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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나면 어딜 자꾸 나가자고 하는 거 보니까 얘도 E 성향인 거 같다. 그래서 어디가 가고 싶은데? 산 같은 숲 같은 자연을 보고 싶단다. 동네 식물원은 빨리 문을 닫고… <메이지진구>가 떠올랐다. 도쿄 한복판의 울창하고 우거진 곳. 그러고 보니 나도 제대로 가 본 적이 없네.

하라주쿠역은 너무 복잡할 거 같아서 기타산도 역에서 내려 들어갔다.

이거야? 이거 맞지?

“응 엄마 너무 좋아. 근데 공기는 별로 생각했던 것만큼 안 좋다.”
얼마나 청정한 데를 기대한 것이냐.
요즘 자연이 좋다 노래를 한다. 이러다 속세 떠나서 살겠다고 헐벗고 나무뿌리 먹고사는 아저씨 되는 거 아니야. 세상에 이런 일이 나오는 거 아니야.. 아이의 말 몇 마디에도 이상한 걱정이 싹이 트고 또 쑥쑥 소설을 쓴다.




본당에 외국인이 정말 많았다.
시부야에서 하라주쿠 사이에 메이지진구를 찍고 가기 너무 좋은 루트 긴하지.


하…하루야…!

하루야!!
발도 안 자르고 비율 좋게 담는 거 봐.
한국사람이 애를 낳으면 전신샷 조기 교육이 자동으로 된다. ㅋㅋㅋㅋ 내가 맨날 수평 맞춰줘, 발 자르지 마. 너무 작아. 너무 커. 뒤로 가, 흔들지 마, 사람 갈 때까지 기다려 ㅋㅋㅋㅋㅋㅋ 꾸준히 한 이야기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미치겐네 왜 이렇게 웃기지. 그래도 이거 말이야. 나중에 커서 여자 친구 생기면 엄마한테 고마워할 거다.

도쿄에서 태어났는데 하라주쿠가 어딘지는 가 봐야 하지 않겠어? 지방에 사는 일본 학생들은 도쿄에서 제일 가 보고 싶은 데가 하라주쿠라는 말을 들었다.

타케시타 도오리에 왔지만 피난민처럼 빽빽한 사람들을 보자마자 하루가 뒷걸음질을 쳤다. 엄마도 늙어서 이제 너무 싫다. 후퇴!!
기타산도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카페가 보여서 간식을 먹었다. 바깥 테이블에 일본여행을 하는 외국인 가족이 5명 있었는데 그중 막내딸이 하루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하루는 필사적으로 눈을 안 마주치려고 피했다. 저 사람이 쳐다보면 하루도 쳐다봐. 뭐 어때. 했더니 눈 마주치면 웃어줘야 할 거 같아서 그게 싫다고 ㅋㅋㅋㅋ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꾸준히 다녔는데도 여전히 외국 사람들의 외향적인 제스처와 반응이 적응이 안 돼서 어쩔 줄 모르겠단다.

다섯 살 때였나? 노래하고 춤추면서 배우는 영어 교실을 다녀오더니 이런 말을 했다. 자긴 최선을 다해서 말했는데 라우더! 라우더! 래. 아니 더 어떻게 크게 하라는 거야? 그리고 자꾸 점프하래 힘들어 죽겠어. 내 텐션은 그게 아닌데 원어민 텐션에 맞추는 것도 의미 없이 뛰는 것도 너무 이상하다고 ㅋㅋㅋ
그 길로 그만두고 문법 공부 하는 곳에서 일 년 시간 낭비를 하다가 하루가 I’m good at it을 아임 굿또 앗또 있또 이러는 걸 보고 있긴 뭐가 있또 하아… 머리야… 깜짝 놀라서 그만두고 드디어 차분한 원어민 선생님과 일대일로 공부하는 곳에 정착했다가 지금은 온라인 회화로 바꿨다.
이렇게 온갖 시도를 해봤자 아직 초급 수준밖에 안 되지만 꾸준히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저것들도 안 했으면 정말… 마자 파자 브라자 하고 있었을 거다. 일본인들의 영어 습득 쉽지 않다.


절대 밖을 보지 않겠다는 의지

집에 그냥 가기 아쉽다고 해서 코리아 타운으로 향했다. 새로 생긴 슈퍼에서 하루가 이것저것 좋아하는 한국 과자를 골랐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식이지.



나는 생선구이 한상을 시키고 하루는 냉면을 먹었다. 여기 된장찌개 전문점이었는데 된장국이 진짜 맛있었다. 국이랑 볶은 김치, 갓김치, 쉰 김치. 종류별로 나온 김치만으로도 밥을 뚝딱 먹었다.
우습게도 처음 가는 가게라 두리번거리는 동안 하루는 들어오자마자 의자 등받이를 뒤로 꺾어서 뚜껑을 열고 드럼통 모양으로 드러난 의자 안에 짐을 넣어 수납했다. ㅎㅎㅎㅎㅎ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한국 음식 먹으러 다녀 본 솜씨가 나온다. 일본에는 의자를 열어 물건을 넣는 곳이 잘 없다. 의외로 한국 특유의 문화였다.
밥 먹고 나와 길거리 음식점에서 케군한테 주려고 닭강정을 포장했다. 그때 하루가 들고 다니던 슈퍼 봉지를 내가 잠깐 들고 있었는데 “엄마 하루가 들게. 엄마 무겁잖아.” 하며 하루가 내 손에서 짐을 가져갔다.
닭강정 집 아저씨가 그 소리를 듣고
“아이구!! 이런 아들 처음 봤네요. 엄마 힘들다고 자기가 든다구? 몇 살이에요?“
감격한 목소리로 말을 거셨다.
”아하하 그런가요. 열한 살이 이런 말 안 하나요?“
”세상에 그런 말 하는 아들 처음 봤어요. 저도 조카가 있는데 걔들 절대 그런 말 안해요. 잘 키우셨네. 딸 같네 딸 같아. “
한참을 침이 마르게 칭찬하시고 하루한테 오뎅 꼬치를 하나 서비스로 주셨다.
하루가 공짜로 음식을 받는 건 꼭 한국 가게에서만 있는 일이다. 받을 때마다 깜짝 놀라며 (지난번엔 우에노 한국 슈퍼에서 찰떡 붕어빵을 받았다.) 감동한다.
“이렇게 큰 오뎅을 주셨어…. 세상에… .”
일본 가게에서는 사탕 한 알이나 입가심용 민트 몇 알 받아 본 게 전부라 공짜 스케일에 믿기 힘들어한다.
열한 살 남자아이가 엄마한테 이렇게도 스윗한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봤다. 한 가지는 항상 나랑 한국어를 말할 때 주변에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니까 한국어를 누군가 들을 거라는 생각자체를 늘 안 하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잊는 거지. ㅎㅎ 그리고 하루는 자기 또래 남자아이들이랑 한국어를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들의 세계가 얼마나 와일드한지 모르니까 비교대상이 없다. 그래서 한국어에 대한 오글거리는 감각이 없다.
내가 예전에 학교에서도 이렇게 이쁘게 말하냐고 물어봤더니 이랬었다.
”아니? 학교에서 막 친절하고 이런 말 아무도 안 해. 그냥 거긴 동물원이야. 동물처럼 굴어야 돼. 그런 사회야. “
라고 했었다.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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