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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에리카짱이 긴 도쿄 생활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야마가타로 내려갔다. 이제 더 이상 도쿄에 아쉬움이 없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기분 전환 겸 도쿄로 여행을 와도 좋고 그때 잘 가던 미용실에 머리를 맡길 수 있다면 내가 도쿄에 있을 이유는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이상한 사장과 정 없는 직장 동료들 지루한 업무와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매우 설레기까지 했다. 세타가야구의 좁고 비싼 아파트 물건들을 처분하고 마중 나온 아빠 차로 고향에 내려갔다. 널찍한 방이 기다리고 있었고 딸의 환향을 반기는 부모님들은 에리카짱의 소원대로 고양이 키우는 일을 허락하셨다.
고양이는 에리카짱이 인생의 키를 돌린 가장 큰 열쇠였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나도 고양이를 키우며 살고 싶다! 이 강렬한 마음이 싹튼 후 모든 과정은 쑥쑥 자라났다. 부모님을 가볍게 설득했고 집은 정리해 버리면 그만. 회사는 그만두면 땡. 몇 안 되는 친구들은 어차피 도쿄에서도 잘 못 만나는 게 현실. 덕질은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어디건 문제없었다. 왜 진작에 이런 생각을 못했나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수업 때 야마가타에서의 일들을 상상하며 그녀의 새로운 인생을 축복했다. 먼저 인터넷으로 컴퓨터 디자인 수업을 수강할 거예요. 그리고 드럼을 배우고 싶어요. 본가에는 큰 오븐이 있으니까 매일 빵도 구울 거예요. 고양이는 유기센터에서 만날 거고요. 전 사실 운전을 좋아하거든요. 차가 없으면 다닐 수 없는 시골마을이 싫지 않아요. 마치 계속 참고 있던 사람처럼 야마가타에서의 할 일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어렸을 때는 그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어떻게든 도쿄에 갈 생각만 가득했던 것이 웃음이 날 정도로.
그 후, 간간히 온라인 레슨으로 그녀를 만났다. 만날 때마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있었다. 매일 엄마 밥을 먹고 빵을 굽고 차만 타고 다닌 결과라고 했다. 진짜 둘이 터져서 엄청 웃었다. 손톱 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세심히 신경 쓴 첨단 미인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것 같은 둥글둥글한 순둥이가 되었다.
에리카짱을 야마가타에 보낸 그 해에 하루카짱이 멀리 가게 되었다며 마지막 수업을 신청해 왔다. 설마 너도? 그녀의 본가가 야마가타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네!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라며 도쿄 집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야마가타로 돌아간다고 한다. 토이 푸들 강아지처럼 생긴 하루카짱은 만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피부가 좋고 예쁘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 미인이었다. 아무리 봐도 서른둘로는 보이지 않은 엄청난 동안이기도 했다. 도대체… 야마가타 그곳은 어떤 곳이 길래 도쿄로 간 미인들을 반드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냐.
궁금함과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안고 약속한 카페에 먼저 와 기다렸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나를 발견한 하루카짱이 활짝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성격 급한 나는 그녀가 안기도 전에 호들갑을 떨었다.
“뭐야 뭐야~ 무슨 좋은 일 있는 거 맞죠? 결혼? 결혼해? 결혼하는 거 맞죠? 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ㅎ 그녀는 입에 웃음기를 고정한 채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내 얼굴이 거짓말처럼 일그러지며 찰나에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어… 어머… 어떻게… 나는 그것도 모르고…. “
눈물을 무방비하게 흘려두는 내 얼굴을 보고 하루카도 눈물을 왈칵 쏟았다. 공공장소에서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극도로 참는 일본 사람들은 이런 말도 밖에서는 덤덤하게 하려고 든다. 하지만 펑펑 울어대는 한국인 앞에서 무던한 척이 불가능했는지 하루카도 얼굴을 일그리며 그냥 울었다.
하루카짱 아버지는 위암이셨다. 너무 빠르게 악화되는 바람에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었다고 한다. 마지막엔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셔서 그걸 지켜보는 엄마가 또 고통받는 걸 보고 엄마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장례식 후 이사를 결정했다. IT 회사 인사과에 재직 중인 하루카짱은 도쿄에서도 계속 재택근무 중이었고 신입 사원 면접도 온라인으로 하는 환경이었다. 가끔 집에 있기 너무 답답해 출근을 할 정도로 회사는 그다지 나갈 이유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집이 300킬로쯤 떨어진 곳이어도 괜찮을 일이었다. 본가로 이사를 결정하고 알았지만 귀향하는 청년들을 위한 지원금도 왕창 받을 수 있었다.
마치 운명처럼 모든 것이 들어맞았다고 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그것도 모르고 결혼하는 거 아니냐고 나불댔던 일이 지난해 가장 큰 후회로 남았다. 나도 서른둘쯤에 엄마를 잃었다.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그게 얼마나 어린 나이인지 직접 겪었다. 주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한테만 이렇게 빨리 엄마를 뺏어가는게 너무 억울하고 안타까워서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아무리 순서가 없다지만 진짜 난 이렇게 어린데 너무하는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못한 청천벽력이었다. 겪고도 또 서른둘의 하루카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
연말에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자카야 마스터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 이미 70이 넘은 연세였기 때문에 슬프기보다 오히려 정말 오랫동안 버텨주신 것에 감사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할머니랑 통화하면서 편안히 잠드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다. 90년 가까이 살아낸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받아들이는 나와 하루카짱의 아버지 소식에 같이 펑펑 눈물을 흘린 나는 어딘가 모순적이었다. 4년을 함께 하면서 내게 따뜻한 추억을 한 바가지 남겨 준 건 할아버지였는데 정작 눈물이 난 건 만난 적도 없는 하루카의 아버지 소식이었다.
떠난 분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서른둘에 엄마를 잃고 내가 느꼈던 상실감이 떠올라 힘들었던 거 같다. 그걸 느꼈을 고운 하루카가 지금 얼마나 고독하고 원통할지 알 것 같아서 어둡고 깊은 구렁텅이에서 후회와 답답함으로 덮여 갇혀있는 그 기분이 한순간에 전해져서.
많이 힘들지… 너무 후회스럽지… 지나갈 거야…
나의 위로에 하루카는 사람 가득한 주말 카페에서 코가 새빨개지도록 나와 같이 울었다.
수업이 끝나고 하루카에게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제일 친한 친구 빼고 아버지 일로 눈물을 흘려준 사람은 선생님뿐이었어요. 같이 울어주셔서 감사해요. 큰 위로가 됐어요.
내 주둥아리에 너무 놀라고 미안해서 눈물이 왈칵 나왔던 것도 있는데… 그건 비밀로 해두자. 나의 눈물이 위로가 되었다니 다행이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아래<켄지 이야기>에 있습니다.
https://movingfromegloosdh.tistory.com/59
2010-02-17 켄지 이야기
켄지는 1936년 규슈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누나가 둘 형이 셋, 여동생이 둘이 있다. 소학교에 입학하기 전 병으로 어머니를 여위고 손재주가 좋은 아버지 밑에서 형제들과 자랐다. 켄지가 기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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