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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평택은 평평해서 평택이라고 그랬다.
그래서 노을이 예쁘게 보이는 지역이라고.

억새풀 축제로 가는 차가 길게 줄지어있길래 우리도 구경 갔다. 사진은 뭔가 서정적이죠? 트로트 노래가 쿵작 쿵작 울리고 바람결에도 막걸리 향이 나는 정겨운 풍경이었다. 이미 막장이라 음식도 안 남고 마을 분들이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우리 삼촌 이모들 생각이 난다.

코스모스.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었는데.

매일 밤 씻고 예능 보면서 고양이들이랑 쉬는 게 너무 행복했다. 제일 익숙한 느낌이 들게 하는 건 게임하는 언니 옆에 붙어있는 나였다. 내가 있든 말든 아랑곳 안 하고 게임하면서 간간히 수다 떨어주는 이 평온함. 가족이 내는 무심한 온기를 언니한테 느낀다. 한 없이 따뜻하다.

얘가 달레입니다!!
Moon은 Gray 해서 달레라고 지은 거라고 ㅋㅋㅋ난 지금까지 달래인 줄 알았는데 달레였다. (굳이 정정해)ㅋㅋㅋㅋ 그리고 달이랑 형제처럼 돌림자 쓰고 싶어서 달을 넣었대 ㅋㅋ 정말 임보 고양이 이름하나 되게 열심히 지은게 왜 이렇게 언니가 귀여운지. 얘는 천천히 내게 맘을 열었다.

한국 오기 전에 집에 있는 공기계로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전화번호가 없어서 메신저 등록은 할 수가 없었는데 미성년자도 구글 메일은 만들 수 있으니까 그걸로 Google meet 과 Chat이 가능했다. 구글 없인 이제 하루도 못 살아. 모든 생활을 의존하는 느낌.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해서 엄마 모해? 엄마 어디야?를 들여줬다.

토요일엔 아침에 일어나서 혼자 볶음밥을 만들었단다. 잡곡밥을 데워, 냉동실에 있는 간 고기를 넣고, 오이스터 소스에 간장 휘둘렀다.
- 애는  혼자 잘 큰대니까.
서녕언니가 옆에서 말했다.

언니랑 나는 어릴 때부터 알아서 해야 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초4가 얼마나 많은 걸 할 수 있는지 안다. 그즈음 나는 매일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밥통에서 밥을 퍼 삼시 세 끼를  먹고 그릇을 설거지해 가지런히 놓았다. 엄마가 너무 늦으면 숙주나물을 무쳐 먹기도 했다. 혼자 빨래도 걷고 개는데 준비물을 누가 잘 챙겼는지 봐준다거나 숙제를 잘 끝냈는지 집에서 누가 봐준다는 말은 드라마에만 나오는 이야긴 줄 알고 살았다. 중학생 땐 집에 있는 반찬에 김 하나 더 넣어 스스로 도시락을 쌌다. 친언니는 절대 손해 보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몇 살 어리다는 이유로 내 걸 싸주지 않았다. 무슨 언니가 저러냐 한 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는 절대 가족한테 피해도 주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 간다고 굳이 만나러 오라거나 간다고 하지 않고 무소식이 지상 최고의 희소식이니 잘 살아줘서 됐다한다. 니가 못살아도 사실 내 알바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마음은 불편할테니. 대신 언니도 어떤 상황이든 잘 살아내서 걱정끼치지 않을거란 믿음이 있다. 살벌한 자매긴해도 ;ㅁ; 서로에게 우린 훌륭한 가족이라는 데 진심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나는 다른데서 친정의 온기를 느끼니까 괜찮다.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하루랑 케군은 1박 2일 여행을 갔다 왔다. 나랑 단둘이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아빠랑은 처음이었다. 케군은 그동안 부러웠던 마음이 쌓였나 보다. 급하게 떠나는 여행에 심드렁한 하루를 엄청 꼬셔서 결국 데려갔다. 뭘로 꼬셨나 보니

꽃게 뷔페 나오는 저녁밥이랑

밤새 빌려주는 패미콤 게임기였다. 팩 꽂아서 갤럭시랑 마리오를 실컷 했다고 한다. 아주 모두가 윈윈 했네.

자기 이런 거 먹었다고 말없이 보냄. 미안 부럽진 않네…  여긴 게장이랑 갈비 먹었어…

하루한테 전화가 올 때마다 서녕언니가 너무 좋다.. 하길래 애가 혼자 잘해서 좋다는 말인줄 알았는데 떠나는 날 그랬다. 너한테 가족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슬프지 않게 안심하고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이런 생각을 해 주는 사람이 친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서녕언니는 내 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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