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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어나실 분

저요!

체크아웃을 하고 유명한 구리코 간판을 보여주러 나섰다.

첫날 먹어두길 잘했지.
도똠보리 근처 호라이 551에 어마어마한 줄이 있었다.

일명 이민가방으로 불리는 싸구려 천떼기 가방 하나로 오사카에 온 나는 작은 사이즈 캐리어를 상점가에서 샀는데 기억 속 가방가게랑 여기가 너무 흡사하다.
그때 온 지 얼마 안 돼서 어쩌다 알게 된 일본인 친구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느라 바빴다. 가방을 사고 나와 또 필요한 거 없냐고 묻는 친구한테 그 왜… 여자들이 쓰는 그거 있잖아 아 왜… 생리대란 말을 일본어로 몰랐다. 직접적으로 설명하기 너무 난감했지만 너무 말이 안 통해서 어쩔 수없이 밑에서 피가 나오는.. 거기까지 설명하고 수치스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던 기억이 난다. 말이 안 통하는 약간의 서러움 같은 게 좀 느껴졌었다. 친구가 아아 나프킨! 이라고 가르쳐줬다. 냅킨? 휴지 아냐? 그래? 휴지야? 응. 냅킨 휴지란 뜻인데? 몰라. 일본에선 나프킨이야. 이런 대화를 하며 가방 가게 앞에서 수치와 컬처쇼크를 연달아 느꼈던 기억이 떠오른다.

와… 오사카 메인 거리에 사람들이 꽉 차서 깜짝 놀랐다. 큰일 났다. 11시 반인데 먹을 데가 없겠는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루가 너무 신기해했던 쿠이다오레 타로
쿠이다오레 타로가 있었던 건물은 유명한 음식점이었다가 나중에 레트로한 테마로 푸드 코트랑 희극무대 극장이었었는데 지금은 전부 레스토랑 건물로 바뀌어있었다.

그때 이 건물에서 500엔에 오와라이 개그 쇼를 볼 수 있었다. 작은 소극장에 개그맨 콤비 둘이 만담을 하다가 종종 관객들이랑 얘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여기서 제일 멀리 왔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어떤 남자가 손들며 ”아오모리!!“
동북지방에서 왔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 오오오~~ 인정하는 목소리로 반응했는데
내가 손들고 ”한국!!“ 이래서
다들 더 크게 오오오오!!!! 하고 손뼉 치고 웃어줬었다.
새록새록 생각나는구먼.

케군이 이 건물 2층에 오코노미야끼 집이 있어! 했고 나는 일단 자리가 있으면 뭐든 오케이! 뛰었다. 하루한테 오코노미야끼 집 가도 괜찮겠냐고 양해를 구했더니 하루가 의젓하게 ”오사카에 왔는데 가자! 난 괜찮아! 밥은 있겠지. “ 흔쾌히 말해줬다.  

아니 근데 이 건물 2층부터는 그 많던 사람들이 계단은 죽어도 오르지 않겠다 단결을 한 것 마냥 손님이 없었다. 연어 떼 같이 물결치던 그 관광객들은 신기한 간판 사진 찍고 싼 타코야끼나 라멘 한 그릇을 먹으려고 온 것이었나. 점심시간이 아직 안 돼서 파리 날린 거라고 믿고 싶구만.

오코노미야끼는 양배추가 한가득 들어간 생각보다 건강한 음식이다. 이게 소스 양을 조절하면 정말 좋은 음식인데 소스랑 마요네즈로 칠갑을 한다는 게 좀 문제. 하지만 그래서 맛있다.

하루가 먹을 수 있게 고기랑 소시지도 같이 나오는 콤비를 하나 시키고

김치가 들어간 오코노미야끼를 추가로 시켰다.

이것이 오코노미야끼 집 명물 마요네즈 빔!!!!!!
이걸로 라테 아트처럼 마요 아트를 해 주는 집도 있다.
2미터 밖에서 쏘는 특이한 집도 있음.
직관하면 비명 나온다.
진짜 내 얼굴에 쏠 거 같은 비주얼인데 정확도 100프로 ㅋㅋㅋㅋㅋㅋ

와… 여기 진짜 맛있었다.
아마 오사카 사람들은 더 맛있는 데를 알고 있겠지만 도쿄에서 온 우리는 충분히 만족했다. 케군도 진짜 맛있다고 물개 박수 치고 맥주 벌컥벌컥 와구와구 ㅎㅎ

하루는 나름 밥을 철판에 볶아먹으면서 재밌어했다.

