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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위크에 오사카를 질렀다.

아니… 사람도 많고… 박람회 때문에 미어터지고… 엔화가… 외국인이… 붐비는 곳이 너무 싫은 케군이 꿍얼거리며 싫어라 하는데 설득하기 너무나 귀찮아 딱 한 마디를 건넸다.

“경비는 다 내가 낸다.”
그래도 싫으면 난 아들이랑 둘이 가겠다. 했더니 모든 불만을 청산하고 눈을 반짝이며 입을 다물었다. 한술 더 떠 호다닥 신칸센 예약페이지를 펴며 나한테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그럼, 자리랑 시간은 이걸로 하면 될까? ” 부비적 부비적 파리 한 마리가 따로 없다 ㅋㅋㅋ

부부싸움의 일부는 결국 이런 걸로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 깨달았다. 너랑 나랑 하고 싶은 게 다르고 가끔 의견이 다를 때 싸우거나 상대방을 설득시킬 필요 없이 각자에게 피해가 안 가는 선에서 내 돈으로 내가 책임지면 된다. 그러기 위해 모든 주부님들이 알바나 부업으로 작지만 수입을 만드는 것을 너무너무 추천드린다.

하루에게 오사카 박람회를 약속한 것은 무려 반년 전.
그렇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선물 제2탄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하나만 허락하는 건데…)

어디 데려가 주겠다, 꼭 사 주겠다는 약속을 한 번도 가볍게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오사카 박람회도 반드시 데려가 주려고 오랫동안 계획했다. 10월까지 개최하는데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골든위크 기간이 아니면 시간이 나질 않았다. 비싸도 사람이 많아도 어쩔 수 없다!

도쿄역부터 엄청난 사람의 물결이었지만 나는 이런 것도 공부고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신칸센 개찰구 입구가 변비 걸린 장처럼 꽉 막혀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구석 안 쪽에 인터넷 예매한 IC카드 전용 통로가 있었다. 이걸 몰라서 서 있는 사람들이 안타까웠는지 역무원 아저씨가 교통카드에 티켓 입력한 사람은 여기예요~ 소리 지르고 계셨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를 어쩔 수 없이 잔인하게 가르며 힘겹게 찾아가 쾌변 하듯 빠져나왔다.

-엄마 왜 다 저기 줄 서 있는 거야?
-교통카드에 신칸센 티켓을 연동 안 하고 종이 티켓만 가지고 있어서 줄 서는 거야.
-왜 저 사람들은 그걸 안 했어?
-교통카드 번호가 14자린가 그런데 신칸센 예약 페이지에 접속해서 일부러 하나하나 넣어서 연동해야 돼. 그게 귀찮거든.
-엄마랑 아빤 왜 했어?
-먼저, 도쿄역에 도착해서 종이 티켓으로 바꾸는 절차를 줄일 수 있고, 종이 티켓을 만약에 신칸센 안에서 잃어버리는 오사카 도착해서 곤란해지니까 디지털로 입력했어.
-오… 우리만 여기 쑥 통과해서 너무 멋있다.

생생한 공부가 아닐 수 없다.

20분 전에 신칸센 플랫폼에 도착했다.
이런 날에는 혼돈 그 잡채기 때문에 승강장에 미리미리 도착해서 스탠바이 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냥 타면 될 거 같지만 뭔가 되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리가 탈 신칸센 자리에 줄을 서자 앞에 서 있던 아저씨가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알고 보니 다음다음 차를 타는 분이었다. 얼마나 일찍 오신 거냐고 물었더니 1시간 뒤 차라고 하셨다. 아니.. 그건 너무 일찍 오신 거 아니에요? 했더니 자유석이니까 일빠로 타서 앉고 싶다고. 어? 자유석도 있어요? 아 노조미는 골든위크엔 없는데 히카리는… 어떤 건.. 있고 없고… 신칸센 시스템을 알려주셨지만 중간에 따라가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에겐 너무나 어려운 일본 열차 시스템이었다. 모르겠어요.. 절레절레..

