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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학습지가 종종 날아온다. 나는 계약 안 했는데… 무료 체험하라는 뜻인가.

사진첩에 볼따구가 도드라진 사진들이 남아있다.

어릴 때 사진도 볼따구가 귀여운 사진은 비교적 오래 갖고 있는 거 같다.

생일 포함 새해, 크리스마스, 결혼기념일까지 다 무덤덤한 내가 마덜스 데이라고 감흥이 있을 리가 없는데 케군이랑 하루가 꼭 챙겨야 한다며 회전 스시집에 판을 벌렸다. 그냥 얘들이 스시가 먹고 싶은 것뿐이다. 와방 촌스러운 마덜스 스페셜 케이크가 있어서 먹었다.

너무 촌스러워서 사진 찍은 건데 엄마가 마덜스 데이를 기뻐하며 기록하는 줄 알고 엄마 사랑해~ 축하해~하며 부비부비 얼굴을 비벼온다. 이 얼굴까진 덤덤할 수 없지. 크 기여워

리모컨 자동차를 자전거에 싣고 공원에 나갔다. 또래 친구들을 그때그때 만들며 일회성 만남 (?)을 갖는 일이 많은 곳.

그날은 사람이 아니라 근육질 댕댕이가 혼자 움직이는 자동차에 반응했다.

한참 댕댕이 반응에 주변 사람들이 다 즐거웠다.

낙하산 장난감을 던지고 놀다가 파란 아저씨가 나무에 걸렸다. 그것도 세 번이나. 한 번은 내가 꼬챙이로 낑낑 뺐고  한 번은 키 큰 젊은 아빠가 빼 주시고 한 번은 독서하고 있던 학자 분위기의 아저씨가 빼 주셨다. 진짜 사람들이 도와주는 걸 즐기는 관종 가족이 아니고 뭐여 이게. 마지막엔 빡이쳤다.  
우리… 공원에서… 재밌게… 놀다 가자…응? (이글이글)이 악물고 얘기하니까 납득하고 가방에 넣었다.

몸땡이 무게는 늘었는데 얼굴은 헬쓱한 노화의 슬픔

키자니아를 몇 년 만에 다시 찾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도 키자니아는 딱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와 보니 초등학교 4학년 (올해 4학년) 에게 정말 딱이다. 직업과 노동의 의미, 경제 구조를 훨씬 깊이 이해하고 있으니까 보다 적극적으로 진심을 다해 뛰어다녔다.

개교기념일 평일 오후 시간을 노려서 와 봤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마치 주말처럼 바글바글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급하게 케군한테 당장 키자니아 주식을 사야 한다고 톡을 했다. (상장하지 않았다고 함) 미췬 바글바글했다.

하루는 정원이 차기 전에 꼭 해야 한다며 지하철 선로 교체 작업군으로 눈썹이 휘날리게 뛰었다. 이상하게 아무도 없어서 혼자 근무했다.
이렇게 내 아들… 약간 아웃사이더인가 싶은 순간이 꽤 많다. 학교에서도 4학년부터 부활동을 시작해서 희망부서를 모집했는데 제일 하고 싶고 꼭 들어가고 싶은 부서가 알고 보니 제일 인기 없는 데였다. 매일 떨어지면 어떡하지 거기 꼭 돼야 되는데 하던 불안이 무색하게 쉽사리 입부했다. 들어가니까 같은 학년은 하루를 포함해서 딱 두 명 밖에 없었다. (폐부되기 직전임 ㅋㅋ) 참고로 보드게임 클럽이었다.

지금까지 모아 둔 키자니아 머니를 전부 입금했다. 한국키자니아에서 벌어 온 돈도 환전해서 넣어두었다. 은행에 넣어두면 6개월마다 조금씩 이자가 붙는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하루는 쓰린 배를 잡고 내 돈… 내 이자… 후회의 한탄을 했다. 그리고 정말 미친 듯이 일을 해서 돈을 벌어댔다.  사실 월급보다 월급이 마법처럼 불어나는 이자가 탐나서 일을 했다는 걸 털어놓더라. 아무것도 안 했는데 돈이 생기는 거야 엄마… 은행에 넣어두는 것뿐인데… 라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중간중간 밥도 마시듯이 때우며 정말 개처럼 벌고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거 맞나 의아했으나 나는 나름대로 키자니아의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서 맞장구를 쳐 줬다.

하루가 체험하는 사이 느긋히 쉴 수 있는 보호자 라운지를 발견한 것이다. 사람이 바글바글한데도 보호자 라운지는 한산했다. 다들 우리 아이 체험하는 포동포동한 볼따구를 사진으로 영상으로 남기느라 옆에 딱 붙어있으니 이런 곳이 있어도 엄마 아빠들이 앉아있지 않았다.

