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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역이었는지가 기억이 안 난다.
갈아타려고 줄을 선 낯선 역 안에 레트로한 매점이 보였다. 가득 매달아 놓은 음료수 메뉴들이 목욕탕 같기도 하고 담배 가게 같기도 하고. 하나같이 촌스럽고 처음 보는 음료수들이라 신기한 한편 촌스러움이 완벽하게 통일돼서 미학이 있었다.
이 동네가 원래 그런가.
레트로한 가게들만 쏙쏙 눈에 들어온다.
평소에 그냥 지나쳐만 본 RAKERU에 들어가 봤다.
체인점인가 보다. 이케부쿠로에서도 본 적이 있다.
오므라이스를 좋아하지만 탄수화물 먹기는 싫었는데 오믈렛 메뉴가 있어서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가
ㅇㅁㅇ !!!!
음소거로 소리를 질렀다.
이런데였어?????
이거 무슨 감성이지
1950년으로 타임슬립한 건 아니죠?
희끗 보이는 민트색 창틀
빨간 체크 페브릭
메르헨 분위기 물병
꽃무늬도 한껏 앤틱
잘 아는 사람들이 볼 땐 중구난방으로 섞어놔서 근본 없는 인테리어일 수도 있지만 (난 모름) 걍 처음부터 끝까지 레트로 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게 뷔페처럼 예쁜 거 한 데 모아 보세요 같아 나는 너무 좋았다.
라케루 빵이 유명하댄다.
버터가 녹아있는 엄청 보드라운 스타일이었다.
야채에 계란, 데미글라스 소스, 폭신한 빵. 삶은 감자!! 좋아하는 것들로 건강하게 먹어서 정말 흡족하게 마친 외식이었다. 케군에게 사진을 보냈다. 오늘은 삶은 감자 곁들인 양식을 해 주겠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길에 빵을 사 갔다.
케군이 설레며 집에 왔다.
-이거 라케루에서 산 빵이야?
-... 아니?
-그럼 비프스튜 라케루에서 사 왔어?
-....... 아니?
-그럼... 뭐 사 왔어?
-라케루에서 아무것도 안 사 왔는데?
-근데.. 나 왜 오늘 양식해 준댔어? 사진도 보여주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네 입장에선 그랬겠다
나는 오늘 삶은 감자도 꼭 올려야지. 뭐 이런 식으로 메뉴 선정과 조합의 아이디어를 얻어서 케군에게 예고한 거였는데 케군은 콕 집어 라케루의 양식을 먹고 싶은 뇌가 되었던 거다. 당연한건데 ㅋㅋㅋ 난 무슨 생각으로 라케루 사진을 보여줬을까.
'___' 이런 얼굴로 밥을 먹은 케군에게 다음에 같이 라케루에 먹으러 가자고 다독였다.
-그래서 맛이 없어?
- 아니.. '____'
너무 안쓰러웠는데 얼마 전에 패밀리마트 냉동실에서 라케루 오리지널 빵이 유통되는 걸 보고 냉큼 사 왔다. 이거라도 줘야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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