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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은 케군이랑 하루가 경비행기 타는 투어를 신청하쟀는데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여기 하늘 위에서 하트 모양 그거 볼 수 있대!!!
-와~ 토하면서 보면 정말 재밌겠다~ 비행기가 활주로 달릴 때도 멀미 나는데 경 비행기를 내가 잘도 쾌적히 타겄어.

얼핏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산호초를 포함해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공중에서 구경하는 투어였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가 금잔디 데려가서 고백한 게 여기는 아니었다. 그건 누벨칼레도니란 나라의 섬이라고. 뭐야 이런 하트 모양 사방천지에 있나 본데?

케군은 자연을 보고 싶고 하루는 비행기 조종석을 보고 싶고. 의기투합해서 일찍 경비행기를 타러 나가고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따로 놀았다.

오늘은 날이 따수워 반바지도 꺼냈고

혼자 놀 생각 하니까 화장도 잘 먹었네

인터넷에서 봐 둔 더 챔버스라는 브런치 카페를 향해 걸었다.

건물 심플하고 이노센트 한 거 봐. 어머어머

세 팀이 줄 서 있었다.
바로 앞에 나처럼 혼자 온 여자 손님이 있었는데 자기 차례가 되자 Just me라고 하길래 귀동냥해 놨다가 내 차례 때 Just me 따라 했다. 크하하하

실내 테이블은 이런 느낌이었고

오른쪽 바깥 테라스에 안내받았다.

전체적으로 올리브 색과 라이트 그레이의 조합

지난번 카페 라떼를 시켰을 때도 만족스러웠지만 여기저기 Flat white 란 메뉴가 보여서 물어봤다.
What is the different a cafe late and a flat white? 영어 선생님한테 매일매일 묻는 게 이거랑 이거 뭐가 달라요?라서 문장이 술술 나왔다.
플랫 화이트가 더 크리미 하다고 알려주셨다. (여기도 내 출산을 담당하는 간호사 언니 수준으로 친절함) 라떼도 충분히 우유의 감칠맛 넘쳤는데 더 크리미 하다니 망설임 없이 시켰다. 호주 커피, 우유 들어간 메뉴는 설탕 넣을 필요 없이 너무 맛있다. 플랫 화이트 진짜 맛있었다.

그리고 내가 시킨 플레이트가 나왔다.
우아——

기대를 더 뛰어넘는 세련미를 발사하면서 새 초록한 그릇이 도착했다. 세-상-에-
이게 부케냐 그림이냐 모다냐 나 지금 결혼하는 여자 된 기분이야. 이름이 Smashed Avocado 란 메뉴에 Poached egg를 추가했다.
Goes well with라고 메뉴에 쓰여 있어서 이게 ’~에 잘 어울림‘ 이란 말이구나 배웠다. 포치드 에그랑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오이가 레이스 리본처럼 올라가 있는 게 너무 신박했다. 그리고 살짝 소금에 절여져 있어서 다른 양념이 싹 다 필요 없었다. 저 빨간 가루들을 흩뿌려 놓은 모양이 예술…

한 때, 도쿄 카페가 어마어마하게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도쿄 갬성 어쩌고 하는 게 도쿄 카페의 세련미를 말하는 걸 거라고. 도쿄 카페가 어딜 가도 수준급이지기는 개뿔. 와 이제 보니 쪼렙이네! 호주 카페 와!!! 진짜 겁나 이쁘다!!

이렇게 철저히 색감 계산해서 숲 속 요정 떠올리게 만드는 컨셉같은 음식 너무 고퀄이다.. 감탄했다. 정말
포치드 에그 배를 가르니까 여기에 노란색 포인트 컬러까지 환상이었다. 플레이트가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일부러 커피 잔도 같은 톤으로 노린 건가.  그렇다면… 수제자로 들어가고 싶다. 몇 년 허드렛일 하면서 이 센스를 배우는 거다. 불법체류자 적발되면 공짜로 비행기 태워 주나? 그 길로 한국이나 일본에서 호주 스타일 카페로 유명해질 거야!!!

혼자서 최선을 다해 기록 중

한 35불 가까이 낸 거 같은데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나이팅게일처럼 친절했던 직원 분이 음식은 어떠셨어요? 하셔서 다 너무 완벽했고 유튜브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예쁘고 맛있었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사진도 부탁했더니 여기서 한번 찍어주고 이쪽으로 와 보라며 가게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같이 여행 온 친구처럼 구도 고민하며 또 찍어주셨다. (너무 친절쓰죠!!)

