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마리상 (가명)은 50대 주부다. 아니다. 아이들이 이미 다 컸고 이혼하고 혼자니까 그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 돌 볼 집안일이 없으시니 주부는 아닌가. 결혼도 했었고 일은 하지만 파트타임이니 주부인가? 주부였다가 마치 퇴사하면 직업이 바뀌는 것처럼 주부가 아니게 되는 순간은 오는 걸까? 그건 언젤까 애들이 독립하면? 남편이랑 이혼하면? 직장에 출근하면? 뭐지? 주부는?? ㅋㅋㅋ
서론부터 아무말…송구해요 ㅋㅋ

아무튼 마리상은 가끔 나랑 한국어 수업을 한다. 내 수업은 문법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면서 보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을 제시해 드리는 수업이라서 은근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다.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치 경제도 아니고 결국은 지금 빠진 것들, 여행 다녀온 이야기, 친구, 가족, 남친, 직장, 취미에 관한 자기의 고민과 계획이 대부분이다. 남편이나 시댁 불만은 당연하고 자기 성격에 대해서 또 남들한테 잘 말해 본 적 없는 은밀한 생각들도 듣는다.  어떤 학생이 몇 년 전 크게 사기당한 이야기를 내게 털어놨을 땐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는 이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리상은 커피와 인스턴트, 소고기, 스낵류 등등 몸에 해로울 법한 음식은 안 드신다. 비건은 아니고 소고기는 그냥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운동이 취미라서 수영 갔다가 필라테스 갔다가 저녁엔 줌바 수업을 가는 게 휴일을 보내는 최고의 코스다. 50대라는 게 믿기 않을 정도로 날씬하고 경쾌해 보이는 몸매에 줄리아로버츠처럼 큰 입과 큰 눈 투명한 피부, 한눈에 미인!!!이라는 인상이 훅 들어온다. 진심으로 멋진 분이다.  가장 동경하게 된 이유는 외모나 생활 습관보다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을 때였다.

수업은 카페에서


둘째 아들이 어릴 때 아토피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후 음식을 전부 유기농 재료와 최소한의 조미료만 쓴 건강식으로 바꾸셨고 본인도 그렇게 먹기 시작했는데 그런 과정들이 하나도 힘들지 않고 그저 너무 유익하고 재밌었다고. 신기하게도 사회인이 된 첫째 아들과 대학생이 된 둘째 아들들과 지금껏 서로가 죽고 못살게 너무너무 사이가 좋았다. 딸도 아니고 아들 둘과. 그 비결은 마리상의 남다른 관대함과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줄곧 아이들이 너무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워 육아가 힘든 적도 고민이 된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고!! 이런 게 가능합니까…??? 마리상에게 아이들은 숨 쉬는 것도 걷는 것도 먹는 것도 눈을 깜박이는 것도 그냥 다 경이롭고 그걸로 충분한 느낌이었다.

내가 숨기지 않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으시냐고 놀라자 마리상은 전남편이 착실히 양육비와 교육비를 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으니 가능했다며 겸손한 말씀을 하셨다. 아니라고요. 우리가 애들 때매 속이 썩고 터지는 건 입에 풀칠할 돈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그든요 ㅠㅠ

그러다가 한 6개월 후 수업에서 마리상의 고백 아닌 고백을 들었다. 요즘은 첫째 아들이 직장이 집에서 멀어 독립을 해서 둘째랑만 지내신단다. 아드님이 취직을 했으니 축하의 말씀을 드렸더니 손을 들어 한쪽 볼을 가리시고 속삭이듯 “사실은 첫째가 지금 가부키초에서 호스트가 됐어요~”라고 하셨다.
와- 작은 얼굴의 이국적인 외모의 마리상의 아들이라면 얼마나 화려한 얼굴일지 상상이 되었다. 넘버 원 바로 가겠는데???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걸으며 생각했다. 오가닉 재료에 무첨가 음식을 수십 년 먹였는데… 의미 없네 의미 없어. 지금쯤 말술을 몸에 붓고 있겠네… 왠지 모를 허망함이 들었다. 머릿속에 한참 동안 남의 아들에 대한 오지랖 퍼레이드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 지난 방송을 보는데. 아 잠깐 세상 구석에 있는 블로그에서 가냘프게 소리 질러 봅니다. 이 프로그램 만든 분들 진짜 천재 아니냐고요!!! 제일 재미없다는 공부를 예능으로 승화시킨 이 분들 미친 재능 아니냐고요!!!! 하루가 유아기일 때 금쪽이 방송을 보며 얻은 재미와 정보가 슬슬 어딘가 부족해지고 청소년기에 대한 불안과 막막함이 생길 즈음 티처스를 보며 진짜 포지티브 한 에너지를 많이 받고 있다. 구석구석 청소년에 대한 육아팁도 있고 저러지 말아야겠다는 경각심도 생긴다. 과연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어, 아무튼
3화 방송이었다. 공부 잘하는 외고생 아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아버지와의 갈등 장면이 있었다. 진짜 아버지의 힐책을 듣는 아들 얼굴이…. 딱 죽고 싶은 얼굴이라 보면서 눈물이 뚝뚝 나더라. 티처스가 재밌는 게 이런 소재의 이런 분위기의 방송이 갑자기 눈물이 펑 터질 때가 있다는 거다. 하아… 정말 재밌는 방송입니다.

그 장면이 지나고 조정식 강사가 자기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똑같았다고 말했다. 스무 살 이후로 벽치고 몇십 년을 계속 서먹하게 살았다고. 그러더니 옆에 있던 정승제 강사도 자기도 아버지랑 저랬다고. 그리고 여태 말도 안 하고 산다고. 아버지 사랑 같은 거 모르겠다고.
한국에서 지금 최고의 영어 일타강사랑 수학 일타강사는 아버지가 공부하라고 내몰았고 성인이 되자마자 쳐다도 안 보는 사이가 된… 그러니까 과정이 똑같았다고…?

갑자기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들의 강압적인 교육열은 결국 모두를 1등급은 만들었네…? 최고의 지식은 억지로지만 탑재되었네…?

어느 저녁, 케군이랑 둘이 밥을 먹으며 마리상 이야기랑 티처스 이야기를 해 줬다.

여보야, 애랑 연 끊고 사는 한이 있어도 어디 가서 최고란 소리 들을 만큼 공부시키고 좋은 학벌 주는 거랑 호스트가 되어도 항상 꽁냥꽁냥 사랑하며 사는 거랑 뭐가 좋아.

케군은 잠깐 연 끊는 걸 고려하는 눈치였다가 (ㅋㅋㅋㅋ 이색히ㅋㅋㅋ 좀 위험함) 동태눈을 하며 “중간…?”이라고 말했다.
사이좋은 고학력은 없냐는 눈빛이었다.

아… 진짜 ㅋㅋㅋ 동감이야.
이제부터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중간’이다.
중간을 주세요!!!!
하늘이시여 중간을!!!

재미로 읽어주세요 여긴 블로그니까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