아저씨는 오사카 사람이었다. 최애 가수의 콘서트를 보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30년 간 팬이라고 하셔서 놀라웠다. 하루한테 박람회 잘 다녀오라고 30년 전 오사카 박람회의 놀라운 인기 이야기도 보태주시고 엄청 같이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원래 도쿄 오면 아무한테도 말 안 거는데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그렇다며 좋아하셨다. ‘저희도 좋아요~’

하루가 신칸센에서 뒤늦게 벤또를 사 온 케군한테 모르는 아저씨랑 대화한 이야기를 해줬다.
케군은 ‘ㅂ’ 이런 얼굴로  신기해했다. 본인 아들이 모르는 사람이랑 자꾸 말 섞는 게 참 신기한 뼛속까지 도쿄 사람.

신오오사카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내 가슴이 막 뛰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제일 처음 갔던 일본이 바로 여기 오사카. 내 생애 가장 큰 도전이었던 오사카 생활. 학교도 직장도 없이 워홀 비자 하나만 믿고 덜렁 도착한 이 땅에서 나는 고작 일 년 만에 미드 한 시즌 정도 될 만한 에피소드를 찍고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잠깐 등록한 일본어학원에서 만났던 애들, 길다가 만난 한인교회 사람, 그분 덕분에 만난 내 룸메, 동유모 알바 찾다 만난 사람들, 하루 일하고 잘린 한국식당, 남바에서 하던 면세점 알바 사람들은 아직도 연락하고 지낸다. 일 끝나고 밤새 놀아 준 일본인 친구들, 한신 야구 우승하던 날 도톤보리에 뛰어들던 텐션 미친 일본애들, 마침 완공된 도톤보리 다리, 돈키호테 관람차, 그 짧은 시간에 동갑내기 재일교포한테 고백도 받고, 놀이터에서 만난 같은 동네 일본애랑 연애도 했어요. 강아지 쓰다듬었을 뿐인데 걍 연애가 되던 20대. 의사랑 간호사만 모인 재일교포 모임에도 나갔었는데 나한테 번호 묻던 그 잘생긴 의대생.. 왜 나 걔한테 마음 안 줬니. 정말 어렸다 어렸어. ㅋㅋㅋㅋ 아메무라에서 구제옷 사고 남바에서 라멘 먹고 츠루하시에서 갈비 먹고 한큐 타고 교토 갔다가 날 잡아 나라공원에도 가고.. 추억의 오사카!

하아.. 그런 곳을 이제 아들이랑 오다닝.

치아키 센빠이가

여기도 치아키 센빠이가
오사카에서 많은 광고를 하네?
타마키 히로시는 간사이 (나고야) 출신이었군.

도쿄는 곰돌이다 다치는데 이런 사소한 그림도 다르다는 게 너무 재밌다.

무인양품 500??

500엔 이하의 무인양품만 모아놓은 곳이라고 한다. 우리 동네에선 본 적이 없었다. (도쿄에도 몇 군데 있다고 함)

숙소 가는 길에 앉을자리가 보이는 타코야끼 집을 발견했다. 아직 체크인 시간 남았으니까 가자 가자!!!

会津屋 아이즈야 라고 하는 이 집은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정말 너무너무 잘 찾아간 곳이 아닐 수 없었다.

오사카 출신인 학생분한테
“타코야끼 뭐.. 긴다코 (도쿄에 많은 체인점)에서 먹나 오사카에서 먹나 똑같은 거 아니에요? ” 하고 물었더니 숨을 멈추시면서
“허어어억!!!!! 아니요! 아니요! 선생님 진짜 달라요. ”
라며 기겁을 하셨다. ㅋㅋㅋ
“저는 도쿄에서 돈 주고 안 사 먹는 게 3개 있는데 타코야끼, 오코노미야끼, 우동이에요. ”
(네? 우동도요?? 를 말하고 싶지만 넣어두고) 타코야끼의 그 반죽 자체가 다르다고 하셨다. 육수를 정말 많이 써서 진짜 맛이 깊고 풍부하다고.

아… 이거 어디서 들어 본 말인데…
아. 맞다.. 부산 친구가 떡볶이 말 할 때 했던 말이다!!! 부산에서 떡볶이는 길거리 음식이나 주전부리 아니고 진짜 요리 레벨이라고. 조미료 맛으로 그냥 자극적으로 만든 서울 떡볶이는 그냥 쓰레기라고 ㅋㅋㅋㅋㅋ 부산은 깊은 육수를 우려서 풍미를 내야 그게 그게 떡볶이라고 했다.

나루호도.
그리고 우리가 찾아간 곳도 정말 깊은 육수 맛이 나는 타코야끼 집이었다.