내가 사진 찍는 동안 가게 안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케언즈에서 유일하게 한국인 직원을 발견한 가게였다!

가게 정보 :
The chambers

The Chambers · 21 Spence St, Cairns City QLD 4870 오스트레일리아

★★★★★ · 카페

www.google.com



걷다가 한국 슈퍼를 발견했다. 입구가 비밀스러워서 문을 열어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가족 구성원 중 아무도 함께 하지 않을 거 같은 장소에 갔다. 바로 미술관이다.

건물 너무 이쁘다.

예전엔 법원이랑 경찰서였던 곳을 개조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저 위에 동그라미 내가 사진에 그린 거 아님.
저것은 예술의 일부였습니다. 뜻은 절대 알 수 없지요.

여기서는 구글 사진 번역기를 이용해 많은 걸 이해했다. 이제 실시간 통역기도 나올 거 같은데…
영어는 그만 배울까.. (진지)

미술관을 나와 걸었다.

안 쪽에서 두 그룹의 세 때들이 패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주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 구성원이 아무도 함께 하지 않을 곳을 또 갔다. 바로 도서관이다.

또 건물 이쁘다

자습실도 살짝 중세유럽.

여기도 인트로벌츠 내향인을 위한 책이 보인다. 내향인의 직장, 학교, 인간관계, 아무튼 사는 법에 대한 지침서는 세상에 이렇게 많은데 외향인을 위한 조언은 별로 없다는 게 참 신기하다. 아니 외향인을 타깃으로 한 제목이 눈에 안 띈다. 외향인은 책을 안 읽는 걸까? (이것도 좀 맞는 듯 ㅋㅋㅋ)  문득 아- 외향인은 고민자체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ㅋㅋㅋ 어떤 책은 고민 끝에 찾게 되는 건데 외향인은 고민을 하다가 걍 맛있는 거 먹고 친구랑 수다 떨다 어제 했던 고민도 홀랑 잊어버리는 거 아냐?
좀 더 생각해 봤다. 외향인에게 주목받아야 할 제목이 없다는 건 내가 하는 고민이 내가 외향인이기 때문에 생겨난 고민일리가 없다고 전제하기 때문인 건 아닐까. 막 너무 수다스러워서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게 고민이라면 그게 내 성격이 하도 외향시러워서 그렇다는 걸 모를 수도 있다. 보통은 해결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점을 검색 키워드로 떠올리는데 외향적인 면모가 단점으로 지적된 상황이나 시각이 별로 없어서가 아닐까.

음… 넘어갈게요. (미미미누 말투로 읽어주세요)

아동서 코너에서 책을 한 권 읽으며 하루랑 케군을 기다렸다.

하루가 와서 도서관에 있던 체스를 한 판 하려고 했는데 소파에 앉아있던 여성이 배를 부여잡고 심하게 아파했다. 소리도 안 내고 끙끙 앓으며 진짜 심각해 보였다. 그런데 행색이 누가 봐도 홈리스였다. 도서관 화장실에 홈리스들이 제 집처럼 드나드는 게 많이 보였다. 주변 모두 무심하게 자기 공부들을 하고 있어서 나랑 케군도 어쩔 줄 몰라하다가 직원이 오는 걸 보고 도서관에서 나왔다.

동: 나 오늘 미술관도 갔어. 거기 무료였어. 좋드라. 케언즈에 살아도 편리하고 좋을 거 같애. 사람들도 친절하고.
케: 음식도 맛있고
동: 만약에 여기서 살 기회가 있으면 살 수 있을 거 같애?
케: 음… 다 좋은데… 빈민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여.
동: 아… 맞아.

동감했다. 참 편리하고 깨끗한데 케언즈 시내에 자주 홈리스들이 보인다. 나는 홈리스입니다. 크게 써 놓은 골판지를 들고 돈을 구걸하는 사람도 있고 애버리지니 (원주민 출신)으로 보이는 흑인 아이들이 무단횡단을 하며 떼를 지어 욕을 하는 모습도 흔했다. 말투가 이미 너무 무시무시한 쌍욕이었다. 나는 못 봤는데 케군이 슈퍼에서 물건을 훔치려고 계속 눈치를 보는 홈리스를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그들이 나타나면 보험도 비자도 없는 우리는 어깨가 움츠러들고 경계심이 바짝 들었다. 알고 보면 별로 위험한 사람들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점이 유일하게 아쉬웠다.
(호주 : 누가 너한테 비자 쥰대? 뭐가 아쉽대는거야. )
아하!? 크하하하핳

케언즈 수족관을 가려고 했는데 입장료가 비싸서 망설여졌다. 리뷰에 어떤 일본인이 “개 비싼데 개 초라함”이라고 일본말로 (超高いのに超しょぼい) 한 줄 써 놓은 걸 보고 그냥 돌아섰다.

