는 메뉴는 

솥밥이다.

토리카마메시 라고 읽는다 한국어 메뉴로는 어떻게 번역해 놨을지 모르겠지만 직역하면 '닭 솥밥' ? 아무튼 저 그림을 찾아서 주문해 봅시다. 

자기 용돈으로 인형 뽑기를 실컷 해 보고 싶다 그래서 따라가 줬다. 나는 도박이랑 게임 현질하는 사람들이 병적으로 싫어서 인형 뽑기도 탐탁지 않다. 여기부터 서서히 사행성 게임에 중독되면 어떡해 ㅠ..ㅠ 자식 농사 젤 망하는 게 그 꼴 같아.. 무셔..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할 까봐 태연한 연기를 했다. 사실 한심해서 속으론 썩어 들어갔다. 하필 강아지 두 마리를 뽑아서 심사가 뒤틀렸다. 그리고 두 번째 간 날 돈을 거덜내고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흡족했다. 가차가차 (캡슐 장난감)은 무조건 뭐가 나오긴 하지 인형 뽑기는 진짜 사기단 수준 아닌가...

그리고 하루 생일날

하루가 제일 좋아하는 대만 카스텔라를 사다가 축하해 줬다.

하루가 거실에서 이른 저녁밥을 먹고 있는 동안 하루 방에서 몰래 케이크를 준비해 두고 하루의 아가들 (인형들)을 불러 모았다. 

"하루야~ 밥 먹는데 미안한데 잠깐 이리 와 봐."

"뭐라고? 오라고?"

"응~ 잠깐 여기와 봐."

"왜에...?"

 

자기가 뭐 잘못했나. 방 더럽게 했나? 걱정하면서 왔다고 한다 ㅋㅋ

 

문을 여는 동시에 

"해피 벌스 데이 투유~~~~"

촛불 사이에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동그란 눈이 반짝이며 입이 쩌억 벌어진다.

"우와~!!!!!! 뭐야!!!!"

 

친구들을 와락 안고 

두 팔을 만화처럼 번쩍번쩍 올리며 좋아했다.

너무 행복해하는 곰돌이

사랑해.

10년째 사랑해.

버스를 타고 가면서 건너편에 앉은 하루가

너무 귀여워서 찍었다.

핸드폰으로 뭘 저렇게 하나 궁금했는데 

잠시 후  이런 사진이 전송됐다.

나보다 먼저 하루가 나를 찍고 있었다.

엄마가 예뻐서 찍었단다. 

 

아.. 내 열성 팬... 하나뿐인 내 팬

이러다 탈덕당하면 나 너무 충격이 클 거 같아.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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