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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러 오지만 내가 항상 존경심을 가지고 가르치는 분이 있다. 처음 만난 날 깡마른 몸매에 거의 백발에 가깝게 탈색한 머리와 형광과 야광색 포인트를 넣은 패션으로 나온 유카상은 나보다 한 살 많은 미혼이었다. 20대 때 한국에서 잠깐 유학한 경험하나로 중급 정도의 회화가 가능했다. 당시 매일 밤 홍대 클럽에 가서 한국어 습득을 했다고 한다. “여자는 입장이 무료였거든요. ㅋㅋㅋ 진짜 재밌었어요.” 그녀의 유쾌함과 외모로 나는 가볍다는 표현이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로 놀기 바쁜 사람이란 저평가를 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일을 듣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지며 잠시 가졌던 편견을 미안해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특수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자페 스펙트럼 ADHD 다운증후군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돌봐주는 특수교사였다. 힘들 것 같다는 내 말에 유카상이 정말 진심을 다해 “아뇨. 진짜 거짓말이 아니고 진짜 그런 아이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예쁘고 귀여운지 사람들은 몰라요. 저는 매일 애들이 너무 예뻐요.” 이렇게 말했다. 마음 깊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일을 원하는 유카상의 태도가 위대해 보였다.
작년부터 유카상은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들의 특수 어린이집으로 이직을 했다. 부모가 외국인이라서 일본어보다 영어로 도움을 받고 싶은 아이들의 영어 유치원이었다. 유카상이 일본에서 태어난 외국 아이들은 장애 판정이 애매한 애들이 많다는 말을 했었다. 이게 장애 문제인지 언어 문제인지 잘 몰라서 적절한 서포트를 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영어 특수 유치원은 그런 문제를 조금 덜어주는 것 같다고.
그 사립 유치원을 만든 사장님은 정말 천사 같은 분이셨다. 유치원 선생님들 사이에서 사장님 별명은 피터팬이란다. 어렵고 곤란한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서 주먹 입에 넣고 운다고 한다. 이런 사장님에게 그 유치원 외국 부모들은 얼마나 고마울까.
처음 이직하고 몇 달간 힘든 적응기간을 겪었다. 자신은 영어를 전혀 못하는데 일본어를 못하는 아이들이 반이었다. Wait을 말하고 싶은 순간에 잠깐만!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외국어 뇌가 발동하긴 하는데 영어가 아니라 유일하게 아는 한국어가 나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유카상 혼자 어이없어서 그럴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그래서 잠깐 한국어 수업에 안 나오는 줄 알았다. 영어에 집중하시려나 했는데 6개월 만에 유카상한테서 수업 예약이 들어왔다. “이야~ 정말 오랜만이에요. ” 안부를 묻고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유카상은 6개월간에 있었던 회사 일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선생님 제가 그동안 사람 자체를 만나기 싫어서 수업도 못 오고 쉬는 날엔 집에서 잠만 잤다니까요.
어느 날 온 신입 교사 리키의 이야기였다. 사장님이 신신당부해서 가여운 사람이니까 조금 문제가 있지만 잘 부탁한다며 데려왔다. ASD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영국 남자였다. 일본말 좋아하고! 약 먹고 있으니까 괜찮아! 호언장담하던 사장님 말과는 달리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했고 (좋아한댔지 잘한다고 안 했음) 정신 상태도 애들을 돌보기엔 매우 불안정해 보였다.
“불안정 하다는 건 어떤 상태였길래요?”
“맨날 실수하고 울어요. ”
“운다고요?.”
“네. 울고 있어요. 하….”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유카상은 잘 몰랐지만 영어를 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불만이 높아졌다. 리키가 하는 영어는 야릇하게 늘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그동안 우는 리키를 왜 유카상만 달래고 있는지 그제야 알았다.
유카상도 의아하게 생각한 건 팔에 있는 문신이었다. 팔 없는 나시를 입고 근무하는 것도 이상한데 그 팔에 클램프 사쿠라 애니메이션 문신이 그득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리키가 “저는 꿈이 세라문이에요. ” 라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세상이 편견 없고 차별 없는 곳이 되어간다지만 설마 로리타 콤플렉스면… 80년대생 유카상의 상식으론 너무나 쎄했다.
그렇게 유카상도 리키에 대한 호감을 잃어가고 있을 때 이미 다른 선생님들은 아예 리키를 배척시켰다. 그래서 힘들다고 무섭다고 칭얼대는 리키는 전적으로 유카상 담당이 되어버렸다. 번역기를 통해 여러 대화를 해보니 리키는 결혼을 한 게이였다. 하지만 지금 영국은 치안이 최악이고 퀴어들의 인권이 바닥에 떨어져 생명의 위협을 느껴 난민 같은 처지로 일본에 왔다고 한다. 여기서 일을 구해 비자가 나오면 남편을 데려올 거라고. 영국에서 자폐 진단은 온라인 화상 진료를 통해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의 진짜 목적을 미리 알았던 다른 교사들은 직업의식도 흐린 그의 일 태도가 당연히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선생님들끼리 모여 유치원 장식을 만들고 있었을 때였다. 필리핀 선생님이 다음 주에 필리핀에 가는데 엄마가 나 살쪘다고 뭐라 하겠네라며 소소한 수다를 떨었다. 그 말에 리키가 지금 시대에 외모 평가를 하는 필리핀 사람들이 얼마나 질 떨어진 나라인지 알만하다며 까 내렸다. 평소 말끝마다 영국 미국 이외에는 다 지네 나라 발밑인 것 마냥 우월하게 구는 리키한테 필리핀 선생님은 급기야 터졌다. 머리 끄댕이를 잡아챘다. 리키는 기집애처럼 또 맞잡았다. 필리핀 선생님은 지지 않았다. 모두가 뜯어말리고 모두가 영어로 언성을 높이며 아우성을 쳤다. 무슨 일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유카상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고 한다. (제발 빨리 무슨 일인지 알려주셈!!)
유카상은 이번 일로 눈앞에 펼쳐진 작은 지구를 1열 직관했다고 한다. 영국인이라고 다 신사는 아니며 교토 사람보다 더 말을 꼬아하고, 의외로 대놓고 하는 차별이 만연하며, 그 차별을 받아본 사람이 더 남을 차별하더라는. 필리핀 영어가 훨씬 친절하고 듣기 좋은데 영국인은 속으로는 다른 나라 영어 사용자를 얼마나 비웃는지. 리키가 있는 그 짧은 시간동안 적나라하게 다른 나라 정서를 많이느끼셨다고.
그 후 리키는 저 멀리 영어 교사가 없는 분점으로 이동했다. 사장님은 그래도 리키를 자르지 않았다. 와…
유카상은 면역력이 훅 떨어져 지병이 도졌다가 이제 좋아졌다.
나 같았으면 직장에서 누가 울든 말든 내 일 하면서 방치했을 텐데... 역시 유카상은 곤란해하는 사람을 도저히 그냥 둘 수 없는 심성이 있어 그런 것 같다고 느꼈다. 위대하도록 다정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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