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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영어 수업을 오로지 오챠노미즈 교실에서만 받고 있다. 그래서 자주 보는 소부센과 츄오센의 크로스 풍경.

여러 군데서 수업을 받아봤지만 가장 전문적이고 진짜 내게 회화를 시켜주는 선생님이 있다. 상대적으로 다른 선생님 수업을 듣는 게 굉장히 돈 아까워질 정도로. 사립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 본업이고 저녁이랑 주말에만 학원 강사를 하는 분이다. 그 사립 고등학생들이 저분이 얼마나 좋은 영어 강사인지 알았으면. 어릴 땐 네이티브 중에도 좋은 영어 선생님과 아닌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
가끔 놀랍도록 선생님의 재치가 빛나는 순간에는 한국어 수업에 써먹을 수 있게 한국어로 작게 메모를 해 둔다. 영어도 배우고 티칭 법도 뽑아먹는 일석이조. 예를 들면 슬슬 학생 말이 끝날 법한 순간에 Tell me more~ 하며 지긋이 웃으시는데 그 한마디로 관심과 자유로움을 한 몸에 받는다. 네, 아니오.로 끝낼 수 없게 주관식을 때려버리면서 아주 부드럽게 분위기를 이끄는 스킬.
그리고 은근히 자기 이야기를 최소한으로 하신다. 늘 자기 이야기를 한 두 마디로 끝내고 넌 어때? 그런 적 있니? 하며 반드시 학생한테 발언권을 토스한다. 정말 고급 스킬 아닌가.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나면 오늘 정말 말 많이 했다, 뇌가 영어 단어 찾느라 팽팽 돌았다는 느낌으로 꽉 차게 해 주시는 분.

오랜만에 피부 레이저 받으러 긴자에 갔다. 출산하고 토닝 레이저를 꾸준히 받고 있다. 이제 십 년이 된다. 그동안 여드름 흉터도 정말 많이 옅어졌고 피부 톤도 균일해졌다. 패인 곳이 채워진다던가 모공이 사라지는 이런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수많은 결점 중에 얼룩을 개선해서 그나마 좋아 보이는 착시효과는 얻었다. 문제가 대여섯 개 있는 거보다는 한 두 개 있는 게 당연히 나으니까.
근처 되게 긴자스러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오픈 전부터 어머님들이 잔뜩 줄을 서 있었다. 잘 찾아왔군.

긴자스럽다는 말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 중에 오래됐는데 유럽풍인 분위기.


아무튼 레스토랑보다는 양식당이란 말이 잘 어울릴 거 같은 느낌. 되게 긴자스럽다. 억지로 의도한 게 아니라 실제 이런 스타일이 유행할 때 오픈한 곳이 쭉 영업을 이어 온 가게들.

유명하다는 해물 스파게티가… 너무 맛있었다. 달달해서 고급스러운 일식 나폴리탄 같았다.


긴자 유니끌로 1층에 거대한 디스플레이 앞에서 혼자 피식했다. 고작 츄리닝들이 칼군무로 그네를 타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계속 보고 있으니 고요히 웃겼다.


이것도 긴자스러워.



