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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어느 날 만난 한국어 학생이었다.
수업 신청할 때 학생의 연령대가 나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50대라는 걸 알고 기다렸다.
멀리서 테이블을 향해 걸어오실 때부터 너무 아름다운 분위기가 막 뿜어져 나오셨다. 예쁘기도 하지만 세련되셨다. 올린 머리도 그냥 올린 게 아니라 인스타에서 본 것처럼 한 올 한 올 신경 쓴 모습. 마치 프랑스 파리랑 잘 어울릴 거 같은 청바지와 블라우스를 입고 오셨다. 전체적으로 중년 모델의 휴일 같은 느낌이 풍겼다.
“세상에~ 너무 아름다우세요!! 혹시 패션 쪽 일 하세요?”
“아뇨~ 전혀요! ”
반갑게 인사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어디까지 한국어가 하고 싶은지 왜 하고 싶은지 여쭤봤더니
한 달에 한 번 한국 피부과랑 성형외과에서 시술받는 게 취미라고 소개하셨다.
듣는 순간 영어를 취미로 삼기로 했을 때와 비슷한 강도의 신선한 쇼크가 왔다. 머찐데…?
“젊었을 땐, 전 세계 안 가본 곳 없을 정도로 여행을 다녔어요. ” 그리고 지금은,
한 달의 2주는 프리 랜서 요가 강사로 돈을 벌고 딸아이는 이미 대학생이라 제 힘으로 잘 살고, 나머지 2 주는 한국에서 시술하고 다운 타임 지날 때까지 혼자 노는 중년 인생이라고 하셨다.
개 머찐데…?
한국어로 몇 가지 여쭤 봤다.
”지금까지 어떤 거 해 보셨어요? “
“지…금? 아아.. 지금! 어떤 거? 뭐예요? 해 보셨..?”
거의 뜻이 안 통해서 일본어로 고쳐 말했다.
-최근에 한 건 스킨 보톡스…
-되게 아프다던데? 마취하셨어요?
-아 저는 시간 아까워서 마취 안 해요.
-네??? 그게 가능해요?
-할만하던데요?
-아픈 거 잘 참으시는구나. 자연 분만하셨죠?
-ㅎㅎㅎ 네. 그것도 할 만했어요.
-시술에… 특화된 분이시다.. 그리고요?
-인모드
-오… 그것도 좋죠.
-리쥬란이랑 울쎄라랑..
-오. 너무 괜찮죠. 울쎄라 비싸던데 좋다더라고요.
-흡…(감동)
갑자기 숨 참고 입틀막 하고 계셔서 머선일이지? 왜요? 왜요? 물었더니
“선생님… 이런 이야기 다 알아듣는 사람이랑 대화해 본 거 처음이라서 지금 너무 재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자 뒤로 넘어갈 뻔했다. 너무너무 웃겨라.
“맞아요. 일본 사람들은 아예 모르잖아요. 그냥 설명하다 지치잖아요. 미치겠다. 저도 엄청 관심이 많아요. 재밌어요. ”
나는 다 안 해 본 것들이지만 많이 듣고 알고리즘에 뜨고 피부과 의사 유튜브를 그렇게 많이 보다 보니 … 아니 그리고 그렇게 신기한 시술 하신 것도 아니고 조금 관심 있는 한국인이라면 무난한 느낌의 메뉴들이었다.
신기한 건 강남 언니 어플 하나만으로 예약이 너무 잘 돼서 한 군데도 아니고 여러 병원을 도전하고 계셨다. 대단한데….?
그리고 알고 싶은 한국어를 가르쳐드렸다.
얼마나 걸리는지, 얼굴 씻는 데는 어딘지, 유지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성형외과 전용 한국어 수업이 되었다.
진짜 문법은 전혀 모르시고 단어 몇 개가 고작이셨다. 그런데도 이렇게 여러 차례 한국에서 얼굴을 맡기고 시술을 하셨다니. 아무것도 모르시는 게 오히려 너무 스고이 해서 ”이 한국어 실력으로 잘도 다니셨네요? “ 하니까 빵- 터지셨다.
그분을 보내고 네이티브 나자식 뭐 하는 거냐. 말도 통하는데 왜 강남에 널린 병원을 안 써먹어. 아깝다 아까워. 더 늙으면 후회에 통탄을 할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왕이면 일본에선 아직 할 수 없는 최신 시술을 하고 오리라. 강남언니 어플을 켰다. 강남 언니… 이 낯간지러운 이름은 누가 지은 것이냐. 하지만 글로벌하다. 누가 들어도 강남 언니의 목적을 꿰뚫을 거 같다.
그리고 나는 프라임 레이즈가 가능한 병원 세 군데에 카톡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니 줄줄이 답톡이 와 있었다. 깔끔하게 가격을 알려주셨다. 모두 수면마취는 가능했고
1번은 가격이 가장 싸지만 두 달 후의 예약은 안 되니까 직전에 다시 연락을 달라고 해서 탈락. 비행기랑 호텔까지 예약하려면 나는 확정일이 필요했다. 강남역 주변 호텔은 두 달 전에 이미 방이 거의 없었다.
2번은 가격이 너무 비싸서 탈락
3번 병원으로 결정했다. 가격면에서도 위치도 좋았지만 결정적으로 카톡 상담하는 직원분이 너무 인간미 있고 귀여웠다.

