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언니 애프터 눈으로 예약할까요? 디너로 할까요? 몇 시가 좋아요? 그럼 예약할게요! 여기 항상 자리 없는데 드디어 예약했어요!!!
늘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예약 성공하자마자 쏘이 언니를 데려갈 생각에 한껏 신이 났는데 뭔가 주저하는 언니 대답이 맘에 걸렸다. 저도 가끔 눈치라는 게 있어요. (대개는 없어요.)
“왜요? 언니 애프터 눈 별로예요?”
“아니, 나 요즘 너무 관심 많아.”
“그럼 장소가 별로예요?”
“아니.. 그… 시간 예약하면 못 지킬까 봐 부담스러워져서…”
아하하하하하하하 아 진짜 그 생각을 못 했네요. 아이고 푸하하하하 정말로 전 상상도 못 했어요.
“언니 내가 계획해서 동선 짜서 아주 자연~스럽게 모실게요. 언니는 신경 쓰지 말아요.”
파워 J 여러분, P를 괴롭히고 싶다면 여기저기 식당에 예약을 해 두세요. 그렇게나 마음의 돌덩이였다니 언니가 너무 귀엽고 한 편으론 사람공부를 하는 기회였다.
좀 덜 친했으면 조금이라도 찜찜한 마음이 남지 않게 취소했겠지만 난 데려갈 자신이 있었고 정말 친한 한국인이랑 가고 싶은 곳이어서 밀어붙였다.
잠깐 본론 전에 이은 황태자의 생애에 대한 브리핑을 들으셔야 합니다.
이은은 고종의 아들로 1897년에 태어났다. 1907년 형 순종이 왕위에 오르자 대한제국 황태자로 책봉된다. 당시 10살이었는데 일본은 이은을 인질처럼 일본에 데려가 학습원에 유학을 시킨다. 일본의 황족이 교육을 받았던 곳이고 지금도 있는 대학교이다. 그렇게 일본 황족이 되라는 강요를 받으며 일본에서 유년기 시절을 보낸다. 무슨 심정이었을까 과연 아이덴티티에 영향을 받았을까?
그 후 일본 육군 사관학교로 진학해 일본 장교가 되었고 23살에 일본 황족인 마사코와 정략결혼을 맺게 된다. 한국 이름은 이방자 여사로 불렸다. 이방자 여사는 무슨 심정이었을까. 평생 이방자 여사는 남편이 대한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 황족들 사이에 껴주지도 않고 해방 후에도 조선 왕족으로서 한국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런 처지에도 평생 이은 곁을 지켰다.
그리고 이은은 1945년 일본 패전 후에 일본 황족 신분을 잃는다. 한국에서도 친일파라고 국적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본이 시민권과 비슷한 재일교포로서 거주만 허락했다. 그건 VISA의 일종이지 국적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무국적자로 지내야 했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적을 드디어 회복해서 이방자 여사와 함께 고국에 돌아왔다. 뇌병변으로 혼수상태였다고 한다. 세상에…. 좀 빨리 해주지… 이은은 7년 후 한국에서 사망했다. 현재 경기도 남양주 홍유릉에 안장되어 있다.
이승만 정권 때 한국 정부가 이은과 그의 아들 이구에게 한국 국적을 절대 내어주지 않았던 속사정이 뭔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생애를 대충만 훑어도 너무 가슴 아프다. 어떻게 저렇게 이리저리 치이며 살았을까 속이 곪아 썩었을 거 같다. 아들 이구는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하는 동안 한국 국적을 계속 원했지만 이뤄지지 않아서 일본으로 귀화하고 미국인과 결혼했다고 한다. 불쌍해….

그런 이은 황태자가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생활했던 곳이 여기 아카사카 클래식 하우스다.

이것저것 그대로라고 들었는데 천정도 조명도 이은 황태자가 생전에 사용했던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와….
너무 감격스러워…. 뭔가 다 슬퍼…. 예쁘고 슬퍼…
황족의 저택을 일본 정부에서 쓰다가 세이부 西武그룹이 매입해서 지금은 레스토랑과 웨딩홀이 되었다. 덕분에 지금 내가 이곳을 올 수 있는 건 좋은데 이은의 생애를 생각하면 씁쓸한 장소고.. 굉장히 복잡한 심경이 되어버린다.


가구도 패브릭도 분위기도 너무 예쁘다… 다 덮어두고 아름다운 이 건축물, 소품, 가구, 벽지, 조명을 눈에 담기 위해서라도 여긴 정말 와 볼 가치가 있다.

거기다가 영친왕의 생애를 곱씹으면 순간순간 닭살이 돋는다. ‘내가 그 장소에 와 있다는 것도! ’


사진은 굉장히 밝게 나왔지만 해가 저물고 난 뒤에 나는 두어 번 이 말을 했다.
“아우 눈 침침해. 불 좀 켜 주시지..언니 여기 어둡지 않아요?”
전기 끊기고 초만 밝힌 집처럼 등이 너무너무 어두웠다.
“나도 한국이랑 일본에서 오랫동안 백열등에 익숙해졌었는데 미국 거실은 이렇게 어둡거든. 유럽에서 자란 남편말론 거긴 다들 그렇대. 이 정도 어두컴컴한 데서 따뜻하고 노곤하게 있는 게 제일 편안하고 좋다더라?”
아… 이게 유럽의 조도(照度) 구나…. 책이랑 사진에선 알 수 없는 다른 나라 문화는 끝도 없다. 나라마다 편안하게 생각하는 불 밝기가 다를 거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새로웠다.
하지만 난 집에 갈 때까지 계속 침침해했다. 단 몇%로 유럽인은 아닌가 봅니다 ㅎㅎ




음식을 깊이 배웠고 역사에도 과심이 많고 건축물이나 미술에도 아는게 많은 언니 덕에 너무 알차고 행복하게 보냈다. 나 혼자 왔으면 지나칠 뻔 했던 게 참 많았다.

다음엔 디너를 먹으러 가야겠다.
빨리 케군이 은퇴를 했으면 좋겠다.
데리고 가서 여기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집이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 심보는 뭐지.
'도쿄와 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치죠지 吉祥寺] RISTORANTE PRIMI BACI 이탈리안 레스토랑 (6) | 2025.03.22 |
---|---|
[카구라자카 神楽坂] ゆかわ 유카와 일본 정식 (0) | 2025.03.13 |
달러 쓰는 언니가 왔다 (12) | 2025.01.26 |
[池袋이케부쿠로] RACINES / 간다 타마고켄 / KIMI 여관 카페 (9) | 2024.12.25 |
[北千住 기타센주] SLOW JET COFFEE スロージェットコーヒー (4) | 2024.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