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던 동네는 횟집이었던 곳이 카페로 바뀌기도 하고 엄마랑 가던 순대국밥 집이 사라지기도 하고 고깃집이랑 보리밥 집이 그대로 있어서 재밌고 낯설었다. 카페에서 이모랑 언니를 기다리는데 나를 반가워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괜스레 걱정이 들었다. 카페에서 아줌마는 요새 탁구장에 매일 같이 출근하며 새로운 낙을 찾았다고 하셨다. 매일매일 영희 아줌마랑, 엄마랑 아줌마 이렇게 셋이 붙어 다녔는데 엄마는 고작 60에 뇌출혈로 그리고 2년 후에 영희 아줌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아줌마는 세상에 신이 있다면 나한테 그럴 수는 없다며 내 친구 둘을 그렇게 한꺼번에 데려가는 게 어딨 냐고 하셨다. 영희 아줌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온 여행이 일본이었다. 아줌마가 일본에는 왔는데 멀리 온천에 와서 날 보러 갈 수 없다고 ..

우리 엄마에겐 남편 대신 친구가 있었다. 이혼한 후 주스 배달도 해 보고 트럭에서 양말도 팔아보던 엄마는 내가 중학생 때쯤이던가 때밀이 학원을 수료해서 (학원이 있답니다) 목욕탕에 권리금을 내고 자리를 잡았다. 그때 목욕탕 주인이었던 아줌마와 만났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세상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다. 언니와 나한텐 또 하나의 부모 같은 존재였다. 단순한 엄마 친구 이상으로 아줌마가 우리에게 든든했던 이유는 아줌마가 태생적으로 오은영 직감을 타고 난 분이셨기 때문이다. 결단이 빠르고 행동력 있는 대신 성미가 급한 엄마와 다르게 아줌마는 정말 따스하고 자상하고 인내심 있게 사람을 바라보는 분이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도 여전히 우릴 딸처럼 챙겨주시고 혼자 사는 우리 언니를 제일 가여워해주고 계신다. 그러다..

며칠 전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진 에어 담당자가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 기종이 작아져서 혹시 다음 시간으로 변경해 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아… 진짜요…?” 바꿔주면 뭐 해주실 건데요?라는 말을 어떻게 돌려 말할 까 고민하는데 어휘력이 부족해서 좋은 말이 생각이 안 난다. “아… 음…아….”튕기는 것처럼 보이는 나를 꼬시려고 먼저 제안이 해 왔다.“바꿔주시면 유료좌석 옵션 무료로 드릴게요.” 짐 중량 늘리기보다 좌석이 더 좋았던 나는 바로 입구 근처 자리를 찜했다. 나중에 이게 살짝 재앙이 되었지 뭐람. 사람 일은 참 앞날을 알 수가 없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는 날 체크인 카운터에서도 진에어는 내게 딜을 해 왔다. 이 녀석들 내가 호구에 핫바지인 거 어떻게 알고 여권에 써..

발단은 어느 날 만난 한국어 학생이었다. 수업 신청할 때 학생의 연령대가 나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50대라는 걸 알고 기다렸다.멀리서 테이블을 향해 걸어오실 때부터 너무 아름다운 분위기가 막 뿜어져 나오셨다. 예쁘기도 하지만 세련되셨다. 올린 머리도 그냥 올린 게 아니라 인스타에서 본 것처럼 한 올 한 올 신경 쓴 모습. 마치 프랑스 파리랑 잘 어울릴 거 같은 청바지와 블라우스를 입고 오셨다. 전체적으로 중년 모델의 휴일 같은 느낌이 풍겼다. “세상에~ 너무 아름다우세요!! 혹시 패션 쪽 일 하세요?”“아뇨~ 전혀요! ”반갑게 인사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어디까지 한국어가 하고 싶은지 왜 하고 싶은지 여쭤봤더니 한 달에 한 번 한국 피부과랑 성형외과에서 시술받는 게 취미라고 소개하셨다. 듣는 순간 영어를 취..