기대반 걱정반

위에 파 뿌려주면 어떡하지…
마요네즈 싫은데 어떡하지….

기대 기대..

그리고 나온 아이즈의 타코야끼!!!

소스가 없다!
마요네즈도 카츠오부시도 없다!!!

그저 깊은 육수 맛과 쫄깃 바삭한 반죽 맛으로 즐긴다. 정말 반해버렸다. 하루가 다리를 달달달달 떨면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엄마.. 나 이거 맨날 먹을 수 있어.. 콧평수를 넓히며 킁킁 먹었다.

역시… 음식은 남쪽으로 갈수록 맛있구먼. 도쿄에서 먹었던 건 그냥 타코야끼가 아니라 타코야끼 소스였다. 행복한 우리 둘과는 달리 맥주를 하나 시켜놓고 안주를 기다리던 케군은 헐벗은 타코야끼에 당황하며 테이블 위 아래를 더듬었다.
“소스는… 어디… 소스가… 어디… 원래 소스… 이거.. ”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소스 없이 먹는 타코야끼였다.
하루가 아빠한테 육수 맛을 느껴보라며 다독였다.

나는 여기 살아도 봤으면서 왜 오사카 음식에 대한 기억이 없는지 더듬어 봤는데 진짜 그 시절에 난 돈이 없었다. ㅋㅋㅋㅋ 너무 가난해서 뭘 먹고 다닌 기억이 없다. 슈퍼에서 세일하는 재료들을 사다가 집에서 만들어 먹거나 편의점 음식들로 대충 때웠다. 이제 나이 들고 로컬 여행을 다니며 드디어 일본 음식들을 제대로 맛보고 있는 느낌이다.

호텔 맞은편에 있던 양배추 야끼.
뭐지? 뭐지? 홀린 듯 구경 가는 케군

계란도 비싼데 저 볼륨이 200엔이었다.
아침밥으로 사 볼 걸. 양배추가 한가득.. 오오..

호텔 프런트에 고급스러운 볼펜꽂이가 하나 있었다.
케군이 체크인하는 동안 하루랑 내가 그 볼펜 꽂이 하나를 보고 재잘재잘 많은 말을 늘어놨다.
-엄마 여기 왜 이렇게 누가 낙서를 했어?
-낙서가 아니고 여기 꽂고 싶은데 명중을 못 시키니까 주변에 이렇게 볼펜을 그은 거지.
-명중이 뭐야
-여기 딱 맞추는 거. 화살이나 총알처럼.
-아 命中〜 에이 이걸 왜 못 맞춰~
-ㅋㅋㅋ 진짜 어른들은 그런 사람 많아. 이렇게 어이쿠 어이쿠 잘 안 들어가네~ 이러지.
-말도 안돼 ㅋㅋㅋ
-엄마도 이제 할머니 되면 손 바들바들 떨면서 에구에구 할 텐데?

한참 무쓸모한 대화를 하고 있는데..
체크인해 주던 호텔 직원 분… 한국 사람이었음..

ㅋㅋㅋㅋㅋㅋ 머쓱ㅋㅋㅋㅋㅋㅋ
하루랑 눈 마주치며 또 머쓱 ㅋㅋ
할머니 흉내 리얼했는데 거 참 민망하네요 ㅋㅋ

한국 사람이시냐며 다시 반갑게 인사하고 아이가 한국말을 참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다.

골든위크 때 방이 있었던 것만도 감사한데 생각보다 넓었다.

저 아저씨는 유명한 호스트 라고 함

이제 밖으로 나가 볼까.
우리는 오늘부터 오사카 박람회 야간입장을 하러 간다. 내일은 종일권을 샀다.

앗!! 하지만 551 고기 호빵을 일단 사서 챙긴다.
관광지랑 좀 떨어진 곳이라 다행히 사람이 없었다. 두툼하고 쫄깃한 이 호빵 반죽… 너무 기억난다. 이건 정말 유일하게 내 기억에 남아있던 오사카 맛이다. 꽉 찬 고기가 되게 맛있었는데 다시 먹어보니 좀 달아서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음.. 하지만 독보적인 맛. 편의점에선 맛볼 수 없는 551만의 맛이다.

마지막 날 그 유명한 신사이바시 상점가 한가운데 551은 끝없이 줄 서 있었더라구요. 주택가나 사람 없는 매장에서 사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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