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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인테리어는 거의 다 됐다. 너무나 아늑해서 궁궐도 부럽지 않다.

이런 서랍도 옴.
한 달 기다렸다.
진짜 오는 게 맞나. 내 주문이 확실히 들어갔을까. 사기당한 거 아닐까.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의심을 누르고 두고 봤는데 무사히 도착했다. 철제에 모서리 부분도 고급스럽게 둥글고 사진보다 훨씬 예뻐서 후회 없는 쇼핑이었다.

포스터도 왔음. 뭔가 이력 있는 작가의 작품이 틀림없다 잘 모르지만... 싸지 않았다.

신기하게 지금 읽고 있는 영어 원서와 한국 소설 커버가 오렌지 색이다. 스카이블루 X오렌지 컬러가 테마인 집주인에게 잘 보이려는 것 마냥.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보이는 곳마다 빼이보릿 조명과 소품을 배치하고 차은우까지 보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곧 믿을 수 없는 증상을 겪게 된다.
이렇게 일주일 집에 있었더니 온몸이 아파왔다.

예쁜 내 방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면 허리가 아프고 예쁜 거실 소파에서 영화를 보면 모가지가 아프고 예쁜 거실 다이닝 테이블에서 컴퓨터를 하면 어깨가 아프고. 집에 있으면 편한 거 아니었어...?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독방 수감자도 아니고 침묵의 고통이잖아. 계속 뭘 시청하니까 눈이 뻑뻑해... 왜 알바할 때보다 더 온몸이 아픈 거 같지??

이게 바로 그...어른들이 말하는 조.. 좀이 쑤시는 건가??!

내 친구 중에 프로 집순이가 있다. 전생에 달팽이였을 게 분명하다. 집과 하나가 되어 있는 그 아이에게 물어봤다. 어떤 자세로 집에 있는 거야? 침대? 아님 소파? 어떻게 해야 안 아파?
그녀가 말했다.
... 네? 아프다고요? 어떤 자세로도 안 아파요.
기본 침대고요. 최소 3일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어요.

그렇구나. 그런 것도 개인차가 있는 거구나. 어마어마한 벽을 느낀 나는 집순이가 되려는 꿈을 접고 당일 알바를 검색하기 시작하는 나를 보고 나도 내가 어이없었다. (당일 알바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그래서 나는 다음 날 집을 나와 멀리 머얼~리 가는 기차를 탔다.

북적거리는 이케부쿠로 환승역에서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하면서도 짜증스럽지 않았다. 와! 닝겐들이다! 내 종족이다! 무인도에 갇혔다가 구조당한 사람의 심정은 이럴까.

고작 오니기리랑 시금치 반찬을 기차에서 먹으면서도 신난다. 난 지금 어딘가로 떠나고 있어!

우주가 나를 도와 사고 싶어질 수도 있지-라는 신의 계시를 기다리며 구경 했다. 하염없이 걸으며 눈으로 담으며 싸 돌아다닌다.

만보를 걸었다.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가볍다.
화면 속의 인테리어 유투버를 보는 것보다 진짜 소품들을 보는 게 좋았다.

한 시간을 기차 타고 온 도쿄 외곽의 쇼핑몰에서 나는 이 손수건을 하나 사 왔다.


그다음 날은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온천 목욕탕에 갔다. 찜질방 스타일로 하루 종일 뒹굴 수 있는 곳이었다. 역에서 멀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갔는데도 전혀 짜증스럽지 않았다. 나는 또 한 번 시원한 에어컨 빵빵한 집보다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해야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사람이란 걸 확인하고 만다.

도쿄에서 손꼽히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천연 온천탕.

집에 갈 땐 셔틀버스 타야겠다.
실내와 실외의 냉온탕을 뜨차뜨차 오고 갔다. 내가 당면이었으면 아주 실허게 탱탱해졌을 것이다.

온천에 있는 식당에서 산라탕을 먹었다.
그리고 또 노천 온천을 즐기고 있는데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천둥 번개가 치고 우르릉 쾅쾅 마구 게릴라 호우가 내렸다. 노천탕엔 지붕이 뻥 뚫려 있어 천둥 번개 소나기를 맞는 게 어마어마하게 재밌었다. 아주 벌거벗고 하늘에서 내리는 천벌을 받는 이브의 기분이랄까. 젖을 옷이 없으니 몸을 피할 필요도 없다. 와! 쏟아져라! 퍼부어라! 겁나 재밌다!!

하늘에서 주최하는 한바탕 쇼를 관람하고 역으로 향했다.

매우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집이 아니어서 즐거운 이유는 언제나 예상 불가능한 일은 바깥세상에 나가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똑같은 일상과 예측 가능한 일에는 스트레스가 따르지 않지만 그건 그 어떤 자극도 동반하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다음 날에는 이제 작정하고 런치를 예약했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FANCL 식당에 갔다. 화장품 회사에서 만든 헬씨 한 일식집이다.

카운터 자리에 나처럼 혼자 온 여자분이 옆에 계셨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저분도 집에 있는 거 참 싫은 분이 아닐까. ㅋㅋ

현미밥 (리필 가능) 여러 가지 정식.
다 맛있었다. 다!!!
소스도 맛있고 재료도 신선해.

디저트와 함께 나온 차가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하셨다.
조심했는데도 너무 뜨거워서 흠칫 놀라 앗 뜨거워!  잡았던 손을 화들짝 뗐는데 옆에 나처럼 혼자 오신 분도 복붙처럼 똑같은 제스처를 하셔서 속으로 웃었다. 아 우리 친해질 수 있을 거 같아요ㅋㅋㅋ

밥 먹고 마루노우치 피카디리에서 영화를 봤다.
<트로피>라는 재일교포 감독의 영화였다.
연기하는 주인공 여자가 실제 재일교포라서 교포 발음의 한국어가 너무 리얼했다. 일본에 있는 조선 학교가 배경이라서 북한에 뿌리를 둔 재일교포들은 저런 교육을 받는구나 모르는 일들을 많이 알게 됐다.
주인공 아빠가 본 적도 없는 북한에 대한 감사함을 계속 간직하는 씬이 많이 나오길래 궁금해서 여기저기 의견을 물어보니까 어떤 분이 가르쳐주셨다.  남북이 분단되고 남쪽은 너무 어렵고 못살아서 재일동포까지 신경을 못 썼지만 의외로 북한은 일본에 있는 교포들에게 지원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학교에도 돈을 많이 보내 조선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전폭적으로. 오...몰랐던 사실이었다.

오늘의 나들이 끝.
전 요즘도 자주 나갑니다.
더워도 나갑니다.
그래도 집에 들어오면 집이 예뻐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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