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기는 아기용 실내복이 있어서 좋았다. 어김없이 노보리베츠의 곰돌이 그림이 그려있음. 하루의 취저지만 곰돌이 좋아한다는 티를 내는 건 초2의 자아 때문에 부끄러워하는데 여관에서 주는 옷은 디자인이 하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는 척 무심하게 옷을 들고 사실은 속으로 좋아 째짐.

곰돌이의 거리두기

곰돌이의 코로나 예방 안내 (특히 체온 재는 섬세한 손이 너무 귀엽)

홀에 만들기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오오.

알차다.

-하루야 배지도 만들고 또 하나 만들까?
-그럼 비행기 만들고 싶어.
여자 직원분이 두 분 계셨는데 그중에 한 분이 아뇽하세요!! 하면서 한국말로 인사해 주셨다. 이제 이 인사 모르면 안 되지 암요. 네!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했다.
그냥, 우리가 한국 사람인 걸 알고 해 주신 립서비스겠지? 음? 아니다. 여기서 한국사람을 만나다니! 얼굴이셔. 나는 자세히 취재에 들어감미다. 타겟 발견. 준비하시고. (수다를) 쏘세요!

-한국말 배우셨어요? 어떻게 아세요?
시동을 걸었다.
-사실은 제가 아니고 우리 딸이 한국말 배우고 있어요.
오!!! 의외의 전개!
-따님이 몇 살이신데요?
-지금 고2요.

와우!!! 욘사마의 아줌마 부대에서 동방신기 빅뱅을 거쳐 트와이스, 방탄이 이룬 일본 내 한국어 학습자의 연령이 낮아진 정점을 찍었구나! 눈부신 결과!!! 심지어 뒤이은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배워서 벌써 6,7년? 배웠어요.
네???? 방탄 데뷔 10년이니 당연히 가능한 결과인데 한 사람의 청소년기를 바꿨어… 엄청나다.
-노보리베츠에 한국어 선생님이 계셨어요?
-네. 저도 없을 줄 알았는데 찾으니까 있더라고요. 한분이 계속 가르쳐 주셨어요.
와… 부라보… 변심하지 않고 싫증 내지 않고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한 그 한국분 튜터에게 감사를 보내고 싶다.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한 가지 알게된 건 아이에게 정들었던 선생님과 이별시키는 건 상당히 괴로운 일이라는 것. 선생님이 안 맞아서 멀어진 피아노도 있었고 갑자기 그만두는 많은 영어 선생님들 때문에 이제 안 한다고 몇 번이나 고비를 맞았었다. 그리고 1살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를 가르쳐 주고 계시는 유아교실의 선생님 덕분에 하루는 학교 공부를 재밌다고 말한다. 하루의 모든 성장을 함께 하신 분.. ㅠㅠ ‘스승’이 다 옛말 같지만 여전히 선생님과 교육자라는 직업은 한 인간의 성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애 키우며 다시 생각하게 되었었다.

따님은 그렇게 오래 한국어 공부를 했지만 이제 좀 커서 가 보려고 했더니 코로나로 여행도 못 가고 여긴 노보리베츠… 전혀 쓸 일이 없다고 한탄하면서 근데… 딸이 아니라 제가 한국분을 여기서 만났네요. ㅎㅎㅎ 아쉬움과 반가움이 섞인 대화에 같이 웃었다.

비행기를 만들고 있는 도중에 케군이 내려와서 태양열 판넬을 모터에 설치하려고 (작은 태양열판으로 프로펠러 돌리는 뱅기) 낑낑 대는 걸 나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잠깐만 줘봐~ 하고 가져가서
-저기.. 이게 여기가 잘 안 맞는데 도구 같은 게 없을까요?
-아.. 이게 가끔 그런 게 있더라고요. 이걸로 해 보세요.
간단히 새 걸로 바꿔주셔서 뚝딱. 만들었다.

직원분이 남편분도 한국말하세요? 얼마나 알아들으세요? 흥미진진하게 물어봤는데 케군은 전혀 못해요 ㅎㅎㅎ 하며 쑥스러워했고 나는
-근데 아이는 한글 못 읽는데 아빠는 무슨 말이든 다 읽어요.
하며 케군의 기를 살리면서 아빠와 한글을 두고 라이벌 구조를 만들려는 덫을 살포시 놓아봤다. 걸려랏!

비행기 완성.

색깔이 많이 리얼한 오징어 쿠션.

사실 리조트급 호텔이 아니고 숙박요금이 싼 편이어서 미끄럼틀 온천에서 놀고 그럭저럭 있다 갈 순 있겠지 하며 전혀 기대를 안 했는데 시설 규모도 크고 여기저기 깨끗하고 직원 수도 많고

무엇보다

두둥-
저녁밥이 기대를 뛰어넘는 양과 질이었다.

