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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영어 학원에 다닌 지 4년이 지났다. 누가… 태엽을 돌린 거지. 언제 이렇게 시간이… 학원에서 통용되는 레벨 시스템은 기초반이 5부터 시작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데 처음 등록할 때 기초 5를 점핑하고 느닷없이 레벨 6으로 데뷔했다. 그것만으로 기분이 찢어졌었는데 반년만에 레벨 7로 승급을 했다. 이때의 기분이란 이제 3년만 하면 팔구십… 내 영어실력이 순식간에 지붕 뚫고 하이킥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4년 내내 나는 지박령처럼 레벨 7에서 빙글빙글 원혼이 되어 떠돌고 있다.
어느 정도 알아먹고 일상대화가 되는 상태까지는 고속도로처럼 쭉쭉 나갔지만 그 후부터 퇴근길 정체 아니 눈 덮인 도로에서 고립이다.

늘고 있는 기분이 들지 않지만 그래도 4년 전의 나를 생각하면 무언가 통한다는 느낌을 알게 된 것이 짜릿하다. 그래서 급하게 뭘 더 하려 하지 않고 느긋히 이 순간을 즐기며 꾸준하게 해 보려 한다. 라며 토익이나 토플을 도전하지 않으려는 게으른 자의 핑계이지만 ㅎ..ㅎ

연말을 지나 오랜만에 학원 예약을 했다. 새로운 선생님이 보였다. 이름 옆에 있는 국기가 특이했다. 아프리카인가? 영국 선생님만 아니면 일단 예약한다. 영국 선생님 수업을 안 하는 이유는 미국 발음으로 연습하고 있는데 영국말로 따라 읽으라고 시키면 안 따라 하기도 무례하고 따라 하기도 쑥스럽다. 발음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미국 영어를 연습하는 건 그냥 보는 콘텐츠가 다 미국 거라 자연스레 정해진 것뿐이다.

아무튼 ’질파‘ 선생님과 그렇게 인사를 하고 마주 앉았다. 초콜릿 피부에 윤기가 나고 치열이 너무 아름답고 눈이 반짝반짝한 여자분이셨다. 가디비가 생각났다. 느낌도 키가 크고 모델 같은 몸매가 너무 힙했다.

나: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샘: 베네수엘라라는 나라 아세요?
나: 아 네! 제가 알던 일본인 친구가 어렸을 때 거기서 살아서 이야기 조금 들은 적 있어요.
샘: 그렇구나. 그 나라 옆에 토바고라는 나라가 있어요.
나: 아.. 베네수엘라 아니고…

으이구… 좀 끝까지 들어라. 경망스럽게 수다 떨던 다는 토바고라는 나라를 처음 들었다. 신기하다. 매우 신기하다! 그룹 수업이었지만 그 시간에 나 말고 예약한 사람이 없어서 일대일 수업이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프리 토킹을 하자고 제안해 주었다. 좋다! 매우 좋은 선생님이다!! 옳다구나 나는 토바고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다. 그전에 일단, 왜 일본에 오셨냐고 물었다. 애니 오타쿠만 일본에 갈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ㅋㅋ 각양각색 엄청나게 다양한 이유로 여기에 모인 외국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질파는 부모님이 정치인인데 아주 작은 자기 나라에서 (경기도의 절반 밖에 안된다고 함) 질파의 가족은 너무 유명해서 어딜 가나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주 멀리 매우 멀리 무조건 멀리 왔다고. 어딜 가도 자길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너무 행복하단다.

와… 재밌..어요.
나: It’s.. my honor.
영광이에요.
내 말에 질파가 빵 터져서 웃었다.
수없이 미드에서 들은 저 말을 실제로 써먹는 날이 오다니 도파민 터진다.


토바고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옆에 다닥다닥 붙은 섬이 굉장히 많은데 각각 다 다른 나라지만 카리브해 전체가 어떤 유대가 있어서 비자도 없이 이주도 이직도 막 대학도 그냥 입학해도 된단다. 의사나 간호사가 나라 건너 왕진도 가고 가까운 쿠바에 가장 실력 좋은 의사가 많으니까 쿠바로 고치러 가기도 한다고.
나: 비자가 필요 없다니… 뭐 걍 같은 나라네요?
샘: ㅋㅋㅋㅋㅋㅋ

질파와의 이야기가 너무 즐거웠던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수업에 예약했다. 다시 간 수업에서도 학생은 나 혼자였다. 일본사람들… 실수하시는 거예요. 이분 미영호주 사람 아니지만 정말 발음을 또박또박 천천히 해 주시고 해박한 선생님인데. 아깝다 아까워. 국적만 보고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놓치고 있는 것이… 두 번째 수업에서 또 선생님과 프리토킹을 할 수 있었다. 독차지하는 건 좋지만 선생님이 소외감 들까 봐 속상하다. ㅠ..ㅠ

그날은 밸런타인데이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아들에게 초코를 준비할 거라고 했다.
샘: 만들어 줄 거예요?
나: No, I tried making that. But It was terrible. just too sweet, kitchen was mess.
만들어 봤는데 더럽게 맛없고 달기만 하고 부엌은 엄청 어질러졌어요.

질파가 빵 터져서 웃었다.
그리고 토바고는 정말 고급 초콜릿이 나오는 나라인데 어떤 카카오나무는 망가지기 쉬워서 정부에서 뭔가 벽을 만들어 보호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인가 롯데의 초콜릿을 먹어보고 너무 달아서 끝까지 먹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밀크 초콜릿 보다 다크 초콜릿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질파는 무조건 다크 초콜릿 파고 심지어 카카오가 75퍼센트 이상 함유 된 게 아니면 안 먹는다고 했다.

나: 75%? It isn’t a chocolate anymore?
아니 그건 더 이상 초콜릿이 아니지 않아?
내 말에 질파가 정말 여름날 불꽃처럼 빵- 해맑게 웃었다.

영어로 사람을 웃겼다. 아주 간단한 문법과 단어로 사람을 웃겼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도파민 팡팡.

어제 고디바에서 나온 두바이 맛 초코바를 먹으며 질파를 또 생각했다.

음… 달다… 질파는 못 먹겠다.
하지만 나는 잘 먹었다. ㅎㅎ
참고로 두바이 맛은 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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