오랜만에 혼자 온 동네 카페.
독일식으로 빵 만드는 집.
잠시 끊었던 설탕을 또 한참 퍼묵퍼묵했다. 스트레스 쌓이면 나는 그 보상으로 내 몸에 단 걸 때려 붓는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 좀 나아지는 게 너무 신기하다.
같이 일하는 알바생 중에 진짜 드럽게 게으르고 일 안 하는 여자애가 있다. 머리가 좋아서 흐름과 매뉴얼을 순식간에 습득했다는 걸 느꼈다. 근데 안 해. 미루고 못 본 척, 몰랐던 척, 자기는 다른 일로 바쁜 척. 물증은 없고 심증뿐이지만 나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모두가 같은 심증을 가지고 있다는 건 걘 유죄다. 그래서 우린 모두가 그녀의 졸업을 기다렸다. 앞으로 몇 개월 후엔 졸업할 거니까… 그런데 지난 2월 그녀는 취업을 못했다. 그리고 돈 벌어서 다른 전문대를 갈 거래. 전문대 입학을 한 게 아니고… 돈 벌어서 모이면 갈 거라고? 기약 없이 또 알바를 하겠네…
걔랑 같이 일 할 때 제일 참기 어려운 게 뭐냐면, 나를 포함해서 먼저 들어온 경력자들이 우선순위 같은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있다. 아니 그런 일은 수 없이 당연히 생기는데 그럴때마다 대답도 안 하고 째리면서 그날 하루 종일 입을 꾹 닫는다는 거다. 쎄해… 그래서 지적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한껏 담아 업무적 지시스럽게도 말해보고 잡담 사이에 끼어서 자연스럽게도 말해봤는데 어이없게 다 삐졌다. 모두가 한 번씩 당하고 그냥 이제 내버려 둔다. 아무도 걔한테 일에 관한 터치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아무한테도 말 못한 애로사항... 여름만 되면 그녀의 체취가 멀미를 일으킬정도로 고약하다. 숨 쉬기도 힘들어서 같은 공간에 있기가 싫다. 이런 체질을 뭐라고 헐뜯을 수는 없으니 도라버림.
5월에 하도 같이 일하는 시간이 겹쳐서 난 퇴근하고 일일 일케잌을 퍼 먹어야 했다. 그래도 절대 앞에서 따지거나 큰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나는 묵묵히 내 할 일 하기. 없는 셈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다. 그리고 다른 알바생들하고는 재미있게 일 서로서로 도우며 화기애애하게 지내기.
넌 이런 동료애나 협업의 즐거움을 평생 모르면서 외롭게 늙는 거야. 너의 인생에 얼마나 큰 손해인지 직접 체험해라. 내 에너지와 감정을 소비하면서 너한테 알려주지 않을 거다.
대신 점장님한테 그 게으른 애의 성향과 일 스타일을 낱낱이 흘려놨다. 나는 뭐든 잡담과 수다로 위장하는 능력이 초큼 있그등요. 점장님은 열심히 조리 업무에 몰두하다가도 걔가 농땡이 부리는 것 같으면 불러와서 구체적인 일을 시켰다. 참 그런 애들은 또 권력에 약해서 점장 앞에서는 삐지지도 않고 얼마나 열심히 하는 척하는지. 아우 얄미워.
무거운 걸 드는 작업을 대놓고 안 하길래 00시 까지는 저거 해야 하는데… 하니까 (혼잣말 작전은 가끔 씀) 그걸 듣고는 생리통 때문에 허리가 아파서 무거운 건 못 든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도 지지난주도 생리통 어쩌고 그랬지 않나. 생리를 몇 주를 하는 거야? 알바를 오지 말고 그럼 병원엘 가.... 라는 말을 속으로 했다. 여러모로 빡치게 하는 재주가 있다..



어떤 작은 일이라도 맡은 임무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의 태도가 보인다. 몇년 전에 기가막히게 일 잘하는 여자 대학생이 있었다. 유니끌로에서 알바하다가 옮겨 온 아이였다. 유니끌로 일이 힘들다는 소문이 맞는 건지 아니면 그 친구가 눈치 코치 센스 만점에 민첩하고 힘도 센 건지. 정말 본사에서 나온 사람 뺨 칠 정도로 세세한 곳까지 놓치지않고 일하는 아이였다. 거기다가 빠르고 명석했다. 항상 웃는 얼굴을 하니까 물어보기도 부탁하기도 편하게 만들어줬다. 처음와서 각종 기계랑 메뉴를 가르쳐준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금새 서빙에서 키친까지 모든 업무를 섭렵해 정사원처럼 가게 하나를 핸들링했다. 금방 사람들하고도 친해져서 근처 매니저, 과장님 부장님 에리어 총괄 사원들하고 으쌰으쌰 술자리에서 친분도 쌓고 오더라. ㅎㅎ
그 친구가 일한 다음 날 출근하면 바닥이며 화장실 청소까지 완벽하고 파일 정리, 물건 정리, 재고도 꽉꽉 차 있었다. 간단한 서비스업을 이런 경지에까지 올릴 수 있구나. 지루해질 뻔한 아르바이트의 또 다른 스테이지를 깨달은 계기였다. 나보다 스무 살 어린 그 친구의 일하는 방식을 어깨 너머로 배우고 따라했고 처음으로 그만 둘 때 내가 먼저 연락처 물어봐서 가끔 연락해도 되냐고 했다. 거물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ㅎㅎㅎ 그 해 졸업하는 대학생 중에 그 친구가 가장 빨리 취업을 했다. 이미 인생 설계가 되어 있는 친구였다. 차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중고차 회사에 딜러로 입사했다. 나중에 거길 사 들일지도 모른다.
소소하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에도 여러 인간 군상을 만나며 마흔 다섯의 나이가 무색하도록 여전히 배우고 있구나. 아니 이런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배우는 자세가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나타날 빌런들아 와라. 난 두렵지 않아. 내가 다 너희들을 반면 교사로 접수하겠다. 미리 고맙다.


잠이 안 온다고 잠깐 옆에 눕는다더니 기절. 요즘 품 안의 자식이란 말이 뭔지 알았다. 이렇게 품에 들어올 때까지만 내 새끼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점점 너의 세계에서 바빠지는 너. 자꾸 멀어져 가는 너. 지금이 마지막 내 자식일 것 같은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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