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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이랑 형부가 첫 끼니로 나를 데리고 와 준 곳은 꽃게 인생 n 년. 맛있는 게를 찾아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언니 지인이 알아낸 맛집이었다. 자리 없을까 봐 가는 길에 전화도 해 놓고 미리 팔팔 끓여서 부창부수처럼 딱딱 알아서 상을 차려 놓아주셨다. 꽃게탕을 시켰는데 양념게장이랑 간장게장이 반찬으로 나온 게 충격이었다.  게를 이렇게 펑펑 써도 되는지 너무 황송해… 밥을 비벼서 팍팍 먹었다. 공짜로 먹은 게마다 사진을 찍어서 케군한테 전송했더니 믿을 수 없다는 스티커를 맨날 받았다. 일본에서 이 정도 맛은 찾아보기도 힘들지만 기본 15만 원은 지출해야 먹을 수 있는 고가 메뉴다.

집에 가는 길에 운전하는 서녕언니한테 보조석 형부가 첨삭지도하다 사랑싸움으로 번졌다. 써네언니가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며 빨리 벨트를 매라고 했다. 필사적으로 벨트를 쪼여매는 언니 때문에 너무 웃겨서 팔 힘이 안 들어갔다.
서녕언니는 초보운전에서 벗어나려고 면허를 따자마자 차를 뽑았다. 매일매일 끌고 나갔다. 고속도로를 밟았다. 집 주차장 돌멩이를 (왜 거기 박힌 큰 돌을 뽑지 않고 건물을 세웠는지 너무 궁금하지만 영험해 보이긴 하다) 꽝꽝 박았다. 내가 언니를 존경하는 이유이다. 나는 못하는 대단한 것을 늘 한다. 반대로 언니는 내가 맨날 기특하단다. 자기가 못하는 것을 내가 한댄다.

서녕언니네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다.
‘달이’는 원래 언니가 키우는 고양이고 ‘달레’는 지금 임시 보호 중인 아이인데 너무 학대받다 구조당했는지 사람이 무서워서 늘 어딘가 숨어있다. (나중에 모습이 공개됩니다)  언니한테도 적응 못한 집에 나까지 놀러 와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연히 계단에서 마주치면 달레가 최대한 무서워 보이려고 하악질을 시도하지만 걍 안쓰럽…;;; 미안혀.. 네가 거기 있는 줄 몰랐지.

엄마 고양이는 왜 다닐 때 소리가 안 나?
고양이 털은 왜 이렇게 짧아?
고양이는 왜 수염이 길어?
고양이는 왜 꼬리가 있어?
왜긴. 원래 그런 거지.라고 대답하고 싶어지는 원초적이고 본원적인 질문 공세를 듣지 않아도 되는 어른 셋과 고양이 둘 만의 집에서 먹고 자고 뒹굴었다.

언니네 집엔 운동, 건강 용품들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절대 내 스스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일관성 있게 보였다. 배에 붙이고 있으면 근육을 움직여준다든지 사용법이 다 사용자는 가만히 있는다. 나는 그중에 발 따뜻하게 해 주는 원적외선 히터에 꽂혀 며칠 동안 훈훈했다. 밤에도 아침에도 핸드폰을 보며 발을 데웠다.
-이거 진짜 발만 따뜻하게 하는 기계야?
-어~ 가만히 발 데우면서 핸드폰 하면 돼.
(모든 기구들이 핸드폰을 하면서 가능) 발만을 위해 이 커다란 걸 집에 들이다니 코딱지만 한 평수의 일본 집에선 할 수 없는 사치닷.

바깥까지 데워지면 달이가 폴짝 올라와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한 손엔 핸드폰 정면엔 고양이 발은 따땃.

아침마다 달이가 내 주변을 돌며 날 관찰했다. 달이는 호기심 천국 시청하는 기분이었을 듯.  
언니가 고양이는 끈 같은 거 질겅질겅 물으니까 간수 잘하라고 그랬는데 내 물건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물고 싶은 장난기와 호기심보다 나에 대한 신뢰가 너무 없어서 본능적 욕구도 안 드는 모양.

언니가 해 준 아침


이번에 매일매일 언니네서 에어랩을 완전히 손에 익혀왔다. 일본에 돌아와 2만 엔에 중고거래로 초기모델을 구입했다. 가전제품을 며칠 써 보고 사면 후회가 없구나. 가전 빌려주는 써비스 어디 없나. 내가 구입한 에어랩 판매자도 아마 그런 서비스가 절실할 거다.  물건이 깨끗하다 못해 공장 출고 상태 그대로였다. 유명한 데다 유행이니까 사면 잘 쓸 줄 알았지만 역시 사람마다 루틴이 다르고 동기가 다르니까 처박힌 모양이었다. 케이스 안이 까만 벨벳 소재인데 먼지 한 톨 묻지 않았다. 전원만 몇 번 켰다 끈 거 같았다.

난 기본적으로 자기애가 강하고 똥고집도 있어서 남의 말 안 듣고 마음대로 해석하고 한번 굳어진 편견을 곧잘 바꾸지 못한다. 분명 지가 다 맞다 생각하며 살아서 피곤한 스타일인데 서녕언니 서네언니랑 있으면 걍 줏대며 아집 고집 이런 게 다 사라진다. 언니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팔랑귀가 되어버린다. 언니가 이게 좋으니까 이거 먹어라 하면 그 음식에 있던 편견도 사라지고 이게 이쁘니까 이거 사라 하면 그 물건에 있던 이상한 이미지도 다 사라진다. 에어랩은 언니가 ‘이거 쓰고 그나마 개털인 내 머리털이 멀쩡해 보여’ 그래서 훅 마음이 움직였다. 10년 전에 서네언니가 ‘다이슨 청소기 써 보라고 삶의 질이 달라진다 ‘는 말에 (실제로 언니네 집에서 며칠 써 봄) 일본 와서 바로 샀다. 가끔 언니네랑 같이 있는 난 자아도 없는 애 같다. 언니들이 합리적이고 늘 맞는 말을 많이 해서 믿음이 두텁기 때문이지만 아무튼 너무 편하다. 생각 따위 할 필요 없다. 이 분들이 먼저 실리는 다 따져봤다. 참 똑똑한 언니들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언니가 코디해 준 언니 옷에 온몸을 두른다. 입으라는 거 입는다. (걍 자아는 내려놓는닼ㅋㅋ) 들고 다니다 가져가라고 움직이기 편한 가방도 던져준다.

챙겨! 챙겨!

매일밤 수다를 떨다 조용히 각자 핸펀을 보다 그냥 예전 모습 그대로 있다 왔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그리고 애 없이 너 혼자 오니까 그냥 옛날 같다 우리.
언니가 나보다 더 감격했다.

스무 살 때 난 어려서 언니들 말 들은 게 아니구나
그냥, 난 언니들 말이라 잘 듣는 거였구나.
하나 깨달았다.

해외 사는 주부들이 가끔 한국에 가면 친정 부모와 성격이 안 맞아 다시 돌아가는 날만 손에 꼽고 있다는 글을 종종 본다. 맨날 싸워서 이럴 거면 호텔이 낫겠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친정을 가져본 적 없는 내게 진짜 친정보다 더 좋은 언니들이 있어서 감사했다.  먹고 자고 배뚜둘기고 예능보고 쇼핑만 해도 눈치 안 주고 그렇게 하다 가라는 언니가 있어서 한국 가는 비행기를 고대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서 눈물 나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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