“여보짱, 하루 기특하지. 자기는 먹을 수 있는 거 없고 특별한 것도 못 먹는데 엄마 아빠 오사카 관광시켜 주려고 오코노미 야끼 집을 아무 불만 없이 따라온 거 봐.”
좀 더 어렸을 땐, 입이 대발 나와서 따라와도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고 앉아있었는데 그날은 달랐다. 너무 기특하더라. 마음을 표현하니까 하루 표정이 너무 뿌듯해하는 게 보였다.

오사카에서 내가 너무 귀여웠던 것이
도똠보리를 관광했던 것보다

도똠보리를 관광하는 하루를 관광하는 거였다.
저 쪼꼬만게 관광하는 거 너무 귀여워

우아!
엄마!
저거 움직여!
찍어야지!
와!!!!!

계속 탄성을 지르며 관광객 모드가 정말 제대로였던 하루.

여기야 여기 엄마!!!!


나 왜 감격스럽지.

25년 전에 구리코가 보이는 앞에서 엉성한 그물 니트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똥 머리를 틀고 찍은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려놨었다. 볼이 통통하고 정말 예뻤다. 무엇보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대감과 자신감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같이 워킹홀리데이 준비하는 사람들 모임에서 만난 지워니랑 돈키호테 관람차를 탔었다. 지워니는 전국을 돌며 숙식 해결해 주는 곳으로 워홀을 다녔는데 무턱대고 편지로 일자리를 구해 무턱대고 기차 타고 찾아다녔다. 여자애가 겁도 없다 싶기도 하고 그런 정신이 너무 부러웠다. 한 번은 해바라기가 가득 피는 시골 여관에서 일하다가 직원들 숙소에 불이 나서 커튼을 잡고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고 했다. 한밤 중에 잠옷만 입고 빈털터리가 된 지워니랑 직원들에게 소방서에서 만 엔씩 쥐어주었다. 그 길로 시장에 가서 몸빼 바지랑 티셔츠 하나씩을 사고 날 만나러 왔다. 난 또 너무 어울려서 몸빼바지가 취향대로 고른 옷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아무거나 산 바지라고 하길래 역시 패션의 완성은 몸매구나 했던 기억이 난다.

오사카 다녀와서 하루랑 찍은 사진을 지워니한테 보내줬다. 우리의 오사카를 기억하냐고. 지워니가 언니가 며칠 재워주지 않았다면 자긴 정말 길거리에 나 앉았을 거라며 그때의 고마움을 계속 말했다. 난 신나게 떠들고 웃고 너무 재밌기만 했는데 그때 내가 지워니를 엄청 돕고 있었던 걸 처음 알았다. 생각해 보니 지워니를 재워 준 룸메에게도 이제야 고마웠다.

오사카 성으로 향했다.
킨테츠 노선도에서 예전에 내가 살았던 역을 하루한테 보여줬다. 자꾸 감격스럽다.

나는 시월의 일본 바람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마자토 역은 바깥에 있었다. 처음 노을이 지는 역 끄트머리에 서서 미지근한 바람을 맞았던 게 시월이었다. 그 순간의 모든 감각이 아직도 너무 선명하다.

오사카 공원 역에 도착해서 에스프레소 프라페를 시켰다. 잠깐 화장실 갔다 온 사이 아빠를 졸라서 하루가 한 모금 쭈욱 마셨나 보다.
날 보자마자 반짝반짝한 눈을 하고 눈썹을 한 껏 축 늘어뜨려 엄마~~ 이거 너무 맛있어~~~ 헝헝… 줄줄 녹아내렸다.
ㅋㅋㅋ 어른되면 실컷 마셔.
그러자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 8년이나 기다려야 되다니.. 빨리 어른 되고 싶다.”
아이고 웃겨라 ㅋㅋ
18살 되자마자 에스프레소 프라푸치노 마실 기세였다. 중학생쯤 돼도 마실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몇 살부터 다들 마시지? 궁금하다.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던 오사카 성.
일본 성 사진은.. 이제 다들… 지겨우시죠.
나도…

