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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우에노에 산책하러 갔다. 사실 온 가족이 같이 갔는데 가는 길에 하루가 엄마한테 너무 짜증을 내서 늬들 둘이 박물관 가. 나는 이런 기분으로 쟤랑 휴일을 못 보내겠네. 이따 만나자. 하고 우에노 안에서 헤어졌다.

여자들이 생리 전에 불안정할 때 처럼 사춘기 애들이 자기 맘이랑 다르게 빗나간 태도가 나가버린다는 걸 안다.  호르몬 핑계대고 여자들이 계속 저러다간 연인이랑 헤어지고 친구도 잃는 것처럼 사춘기라고 영원히 이해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우에노 분수대를 지나 더 안 쪽으로 들어가면 클래식한 건물들이 보인다.

국제 어린이 도서관도 클래식한 건물 중 하나인데 건축가 안도 타타오의 디자인으로 모던과 클래식이 버물버물 되어 있다.

가자마자 테라스가 보이는 식당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우에노가 사람으로 미어터질 때 국제 어린이 도서관 매점오세요. 도서관은 공짜고 이렇게 예쁜 매점에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메인 계단과 통로, 본관 쪽을 구경

계단, 창문, 천장

너무 예쁨..ㅠㅠ
책도 찾아보고 아주 옛날 일본 그림책도 읽다가 다시 돌아갑니다.

분수대 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2023년에 새로 설치된 미술 작품이 너무 인상적이라 걸음을 멈췄다. 출산의 고통을 기억나게 하는 태아에 태반까지 연상시키는 작품이… 뭉클하기보다 징그러운데 .. 나는 역시 감수성이라곤 없는 사람인가.
사진찍고 있는데 하루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어디야? 다 봤어? 내가 많이 미안해…
다행히도 우리 애기는 참 솔직해서 감사해…

재일교포 동생 수경이한테 하루가 입던 헌옷을 챙겨주면서 뭔가 아쉬워 어제 무친 마늘쫑을 나눠줬다. 마늘쫑은 일본에서도 일년 내내 쉽게 구할 수 있고 케군이 마늘을 너무 좋아해서 마늘쫑도 너무 잘 먹는다. 근데 마늘을 이렇게 자주 먹으면 곰이 사람이 되야지. 왜 점점 곰이 될까.

수경이가 그날 저녁 밥 반찬으로 먹고는 너무 좋아라하며 톡을 했다.

-언니!!! 마늘쫑 김치 너무 맛있었어!!
어 그래? 입에 맞아서 다행이다. 뭐 고추장 설탕 식초 챔기름 어쩌구 저쩌구 레시피를 전달해주면서

-근데 이런 걸 초무침 이라고 해. 식초 넣어서 버무린 거.
무침이 뭐냐면


이렇게 나물처럼 섞거나 버무린걸 무침이라고 해.

사진까지 첨부하며 하루한테 한국어 전수하듯 걸고 넘어지는 오지랖을 ㅋㅋ 펼쳤다.

그런데 수경이는 나 같애서 별로 귀담아 듣지 않고

-언니가 예전에 해 준거 비슷한 오이김치도 엄청 맛있었는데! 이거 순무로 만들어도 순무 김치 될까?

김치라했다. 재일교포(포함 외국인) 입장에선 빨갛면 다 김치 같겠지? 이거 고쳐줘 말어?

홍이와 토론이 시작됐다.
-홍아 왜 식초넣고 고추장 넣고 새콤 달콤 매콤한 초무침있잖아. 그건 김치가 아니지? 김치와 초무침의 차이는 뭘까?
-김치는 오래 보관하고 먹을 수 있지만 초무침은 빨리 먹어야지?
-어 그치? 김치는 발효가 되야겠지?
- 아 식초가 들어간 김치는 없어 언니!!
-오 좋은 기준이야.
-찾아보니까 식초가 항균작용을 해서 미생물이 번식을 오히려 억제한대
-오오!!! 이 똑똑이

수경이한테 다시 정리해서 톡을 했다.
-내 친구랑 김치에 대해 토론을 좀 해 봤거든?
*김치의 조건 : 미생물이 번식해서 발효가 되어야 함
*식초의 기능: 항균작용을 해서 균의 번식을 막음
결론 : 식초가 들어간 음식은 김치가 아니다.

그러니까 초무침으로 만든 오이는 오이김치라 하지 않아. 그리고 오이 김치는 소금에 절여서 삼투압 현상 만들어서 버무리는 과정이 필요하거든.  완전 다른 레시피가 존재하는거지.

드디어 수경이는 내 감각을 이해해줬다
-언니!!! 충격적이야. 초무침은 김치가 아니었다니!!! 하나 배웠다!!!
순간적으로 좀 민망했지만 ㅋㅋㅋ 친하니까 괜찮다.
-아…아냐..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김치란 뭘까 생각해봐서 재밌었어 수경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루한테 모든 톡을 보여주며 줄줄이 설명 해줬더니 듣는 내내 하루가 크크크크크크크크 계속 웃었다. 뭐 이런 걸 이렇게까지 엄마 집착 쩐다는 웃음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일본사람들한텐 이게 도-데모 이이 (아무래도 상관없을) 일이겠지만 수경이가 한국 가서 오징어 무침도 오징어 김치~ 굴 무침도 굴 김치~ 도라지 무침도 도라지 김치~ 이러면 어떡하지 걱정한 내 다정함이라구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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