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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건 변함없이 맞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책이 원작인 영화는 대부분 책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역 이용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었다. 그랬더니 그려지지 않았던 비주얼들을 검색해서 눈으로 확인한 후에 납득하면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또 영화보다 훨씬 디테일하고 깊은 세계관이 느껴지니까 두 번 꿀이었다.

 
해리포터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들이다. 내가 해리포터 책을 다시 들다니. 하루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해리포터 작가가 보낸 내 전용 마케터처럼 수 없이 해리포터 이야기를 해대니까 안되겠다.

그러면서 알게 됐는데 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등장인물이나 장소 같은 건 <위저딩 월드>에 찾아보면 있었다. 해리포터의 세계관을 망라해 놓은 웹 사이트가 존재했다. 심지어 거기에도 없으면 누군가 그림으로라도 그린 이미지가 검색되었다. 상상력 바닥인 나에게 참 고마운 존재였다. 예를 들면 빨간 머리 론의 방이 묘사된 장면이 있었다. 최대한 시키는 대로 상상해 봤지만 머릿속에서 시공된 인테리어는 정말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미지를 검색했다. 세상 동화같이 아늑한 방이 나왔다. 그 그림을 머릿속에 가져오자마자 훨씬 이야기가 재미있어졌다. 아무래도 판타지 소설이 어려운 건 나의 미감 문제인 것 같다. 존재하지 않은 것들을 디자인 하기엔 너무나 아마추어라서…

어렸을 때부터 온갖 예술적 재능은 다 없었다. 그림은 입체적 사고를 못했고 음악은 박자를 못 맞췄다. 중학생 때 만화를 그리면서 놀곤 했는데 그게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계속 따라 그리다 보니 풍월은 읊을 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시간만 나면 만화책을 빌려 읽고 따라 그렸다. 나의 모든 잉여시간을 그렇게 불태웠다.

내가 잘하는 건 뭐였냐면 논설문이었다. 시나 일기 독후감은 아니고 오로지 논설문이었다. 찬성인지 반대인지 정한 다음에 따박따박 따져가지고 우기는 글만 잘 썼다. 학교에서 처음 논설문을 쓴 해에 상을 받아왔다. 개근상 빼고 태어나서 처음 받은 학교 상장이었다. 느낌을 나열하거나 묘사하고 형용하는 건 막막하지만 있는 사실을 이랬고 저랬고 쌓아 올리는 건 굉장히 쉬웠다.

한 번은 익명의 건의 사항을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강제로 모든 아이들이 써야 했다.) 어차피 누가 썼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따박따박 따지는 글을 개그와 버무려 써서 냈더니 선생님이 애들 앞에서 그것만 소리 내서 읽었다. 다들 그게 누군지 궁금할 필요도 없었다. 내 얼굴이 잘 익은 고구마처럼 혼자 시뻘게졌기 때문이었다. 교실 구석에서 친한 애들이랑만 까불며 놀던 조용한 또라이 그룹이었던 나에게 ‘너 그런 애였어?’라는 시선이 쏟아져 사라지고 싶던 순간이었다.

그 재능이 지금도 잘 쓰이는 순간이 있다. 바로 부부싸움을 할 때다. 대체로 내가 지랄맞게 화를 낸 순간엔 마땅한 이유가 있다. 가끔은 마땅하지 않다. 그럴 땐 그냥 납작 엎드려 사과하면 된다. 하지만 나머지는 납득하지 아니할 수 없도록 장문의 논설문을 첨부해서 백기를 들게 만든다. 

우리가 싸웠던 그 순간 내 상황과 니 상황 거기에 내가 느꼈을 이 부정적 감정이 얼마나 상식에 기반한 것인지 서술한다. 이 과정이 전혀 어렵지 않다는 점이 정말 신의 축복이다. 내 글을 (저걸 말로는 못하는 게 신의 허점..) 읽고 항상 케군이 하는 단골 멘트가 “듣고보니 그러네.” 다.

상상력 좀 없어도 괜찮지 뭐 이렇게 실용적인 재능이 있으니까. 그래도 항상 생각한 건데 뒤로 따지는 글 쓰는 사람 말고 그때 그때 면전에 대고 현명하게 따지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그런 재치와 순발력은 어떻게 훈련할 수 있을까?

늘 케군한테 잘 따질려고 일본어 책 읽는 중.

결론 같은 건 없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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