놀이터에 하루를 풀어놓고 케군이랑 티타임을 가졌다.

마지막 만찬은 슈퍼마켓에서 원 없이 사다 먹어봤다.

유명하다던 미트파이 마지막 날 먹어 봄

그리고 내가 슈퍼에 갈 때마다 계속 아- 먹어보고 싶다 먹어 보고 싶다. 수차례 생각했던 것 두 가지. 마리네이드 코너의 절임이랑 딥 코너의 여러 가지 소스들이었다. 케군이 언제 여길 다시 와 보겠냐고 남겨도 좋으니 사 먹어 보재서 씐나게 골랐다.

상상했던 만큼 맛있었던 파프리카 마리네이드! 막 올리브 토마토 신기한 채소 빽빽이 있어서 신중히 골랐다.

하루를 위해 일식도 샀는데 수준급이었다.

슈퍼 앞에서 술 사러 간 케군을 기다리는데 어떤 모금 활동을 하는 남자가 말을 걸었다. 진짜 뭐 하시는지 몰라서 순수하게 What are you doing 하고 물었다. 저게 무례하게 들릴까 봐 엄청 친절한 말투와 표정으로 물었다. If you don’t mind ~ 이러면서 말 꺼낼 걸 나중에 줄줄이 생각났다.
남자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 없이 도네이션이지만 그냥 말 걸었다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안심시켜 주며 내 종이백에 있는 스시를 보고 우뤌쓰의 스시 정말 최고로 맛있다고 추천했다.
이렇게 긴 스몰토크를 다 알아듣는 와중에 마지막까지 woolworths 슈퍼 이름 언급할 때 또 못 알아듣고 응? 이랬다. 잊지 못할 너의 이름.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친근하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대화를 트던 남자는 최후에 기부를 받아내는 엄청난 수완의 영업맨이 아니었을까. 일말의 사심을 느낄 수 없었던 소탈한 말투와 태도… 그게 진짜라면.. 저 남자의 수제자로 들어간다!!
낮에는 브런치 가게 밤에는 사람의 마음을 허락받는 기술을 익혀 불법체류자 송환 비행기에 타는 거야!!

배가 찢어지게 먹은 다음 기념품 가게를 돌았다.

모든 가게에 일본인이 일하고 있었다. 일본 관광객이 그들의 밥줄이었을 텐데.. 환율이 이래서 아마 급격히 힘들어졌을 것 같다. 우리도 싼 건 허접하고 제대로 된 건 너무 비싸서 들었다 놨다하다 결국 나왔다.

화장실을 찾아 어느 호텔에 들렀는데 어머 고졀스!!  카지노까지 딸린 초고급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클래식하고 장엄한 느낌이 뽷 드는 호텔이었다. 다시 케언즈에 간다면 여기 너무 자 보고 싶다.

참고로 pullman reef hotel

산책의 마지막은 호주 맥도널드에 들어가 봤다. 들어간 순간부터 확연히 다른 느낌. 지금까지의 케언즈는 가지런하고 여유롭고 느긋한 곳이었지만 문 하나 사이로 이 곳은 어수선하고 불안정하고 지저분하다. 여기저기 테이블에 드러누운 사람들과 한차례 애들 파티 끝난 듯한 바닥이며 노래도 조명도 어딘가 불량했다.

셀프로 환타랑 콜라를 주문하고 결제를 눌렀더니 프린터 에러란다. 그래서 다시 옆기계로 가서 재주문을 했다. 어라? 음료가 두 번 나왔다. 내 잘못이니까 그냥 놔둘까 했지만 엄마의 므찐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맘에 종업원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I ordered that. But the machine said print error. So I retry it with another machine.
여기까지 말하자 내 카드를 사납게 낚아채간다. 오케이—
어쩌고저쩌고 (궁시렁으로 밖에 안 들림) 하는 말 중 이게 환불이 내일 될지 모레 될지 언제 될지 보장은 못한다는 으름장을 가까스로 알아들었다.
불안하게 보고 있던 하루한테 “환불해 준대~ 엄마가 해결했어.” 안심시켜 줬다. 하루는 아빠한테 가서 파파!!! 마마가 영어로 환불도 받았어!! 엄마의 멋짐을 자랑했다.
오예. 일타쌍피

맥도널드 커피 종류가 스타벅스 맞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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