ㅋㅋㅋㅋ 점점 성 안의 사진 안 찍고 있음.
차이점을 모르겠다. ㅋㅋ

신오사카 역으로 출발

집에 오는 길에 또 사건이 있었다.
내가 도시락을 사 오는 동안 케군이랑 하루가 구시카츠를 주문해 놓은 것이다.
아니 이노무자식들… 주문받고 튀기는 걸 언제 기다리고 있어… (부글부글) 너무 이해가 안 가는 행동에 기가 막혔지만 이미 주문이 끝난 상태라 기다려야 했다.
근데 한 술 더 떠서 케군이 자기는 회사에 돌릴 과자 사러 간다고 기차 안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진심이냐고. 남은 시간이 고작 10분 밖에 없었다고. 정녕 리얼이냐고.
진짜 미안스럽게 좀만 서둘러달라고 부탁해서 겨우겨우 구시카츠를 받아 들고 하루 손을 잡고 신칸센을 향해 달렸다. 그 계단을 어떻게 뛰어올랐는지 기억도 안 난다. 마지막에 1,2분 남겨놓고 케군한테 빨리 오라고 전화를 했다. 미친. 왜 아직 안 보이는 거야. 속이 막 타 들어가는데 신칸센이 움직였다. 망했다. 뭐 하고 있는 거지..  머릿속이 하얗게 된 순간 케군이 다른 칸에서 문을 열고 나타났다. 숨을 고르며 한다는 말이
“헉헉…시간을 잘못 알았어…”
10분 뒤 시간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거다.
어쩐지…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 피식 웃음이 났다.
“왔으면 됐어.”
근데 동공이 계속 흔들리는 케군의 상태가 너무 이상했다.
“왜 그래?”
“맥주를… 못 샀어…”
ㅋㅋㅋㅋㅋㅋㅋ
좀 불쌍했지만 자업자득이다.
요즘 신칸센은 술 자판기도 없고 돌아다니며 판매하는 카트도 없어졌다. 점점 케군은 거동이 수상해졌다. 좌불안석이다. 왜냐면 눈앞에 구시카츠의 튀김 냄새는 솔솔 났기 때문이다.
갑자기 얘가 기상천외한 말을 했다.
“다음 쿄토역에서 잠깐 내려서 사 와야겠어.”
이 미친 발상에 어이없었지만 결행할 게 분명했다.
교토역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자마자 케군이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모든 승객이 탑승을 마쳐버렸다.
나는 톡으로 ‘손님 다 탔어!!! 이제 문 닫힌다!!’ 긴급함을 알렸다. 케군은 빈 손으로 다시 헐레벌떡 돌아왔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민첩하게 다 올라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케군은 소고기 도시락과 튀김 세트를 두고 맥주는 없는 지옥의 기차 여행을 해야 했다.
너무 슬퍼 보여서 위로해 줬다.
“그래도 한 번 내려서 다시 타려 했던 건 진짜 미친 발상이다. 그건 너무 했다 너. “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더니 케군이 기가 찬 말을 했다.

”생각해보니 그냥 이 차 놓치고 나만 다음 차를 타고 왔어도 됐겠어. “
”….. 그게 돼.? “
”입석으로 서서 와야 되긴 하지만 돈이 추가로 들거나 불법은 아냐. “
”가족도 없는데..? “
”금방.. 이니까.. “
불쌍한 마음이 싹 날아가네.
“가족 버리고 술 살 걸이라니 알콜 중독이네. “
이랬더니 자기가 생각해도 그랬는지 피식 웃는다.

케군 말로는 정확한 차 시간을 놓쳐도 차비가 다 날아가는 게 아니라 같은 구간의 차를 입석으로 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ㅎㅎ 그렇다고 합니다.

가다가 멀미약 먹는 걸 잊어버린 하루가 멀미를 시작했다.

케군이 발 맛사지를 하면 나을 거라고 정성스레 맛사지를 해 줬다. 멀미랑 발 마사지는 아무 관계도 없고 하나도 효과가 없었겠지만 하루는 아빠가 갸륵하고 고마웠을 거다. 둘이 꽁냥 대는게 너무 귀엽다.

도쿄역 천장을 처음 본 하루가 또 귀엽게 관광을 했다.

여기 처음 보고 나도 사진 찍었는데.

다녀와서 동서랑 아버님한테 케군이 교토역에서 내려 술사려고 시도한 만행을 일러바쳤다. 모두 미친놈 보듯 해줘서 사이다였다.

오사카 여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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