먼저 전채요리 플레이트 (가운데 옥수수 수프 수퍼존맛탱구리)

가볍게 나온 사시미, 매실주

북해도 어느 지역에서 가져온 재료인지
첨부된 차림표

그리고 입 짧은 아이들을 위한 그렇고 그런 접시.
인 줄 알았는데 맨 위의 꽃게랑 시계방향으로 있는 스시와 사시미까지 전부 아이 메뉴였다. 대박쓰

첫날 하코타테에서 삼만 원 넘게 주고 먹은 거랑 양이 비슷해 보인다?

어느새 나베 (냄비) 요리도 와서 대기 중.

새우가 또아리 틀고 있는 건 새로웠다 ㅎㅎ

그리고 드디어 드디어 우리가 여기서 갱장한 시푸드를 입에 넣었다. 와.. 전부 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 지방이 두둑한데 진하게 밀키 한 회 맛 나는 거. 그런 살들.아시쥬?

부끄러워하지 말고 나와

무화과랑… 초된장 소스랑 뭔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엄청 맛있었던 채소류

여기 젓가락 커버에도 총집합입니다.
온천, 곰, 도깨비. ㅋㅋㅋ 노보리베츠의 주역들이자 올 스텝들. 아 귀여워.

좀 있다가 어른들도 털게를 줬다. 북해도 고급 ‘케가니’ (털게) 오오- 근데 사실 이 털들이 식욕을 부르는 느낌은 아니란 말이지ㅎㅎ 껍질은 보여주기 위한 데코레이션이었고 잘 발려진 앞쪽 살만 먹으면 됐다. 위에 쥬레 (젤리 느낌)의 소스와 같이.

여행 다녀와서 온라인 영어 레슨 할 때 프리 토킹으로 여행 사진들을 보여주며 회화했었다. 근데 필리핀에는 털 달린 게가 없는지 이 사진을 보여주니까 (으에-)라는 얼굴로 왜….. 왜 털이 있어? 저… 털 먹는 거야? 라며 튜터 얼굴이 뒷걸음질 쳤다.
-모르겠어 ㅋㅋ 이거 북해도에서는 고급 요리야.
그랬더니 튜터가 홋카이도는 너무 추워서 게도 털이 났나 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웃다 쓰러져서 스크린에서 사라짐.
진짜면 어떡하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 메인으로 꼬기도 나오고 냠냠

국물요리랑 생선요리도 나오고 냠냠

아까 끓고 있던 생선과 북해도 야채 수프도 마셨다.
필리핀 튜터가 오!!!! 양파를 boil 하냐며 엄청 놀랐다. 오??? 물에 넣은 양파는 안 먹나? 양파를 볶기만 한대서 난 더 놀랐다. 신기하네.

방으로 음식을 갖다 주시던 아주머니도 세상 친절하셨는데 깍듯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너무 서글서글하시고 인정 많은 느낌 쪽이다. 정말 모든 분들이 그랬다. 우리가 있는 동안 여긴 정말 시원하다고 도쿄는 36도가 넘었다고 그랬더니.
아유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이러시더니 북해도 날씨가 좋은 걸 내가 칭찬받는 것도 우습네요 하듯 이건 또 이상하죠? ㅋㅋㅋ 하셔서 다 같이 웃었다. 참 기분 좋은 대화들을 잘하신다.

하아.. 옥수수 들어간 건 다 수퍼존맛탱구리네. 이건 밥에 짭짤한 (아마도 간장?) 간이 들어가 있어서 미친 단짠 퍼포먼스. 이미 한도 넘긴 내 배에 대출신청을 하게 만들었다.

후… 그리고 디저트 먹다가 배 터질 뻔.

과일 안 먹는 하루 때문에 (아이를 탓하고 있는 나) 이것까지 먹어야 해서 진짜 찢어질 뻔함. 멜론은 패스 못 하지.

눈이 풀렸다. 온 소화기관이 정체 중.

아무도 안 보여줄게 곰처럼 해 봐

헤헤. 거짓말이얌

여기 올라갈 거야. 카카카 ‘ㅂ’
엄마의 노후대책이니까 봐주겠지. 늙으면 엄마는 하루 얼굴을 초콜릿처럼 하나씩 꺼내 볼 거야.

