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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하는 여자

홍콩 밀크티

Dong히 2026. 6. 11. 19:37

관광객 하나 없는 주택가에 홍콩식 디저트 가게가 오픈을 했다. 우리 지역 사람 모두가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와… 개뜬금없다… 그나저나 홍콩에 가 본 적 없어서 매우 신기했다. 두툼한 빵에 사악하도록 육실한 버터를 꽂은 빵을 팔았다. 모 아니면 도인 음식이다. 버터에 환장하는 나는 한 입에 반해버렸다. 역시나 구글 리뷰에 빵에 버터 퍼 먹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맛이라며 혹평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같이 느끼해서 좋은 사람도 있지만 느끼한 게 싫은 사람에겐 어이없는 음식일 거 같다. 파인애플 번이라고도 하고 보로바오라는 이름이었다.

페트병에 소분해서 홍콩 밀크티도 팔았다. 홍콩식이라고 누누이 강조한 폰트가 궁금해서 검색해 봤다. 대만식이나 로열 밀크티하고는 좀 다른가 보다. 영국 식민지 때 영향을 씨게 받아 매우 진한 차라고 한다. 그리고 우유가 아니고 연유를 넣어 만드는 것 같았다. 여름 한정으로 레몬티도 있었다.

간판 메뉴인 밀크티랑 보로바오는 놔두고 레몬티가 궁금했던 하루. 기회가 되면 꼭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오늘 마침 그런 기회가 왔다. 집에 가는 길에 폐점시간 몇 분 남겨놓고 가게문이 열려있는 걸 발견했다. 늘 보이던 아르바이트생은 집에 가고 오너인 거 같은 아주머니가 마감을 하고 있었다.
-아직 하시나요?
기웃거리며 물어봤는데 충격적이게도…

사장님은 일본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하이나 스미마셍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가게를 임대하고 장사를 시작할 정도면 말이다. 그런데 정말 어어… 아아… 음음… 하며 필사적으로 핸드폰을 찾고 계셨다.

나는 내 안의 놀라운 임기응변 세포들이 일하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십여 년 전에 대만에 놀러 갔을 때 써먹던 중국어가 튀어나왔다.
-레몬티  메이여우?
하루가 튀어나오게 휘둥그레 진 눈을 하고 나를 봤다.
-엄마 지금 뭐…. 뭐라고 했어?
-레몬티 없냐고 물어봤어.

중국어가 들리자 갑자기 사장님이 방긋 웃더니 금세 인상을 찡그리고 레몬티가 다 나갔다는 느낌의 말을 하셨다.
그러면 내가 궁금했던 밀크티를 사 가야겠군. 밀크티를 달라고 손짓했다. 기쁜 몸짓의 사장님이 밀크티를 챙기시며 엄청나게 긴 중국어로 쏼라쏼라 이야기하셨다. 이건 필시 내가 생각한 그거다.
-노… 워쓰 한궈런.
이번엔 더 튀어나올 거 같은 눈을 하고 하루가 나를 봤다.
-엄… 엄마 지금 뭐라고 했어???
-나보고 중국말할 수 있냐고 물어보신 거 같아서 한국 사람이라고 했어.

사장님은 어머 한국인이냐 그러냐는 눈빛으로 좋아하시며 그 와중에 밀크티랑 보로바오 세트로 하면 싼데 빵은 안 필요하냐고  끼워팔기를 시전 하셨다.

와…. 리스펙.
어떻게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데 사업자 등록해서 가게를 열었을까. 근데 빵도 팔려고 하셨어…
중화권 사람들의 놀라운 생존력은 늘 알고 있었지만 그날은 피부로 와닿았다. 가끔 일본말 못한 채로 남편 따라 왔다가 자신감 바닥났다, 집 밖에 못 나가겠다. 이런 한국 주부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가진 특정 나라 사람들은 참 좋겠다 생각했다. 바로 저거.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한 번은 끌어내야 하는 그 능력을 태생부터 타고 난 저분들.  

홍콩에서 살아본 적 있고 중국인 친구들이 많은 미니한테 이 이야기를 해줬다.

-언니 맞아요. 그분들은 그래요 ㅋㅋㅋ  제 친구 중에 일본에서 태어난 중국인이 있거든요. 아빠는 원래 일본어를 할 수 있었는데 엄마는 일본어 한마디도 못한대요. 근데 엄마도 돈을 번대요. 잘 번대요. 그리고 일본어는 여전히 못한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밀크티를 손에 들고 가게를 나가려고 할 때 홍콩 사장님이 하루를 붙들고 이렇게 말했다.
-짜. 이. 찌. 엔.
시선으로 아이를 묶어두고 무언가를 기다렸다.
따라 하라는 뜻이었다.
하루는 짜이찌엔을 따라 했다.
잘했다며 바이바이라는 말이라고 설명을 하셨다.

나는 어이가 털려서 빵 터졌다. 당신이 여기서 중국어를 가르칠 게 아니라 얘한테 일본어를 배우셔야 할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 그리고 가슴이 웅장해지도록 경외심이 차올랐다. 진짜 대단하다.

하루가 집에 뛰어 들어가 아빠한테 소리쳤다.
“아빠!!!! 엄마가 중국말로 밀크티를 샀어!!!!! 진짜 스고이요!!!!!“
계산에 없었는데 엄마의 멋짐을 폭발시켰나 보다. 여러모로  유익한 날이었다.

사진이 한 장도 없네.
아무튼 밀크티는 신기하고 맛있었다.
진하면서도 깔끔했다.
그리고 좌우당간 참 대단하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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