설레어하셔도 좋을 거래 ㅋㅋㅋㅋ

할 말은 다 끝났는데
갑자기
근데요.
하는 저 톡이 마침표까지 너무 귀여웠던 거.
나는 톡 말미에 “저는 벌써 단골 된 거 같아요~”
하니까 지나치지 않고 ㅎㅎ 기다릴게요~웃어주셨다.

병원 이름을 막 말하면 안 된다면서요?
돈 받은 건 없지만 혼자 기록해 보는 겁니다.
이렇게 개인실을 쓸 수 있었는데 침대에 전기장판을 틀어줘서 한국의 정이 느껴졌다. 8월에도 등짝 뜨신 거 기분 진짜 좋다…
수면마취 약이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몽롱한 상태에서 “선생님… 이 약 이름은 뭐예요…? 가까스로 물었다.
”미다졸람이라는 약이에요.
열심히 “미…다 졸람이요…. ” 복창하며 머릿속으로 미달이.. 순풍 산부인과 미달이.. 연상 기억법으로 약 이름을 외우려고 힘썼다. 설마 나 입 밖으로 미달이 어쩌고 한 건 아니겠지? (아직도 불안해) 20분 자고 일어났다. 아무 통증도 느껴지 않았다. 개꿀이다. 침대 있는 방에서 홍이가 인자하게 지켜줬다. 천국이 여긴가..?
내말좀 들어 봐봐봐요.
수면하는 동안 정말 달콤한 꿈을 꿨는데 나는 커다란 형광색색의 슬라임 사이에 있었다. 한 2미터 정도 되는 두께의 보드라운 슬라임 덩어리에 누워있었더니 조금 있다가 다른 핑크색 슬라임이 스윽 덮쳐서 나를 감싸고 뒹굴~ 몸을 뒤집었다. 푹신하고 쫀득한 슬라임에 몸이 감싸져 뒤집히면 다른 색 형광 슬라임이 와서 나를 반 접어서 뒹굴 뒤집었다. 너무 생생하고 기분 좋았다.

모자랑 마스크 야무지게 챙겨 감.
신속하고 영업 없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긴 말없이 다 해 주심) 친절하고 시원했다. 같이 와 준 홍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톡스 주사를 선물했다. ㅋㅋㅋㅋㅋ
프라임 레이즈의 다운 타임은 없었고 스킨 보톡스 리쥬란은 6시간 이후부터 화장이 가능했다. 엠보싱은 그날 저녁에는 이미 가라앉았다.

시술 다음 날 화장한 상태의 주사 바늘 느낌.
그리고 3일 후 비행기 탈 땐 이미 주사 바늘 자국이 거의 안 보였다! 괜찮죠?

얼빡 사진은 민망하니까 합쳐 봤습니다.
무보정 아이폰 14 기본 카메라
1. 시술 당일 저녁 주삿바늘 쌩얼
2. 이건 6일 후, 둥둥이랑 카톡 하다가 너, 얼굴 그래서 지금은 어떤데? 하니까 밥 먹다 찍어서 보낸 쌩얼.
최대한 무표정을 보냈더니 둥둥이가 팔자주름이 엄청 옅어졌다고 이건 프라임 레이즈 효과 맞다고 확신해 줬다. 친한 사람들끼리 찾을 수 있는 효과는 있습니다. ㅋㅋ
3. 시술 후 10일 후 정도. 조명 탓도 있는데 스킨 보톡스의 효과가 맞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나오기 시작해서인지 모공이 많이 줄었음. 기름도 줄었음. 오오…
4. 22일 후 약간의 속광이 나옴.
가장 좋았던 건 수면마취 → 스킨 보톡스 →프라임 레이즈 →리쥬란
스킨 보톡스가 얇게 도포돼서 잔주름이 없어지고 전체적으로 회춘했다. 스킨 보톡스는 진짜 부라보!! 레이저는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지만 가격이 아직 많이 비싸서 좀 더 저렴한 고주파 쪽을 도전해보고 싶고 리쥬란은 소문만큼… 모르겠다. 용량을 늘려볼 생각.
이랬습니다. 그나저나 실제로 강남의 카운셀러님 말투에서 랄랄의 쪼를 느꼈다. 그 특유의 말투가 진짜 녹아있더라는. 연예인 본 것처럼 신기해서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미리 렌즈를 빼는 바람에 (수면 마취할 때 렌즈를 빼야 합니다.) 눈에 아무것도 안 보여서 두더지처럼 이것저것 더듬기만 하고 있었다. ㅋㅋㅋㅋ 다음엔 상담 후에 빼야겠다 하는 교훈을 얻음. 이것 저것 많이 배웠다.
일본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탑승해서 속속 들어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혼자 온 여자 승객들이 많았다. 다들 코에 부목 대고 있고 눈이 부어있고 얼굴에 주사 바늘 자국 있고 모자를 눌러쓰고 들어왔다. 굿잡. 모두모두 즐거웠기를.
나는 미용실에서 머리하고 네일샵에서 손톱 하고 온 날처럼 너무 즐거웠다. 새 취미가 생겼습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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