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내가 유독 많은지 아니면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다 가지고 사는지 문득 궁금하다.

일 끝나고 커피 한 잔 마시러 가는 빵집에서 호두 빵을 볼 때마다 부끄럽고 미안한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하루 종일 혼자 애를 보느라 억울함 가득했던 때, 사회에서 고립된 거 같아 열등감이 폭발하고 늘 표정이 온화(하다기 보다 없는) 해 보이는 케군이 퇴근하고 올 때마다 분노와 복수심까지 일던 이상한 시기. 아주 작은 일에도 가을 날 산불처럼 활활 타올라 이성을 잃으면서 지랄맞게 화를 내다가 이건 또 뭐야!! 이런 건 왜 먹지도 않으면서 사 와서 계속 저기 내버려두는 거야!! 하며 애먼 빵을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그때 작은 소리로 “여보짱이 호두 빵 좋아해서 사 온 건데….” 라던 케군. 산불이 잠잠해지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나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호두 빵을 볼 때마다 그날 일이 생각이 난다. 아주 온몸으로 큰코다쳐가며 배우는 나 같은 사람은 어디나 있을 테지만 해도 해도 너무 가혹하다. 이렇게까지 몇 번이고 부끄러울 수가.

버스를 내릴 때마다 또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내 얼뜨기 같은 운동신경을 간과하고 아무 생각 없이 폴짝 뛰어내리다가 그만 바닥과의 거리 계산에 실패해서 콱! 엎어졌다. 그때 내 입이 “엄마!!”를 불렀다. 젠장… 국적까지 밝히다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걱정스럽게 나를 일으켜줬다. 버스도 나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아마 뒤 돌아보지 않았지만 모든 승객이 엎어져서 엄마 찾는 내가 얼마나 다쳤을지 시선 집중이었겠지. 부끄럽기도 했고 내 몸치 수준에 너무 놀라서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아주 집중력을 발휘하는 습관이 생겼다.  

긴자 스탠드 바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대학 친구랑 같이 갔었는데 분위기가 좋아 보여서 들어가 칵테일을 한 잔씩 시키고 보니 사실 둘 다 알쓰였다. 한두 모금 마시고는 다시 논알코올 음료를 주문하러 갔다. 거의 그대로인 잔을 돌려주고 새로 시킨다는 게 왠지 바텐더에게 미안했다. “맛있었는데 제가 술을 못해서요… ” 능숙하게 한 마디 했으면 됐을 텐데 음악 소리 때문에 안 들렸나? “아니 정말 오해하지 마세요. 정말 맛있었어요. ”덧 붙여 말했다. 그런데 표정이 안 좋아 보이길래 갑자기 당황해서 “그니까 진짜로 진짜로 맛은 괜찮았어요~ ” 묻지도 않은 말을 계속 떠들었다.

바텐더 남자는 귀찮은듯 아아.. 됐어요. 하며 썩소를 지었다. 누가 봐도 이 바텐더한테 추파던지는 이상한 여자 됐어… 헐 짜증나… 이거 아닌데 나 왜 그랬어.
그 후로 바텐더한테 제대로 말을 못 하는 증후군을 겪고 있다.

이거 말고도 어떤 물건이나 장소를 보면 떠오르는 흑역사가 많다. 잊지도 않고 어김없이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쌓일 부끄러움들도 많이 대기 중일텐데 웬만하면 좀 보존기간 지난 부끄러움들은 폐기 좀 시켜주지. 머리 감을 때마다 어렸을 때 내 어깨에 떨어진 비듬을 놀리던 학교 남자애는 아직도 떠오른다. 나 이제 비듬 안 생기게 감는 법 잘 안다구… 이걸 어디다 전달해야 하나…  

반응형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6/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