하루는 오히려 엄마가 쳐다보면 조금 부끄러우니까 끝날 시간 되면 와 줄 수 있냐고 부탁해 왔다. 어이구 저는 땡큐 소 마치입니다.  

그래서 음료수 한 잔 시키고 (300엔에 무한 리필 드링크) 소설 절반을 읽고 왔다. 가게에서 파는 음식을 사서 여유 있게 먹는 것도 가능했다. 정말 꿀을 빨았다.

마지막 체험으로 꼭 해보고 싶은 걸 하자고 했더니 고르고 골라 우유 비누를 만들러 갔다. 역시 그렇게 인기 있는 체험은 아니다. 하나 더 고민했던 건 폰즈 만드는 체험이었다. 이것도 그렇게 인기 체험 아님. (신기한 좌식 특기가 틈새시장인가)

나는 내심 파일럿을 하고 싶어 할 줄 알았다. 하루는 먼지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어? 꿈이 바뀌었나? 슬쩍 물어보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체험은 다른 아이들이랑 같이 하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을 들어야 하잖아. 근데 난 너무 다 알아서 기본적인 설명을 듣는 게 지루해. 진짜로 운전하는 게 아니면 시시할 거야.
상당히 이해가 갔다.


토요일마다 레고 로봇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학원에 다니는데 학원 내의 경연대회 예선에 통과했다고 연락이 왔다. 전국 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냐는 제의에 바로 응했다. 너무 재밌겠다!!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였다. 멀리 베트남에서 온 학생도 있었다.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친구라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루는 1차 본선에서 제대로 기록도 남기지 못했다. 로봇이 말썽을 일으켰다. 가야 될 방향으로 가지 않고 헤매었다. 선생님이 트라우마라도 남기지 않게 하려는 듯 즉석에서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겨우겨우 모양새를 갖추어 어찌어찌 대회를 이어나가 주셨다.

케군이랑 난 로봇이 왜 저러는지 바로 짐작했다. 대회에 참가하려고 학원에서 로봇을 찾아와 집으로 가져온 날. 선생님이 분명 메모리의 프로그램을 아무것도 수정하지 말고 충전만 해서 그대로~ 그대~~로 대회장에 가져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하루는 집 컴퓨터에 학원 프로그램을 깔아서 로봇을 USB 연결시켰다.

안 좋은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케군이랑 나는 그냥 안 만지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냅두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조언했지만 하루는 시건방지게 아 내가 젤 잘 알아. 괜찮아~ 괜찮아~ 껄렁댔다. 정확히 뭐가 어떻게 잘못될지 근거를 제시할 수 없어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저 말이 사실이길 바랬다.

그렇게 의미도 없이 집에서 켜 본 로봇은 대회장에서 잘못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학원에서 쓰는 건 구 버전이었고 집에 새로 깔아버린 것은 신 버전이었다. 대회장에서 구 버전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로봇은 먹통이 되었던 것이다. 쯪쯪쯪… 케군과 나는 멀리서 저럴 줄 알았다는 말을 삼키며 지켜봤다.

영혼이 나간 채 하루는 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도움받아 잘 마무리했다.

대회가 끝나고 저녁밥을 먹고 집에 가서도 우리는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하루가 제일 후회하고 있는 얼굴이 역력했다.

그리고 자기 전에 내가 입을 열었다.
-하루 오늘 엄청 속상했지? 처음 가는 거였는데… 혹시 말이야 다음에 또 예선 통과해서 기회가 생기면 또 갈래?
나는 오로지 다시 도전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었다.
그런데 하루가 엄마한테만 솔직히 말하는 건데 비밀 지켜줄 수 있냐고 속닥였다.

-엄마.. 하루 있잖아… 사실은 대회 가기 싫었어.
-왜? 기대하고 있었던 거 아니야?
-처음엔 그랬는데… 집에서 로봇 연결했던 날. 뭔가 잘못된 거 그때부터 알고 있었어…

하루는 그날 이미 낌새를 차리고 아닌 척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대회장에서의 몇 시간이 아니라 가기 전 며칠 동안 내내 불안하고 부끄럽고 초조한 기분으로 지옥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어리석고 어리석어.. 아이답고 아이다워라..
이걸 또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우리 아이가 사랑스러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9살의 나는 하루보다 더 어리석은 아이여서 죽을 때까지 비밀로 했을게 틀림없다.

-엄마는 하루가 만약에 미리 말했다면 하루를 혼내거나 바보취급 하지 않고 도와줬을 거야.
-어떻게?
-아직 대회 전까지 시간이 있었으니까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해결법을 물어보고 학원에 다시 가져가서 프로그램을 바꾸거나 선생님과 상의해서 해결했을 거야.
-그랬구나…

하루는 다행히도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다시 꼭 가고 싶다고 했다. 미리 최악의 실수를 했고 대회장 분위기도 순서도 알게 돼서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진짜 동감이다. 아주 최악을 미리 겪어서 정말 다행이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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