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드넓은 공터를 전부 주차장으로 쓰는 지방 소도시에서의 외식. 주차권을 뽑고 뱅글뱅글 아래로 아래로 땅 파고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일찍 도착해서 후진도 필요 없이 가다 서는 수준의 주차를 끝냈다. 윤택하다… 은퇴하면 (은퇴할 회사는 없다) 이런 삶이 좋다…

타블렛으로 도토리무침이랑 청국장을 시켰다. 서녕언니가 이것이… 고기를 안 시키네… 매우 단백질이 고픈 눈빛을 보냈지만 나 때문에 강제 건강식하는 언니 ㅋㅋㅋㅋ

이런 게 난 구하기 힘든 데서 산다고
몇 년 전에 도토리 가루로 묵을 해서 무쳐 먹기까지 했다. 양념이 아니라 묵부터 손수… 물론 도토리 가루가 우연히 생겨서지만 그 이후로 도토리 묵 먹어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프로의 솜씨는 달랐다. 인터넷 보고 따라한 거랑 전혀 달라….


한국 다녀와서 학생들한테 사진 보여줬더니 다들 서울여행 가서는 이런 건 본 적 없다고 부러워했다.
-선생님 꽁보리밥이 뭐예요? 꽁이 뭐예요?
그래서 찾아봤더니 꽁보리밥이란 보리로만 지은 밥이었다. 보리밥이라고 하면 될 텐데 보리밥은 보통 = 보리+쌀이란 뜻으로 이미 있었나 보다. 진짜 죄다 보리로 지은 밥을 말할 때 꽁보리밥이라고 한다고. 강조법 같은 건지 찾아봤다.
꽁은 : 온전히 단순히 그것만.이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한다. 제일 뒤를 꽁무니라고 하는 것처럼.
다른 예문은 없는지 물어봤는데 (대화상대 : GPT) 계속 꽁무니만 말하는 거 보니 꽁무니와 꽁보리밥만 이 용법이 남은 거 같다.



언니가 나이 드니까 연근이 좋아졌다 그래서 소름 돋았다. 나두!!!! 대체 어릴 때 연근은 어떤 맛이었지? 왜 나이 들면 그게 좋아지는 걸까.

-언니 대박사건!! 미숫가루를 공짜로 줘! 그것도 얼음을 동동 띄운 거. 막 슬러쉬 같은 거.
-오? 그래? 미숫가루 주는 거 좋다. 근데 원래 미숫가루 얼려 먹잖아.
-뜨겁게 먹는 거 아냐?
-엥? 미숫가루 여름에 차갑게 먹잖아.
- 아 그럼 난 율무차 말한 건가? … 율무차랑 미숫가루 다른 거야?
-다르지~
그러네… 율무는 율무라는 곡물이네..
너무 한국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나.
어릴 땐 아는 게 아니라 궁금하지 않아서 모르는 게 없다고 착각했던 게 틀림없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사실 겉으로 핥고 스쳐버리기만 한 기분이다. 한국에서의 기억은 머리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몸에 습관을 물들이기만 했던 것 같다. 그게 무슨 색이었는지 이제야 다시 들여다보는 중이다.

심지어 집에 갈 때 종이컵에 옛날 과자를 마구 담아가는 서비스가 있었다. 미쳤다… 이 아이디어… 인테리어부터 시스템까지 다. 일본… 아니 미국에서 이 장사를… 누가 나랑.. 큰 물에서 큰돈을 쓸어버릴 거야…

나 이런 거 정말 해 보고 싶었다.
한국 인스타 볼 때마다 크다 못해 광활한 카페에 여자들끼리랑만 가는 거.


빵이 애 머리통만 하고…

이름도 귀여워. 크롱지.ㅋㅋㅋ


스케일 뭐담.
드라이아이스로 1층을 압도시킨 모습.
동영상 찍어서 하루한테 보내줬다.
과학박물관 같다며 신기하댄다.
나도 신기해…. 저기 돌 위에 배추도사 무도사 나올 거 같아…



그러고 보니 서녕언니랑 형부의 연애스토리를 몇 년 만에 처음 들었다. 전에 만나던 (나도 잘 알던) 오빠랑 어떻게 헤어졌는지도 이제야 들었다. 내가 10년을 아이랑 같이 오니까 정신이 없었던 것도 있었겠지만 이런 어른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던 거다. 아이 앞에서 모든 대화의 내용과 어휘를 조심한 언니의 배려도 갑자기 느껴졌다.
언니가 고양이를 키우면서 자식이 아프면 내가 더 아프고 아린 그 심정을 알겠다고 그랬다. 그런데 난 언니를 볼 때마다 자식을 향한 애정뿐만 아니라 육아 지혜가 언니한텐 그냥 원래 있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애 앞에서 행동이나 말을 어떻게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도덕적 가치관을 물려주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인내심을 길러주려면 엄마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나는 아이가 태어나서 책 보고 터득한 것들을 언니는 이미 알고 있을 때가 많았다.
금쪽같은 내 새끼의 오은영 박사님 코멘트를 들으면 매번 감전된 것 마냥 큰 깨달음을 얻는 내 옆에서 언니는 당연한 말 아니냐고 할 것 같다.
언니가 아이를 낳았다면 정말 정말 좋은 엄마가 되었을 거다. 결국 언니처럼 좋은 사람이 좋은 엄마가 되는 것 같다. 나도 좋은 사람이었다면 좋은 엄마가 되려고 발버둥 칠 필요 없었으련만.. 그래도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사람도 되어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오늘도 나와 함께 여행해 준 언니에게 감사.
'여행 하는 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 한국 : 기승전 이혼숙려 받아치기의 기술 (10) | 2024.12.01 |
---|---|
혼자 한국 : 핑크 뮬리 갈비 탕슉 (6) | 2024.11.29 |
혼자 한국 : 무심하고 따스한 가족 (4) | 2024.11.22 |
혼자 한국 : 아닌가 미국인가 (8) | 2024.11.12 |
혼자 한국 : 주차장과 마미손 (12) | 2024.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