둘째 날 (아직 이틀밖에 안 지난 게 반전)
이렇게 굿나잇

눈 떴더니 아슬아슬 조식 끝나갈 시간이다. 호다다닥
지난밤 교통사고로 목숨이 수십 개 날아간 나. 잠을 잘 잤을 리가 없다. ‘ㅂ’

뷔페도 훌륭했다. 일, 중, 양식 총출동.

북해도 우유도 꼭꼭 마셔야죠.

하루는 연어 살 발라서 밥에 비벼먹었나 봄.

너무너무 만족했던 호텔이라 다시 오고 싶다.
북해도 출신 마마토모한테 여기 아냐고 물어봤더니 가 본 적은 없는데 홋카이도 사람이라면 다 아는 맘모스 기업이 (문어발식 기업을 일본은 이렇게 말하나 보다) 하는 곳이라고 가르쳐줬다. 사진 보여주니 홋카이도 사람이 봐도 괜찮다며 가 봐야겠다고 그랬다. 자본력이 있었군! 다른 데랑 비교해도 진짜 가성비 좋은 호텔 맞는 듯하니 자신 있게 추천해도 되겠다.
-근데 여기 홋카이도 사람들 왜 이렇게 친절하고 인정 많아??? 대화를 너무 적극적이고 자연스럽게 (능글맞을 정도로 ㅎㅎ) 잘해!!
-어! 맞아. 나 어릴 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줄 알고 자랐어. 도쿄 와서 좀 놀랬다니까.
-나는 우리 마마토모들 사이에서도 너가 적극적이고 활발하다고 생각했는데 너 정도면 아직 홋카이도에서 소심하고 부끄럼 많은 편이었던 거 아냐?? ㅋㅋㅋㅋ
-ㅋㅋㅋㅋ 어떻게 알았어. 나 완전 평범했엌ㅋㅋㅋ

MBTI가 사는 환경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건 매우 상대적인 거라 나도 한국에선 굉장히 (동성끼리도) 내외하고 모임 별로 안 좋아하고 대인관계 그다지 넓지 않은 편이었던 거 같은데 일본에선 역시 한국인!!! 이란 소리 들을 정도로 대따 적극적인 이미지다.
아니… 한국 모임이 쫌 많아야지! 다 어떻게 따라다니냐구요. 사람이 좀 쉬엄쉬엄해야지 몇 번 거절하면 쟤는 사람 별로 안 좋아해. 이렇게 되어버림 ㅋㅋㅋㅋ 그래서 난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고 마지막으로 근처 관광…이라고 말하기엔 똑같은 곳이지만 ㅎㅎ 오오유누마 大湯沼라는 곳을 왔다. 어제 갔었던 지옥의 계곡에서 좀 더 위로 올라가면 백록담 마냥 (백록담 가본 적 없음 죄송) 물론 사이즈는 작지만 전부 온천으로 이루어진 못이 있다.

둘레 1km 깊이 22m 표면 온도 50도. 심부 온도 130도.

디즈니 랜드나 테마파크 연출 같다.

하루도 사진 촬영. 자꾸 아빠가 정면에 섰다. 비키라고 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찍음. 케군의 애정표현인데 뭔가 늘 어긋나 있음. (아니야… 여보짱 그거 아니야..)

오늘은 노보리베츠에서 후라노까지 220Km 약 3시간 거리를 주행할 예정이다. 나는 또 막상 운전 벨트를 매면 그래 해 보자!!! 하며 브레이크에서 서서히 발을 떼는 용기를 냈다.
아마도 파란 하늘만 끝없이 펼쳐지는 한산한 홋카이도 도로 덕분에 가능했던 거 같다.

돌아와서 와… 무슨 생각을 운전을 했지?
난 어쩌려고 운전을 했지. 어떻게 했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시차 공격을 했는데 지난 포스팅의 여러분들의 많은 조언과 댓글로 진짜 많은 힘이 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포기하고 싶어 핑곗거리를 찾은 거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우린 언제나 매일 매 순간 위험이 도사리는 일상을 살고 있고 가끔 어떤 습관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모험이지만 익숙함에 잊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처음 일본에서 작은 아기를 뒤에 태우고 익숙하지도 않은 전동 자전거를 탔을 때 일이 기억난다.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아찔한 묘기 같은 일을 매일 난 해냈다. 지금도 가끔 24킬로짜리 애를 뒤에 태우고 요리조리 자동차를 피하며 자전거로 질주를 할 때 (미친짓일수도?) 란 생각을 한다. 그때 포기했었으면 지금의 익숙함은 내게 없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너무 감사합니다. 구독자 여러분들. 힘을 주신 슨배님들.

헤헤. 그리고 온천에 다녀오면 어김없이 뚜룬뚜룬 보들보들 해지는 피부….

화장이 증말 잘 먹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