역류성 식도염이 나아가서 제일 폭식하고 싶었던 밀가루가 피자랑 타코야끼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일본 처음 왔을 때 돈카츠 소스가 가장 와닿지 않았던 내가. 일본 사람들은 다들 추천하는데 달고 시고 야릇하게 약품 냄새가 나기만 하지 어디가 어떻게 맛있는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돈카츠뿐만 아니라 야키소바도 그걸로 볶고 타코야끼 소스도 오코노미야끼 소스도 다 저걸 뿌려대는 게 아닌가. 슈퍼에 타코야키 소스, 우스터 소스, 오코노미 야끼 소스, 돈까츠 소스. 종류별로 팔고 있지만 찍어 먹어보면 농도만 다를 뿐 다 똑같은 맛이 나서 배신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한 번은 일본 사람을 앉혀놓고 뭐가 다른지 설명해 보라고 따졌더니 그러고 보니.. 할 말이 없다며 오히려 충격을 받던 일도 있었다. ㅋㅋㅋ (괴롭힌 거 ..

점심시간에 일 끝내고 커피 한 잔을 사서 도서관까지 걸어온다. 그리고 한참 끄적이고 잡지도 보고 조용히 놀다 오는데 도서관 2층 화장실에만 가면 신기하게 흰머리가 그렇게 많이 보인다. 왼쪽 테니스 장 쪽으로 뚫린 창에서 자연광이 담뿍 쏟아지는 그 거울이 내 인생에서 제일 흰머리가 잘 보이는 공간이다. 그 장소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내 모습이 제일 잘 보이는 거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날도 아침에 머리 묶고 나올 때 한 개도 안 보였는데 다섯 개나 뿅뿅 튀어나와 있는 흰머리가 보였다. 쪽집게가 절실해진다. 다음에 도서관에 올 때 쪽집게를 챙겨 와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다. 지난번에도 똑같은 생각을 하긴 했다. 막상 에이… 도서관에 쪽집게는 좀 웃기지 하며 아직까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데..

4학년 때 쥐어 준 (정말 대놓고 읽으라고 찔러 주었다) 해리포터 책에 푹 빠져서 완독을 했다. 떡밥 뿌리는 보람이 느껴지는 낚시였다. 나중에 장금이 언니랑 토론하다가 하루가 대왕 대문자 F여서 해리포터에 풍덩 몰입한 게 아니냐는 결론을 냈다. 영화도 다 보고 책도 다 읽으면 에 데려가 주겠다고 했다. 그 약속의 땅에 왔도다.토시마엔 역에 있던 아주 오래된 유원지+수영장을 밀어버린 자리에 생겼다. 여기도 하루랑 둘이 전철 타고 수영복에 타월에 튜브 짊어지고 왔었던 추억의 장소인데… 이렇게 이뻐지다니! (쓸쓸하지 않음) 와우! 역부터 해리포터 분위기 빌드 업 하고 있었다. 조… 좋은데..?비싼 해리포터 입구가 나왔다.성인 7000엔청소년 5800엔어린이 4200엔 이제 이런 데는 디즈니가 아니어도 기본..

마스카라로 유명한 키스미 얼굴에 땀을 틀어막는 베이스를 출시했다.런치 아르바이트 할 때마다 혼자 사우나에서 곰탕 먹은 사람처럼 땀을 흘리는 게 남사스러워서 사 봤는데 이거 약간 다한증 치료제 수준으로 얼굴의 땀을 다 차단해 준다. 무서울 정도로 소량만 발라도 효과가 좋고 그 위에 화장도 너무 잘 올라감. (뭐가 들어간 거야… 무서워.)대신에 클렌징이 잘 안 돼.. 물이 튕겨… 그래서 결국 진짜 절박할 때 빼곤 쓰지 않는다. 땀 흘리는 사람 처음 보슈. 구경들 하슈.서네언니가 여행 가기 전엔 다이슨 청소기 헤드를 빨아둔다고 그래서 무슨 소리지…? 못 알아듣고 있었다. 세상에 이 말이었어. 몇 년 동안 이 헤드 분리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때 구정물이… 정말 미안하다 헤드야. 우리 헤드 얼마나 목욕하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