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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여긴 설날이라고 3번이나 듣고야 외웠다. 듣고 또 잊어버리고 다른 친구한테 듣고 또 잊어버리고 ;ㅂ;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게살 좋아하는 하루.
지난 새해에 이례적으로 꽃게가 저렴했다. 집에서도 먹고 시댁에 가서 다 같이도 먹고 원없이 먹었다. 새롭게 먹일 수 있는 게 생기면 어찌나 안심되는지.

나는 우리 부부 사이에서 이렇게 편식 심한 아이가 태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케군은 자기 취향 아닌 음식이라도 눈앞에 있으면 다 먹어치우는 녀석이고 나는 내장, 비계, 닭껍질, 멍게, 해삼 혐오식품일수록 더 좋아하는 음식에 있어서는 비위 갑인 사람인데 말이다. (몇 개 못 먹는 것도 있긴 있어요ㅋㅋ)

애착인형 목 조르며 양치하는 하루
근데 애착인형은 평생에 한 개 정도인 줄 알았는데 왜 열개씩 있지 얘는….  나는 어릴 때 우리 집이 툭하면 이사 다녀서 흔한 인형하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착각했던 거 같다. 요즘 드는 생각은 언니랑 내가 극 T라 그 딴 건 더러워지면 애물단지나 될 뿐 인형들이 살아있다는 설정하에 놀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듯. 인형한텐 어떻게 애착이 생기는 것이야. 아니 자리를 차지하는 물건에게 어떻게 애착이 생기지. 쓸모가 없어지면 처분의 대상이 될 뿐. 나만 이런 소름 돋는 생각 하나? 미니멀 라이프가 가능한 사람들은 T가 아닐까?

연말에 처음으로 귤 탕후루를 사 먹어 봤는데
3분의 1 깨물어 먹었더니 바로 꼬챙이에서 떨어져 나동그라졌다. 꽂는 방향이 먹는 사람을 위한 설계가 아니다. 이분들도 한국에서 유행하는 걸 어디서 보고 올해 처음으로 만들어 본 게 아닐까.

작년에 이어 하루랑 신년 연휴에 다카오산에 다녀왔다. 또래에 비해 몸을 안 움직이는 애라곤 하지만 역시 아홉 살 체력이다. 발바닥에 스프링 달려있는 거 같애. 몇 발 짜욱도 통통 뛰며 이동하는데 늦은 밤까지 팔팔하다.

길목마다 파는 떡 먹으러 가는 아이.
초코보다 떡이 좋다는 아이.

산을 내려와서는 다카오산 역 앞에 있는 트릭아트 뮤지엄도 다녀왔다. 오래된 시골 관광시설 느낌이지만 하루는 대만족이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는지 내 사진을 엄청 찍어줬음.

꽤 오래전에 나 혼자 동네 내과를 갔었을 때 기억이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엄마랑 초등학생 딸이 먼저 와서 앉아있었다.
상황을 듣자 하니 예방접종을 맞으러 온 모양이었다. 아이 엄마가 괜찮아… 금방 끝나. 하며 아이 등을 쓸어주는데 아이는 손에 얼굴을 묻으면 아… 무서워. 어뜨케.. 공포를 이기려 안간힘을 쓰는 몸짓으로 동동거리고 있었다.
집에 고작 두 살배기 하루가 있었던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울지도 않고 자기 스스로 자기를 달래면서 침착함을 찾고 있어. 아이란 저럴 수 있구나. 뛰쳐나가지도 않고 악을 쓰거나 징징거리지도 않고 앉아서 차례를 기다린다니.

하던 내게 정말 똑같은 날이 왔다.
만 아홉 살의 하루에게 일본뇌염 4차 예방접종 통지서가 날아왔다. 신생아 때 폐렴이니 수두니 예방접종 러쉬를 퍼부어 맞고 한참 공백기를 지난 후 일본뇌염 마지막 접종이 뙇 다가온다. 어릴 땐 몰래 바늘 찔러놓고 울고 불고 난리 법석을 맞이하는 방식이었는데 세상물정 깨우친 후의 예방접종은 처음이라 꽤 걱정이 있었다.  왜 맞아야 하는지 언제 맞을 건지 어떻게 진행하는지 꼼꼼히 가르쳐주고 (이미 책이며 티비로 많이 숙지하고 있음) 다가 온 예약 날 병원을 갔다. 막판에 안 간다 그러면 어쩌나 최악의 시나리오도 그려봤지만 너무 의젓했다. 마치 감기약을 타러 온 사람처럼 진찰실 티비를 보며 그냥 기다렸다. 이름이 불리니 선생님 방에 가서 자기가 팔을 걷고 주사를 맞고 나왔다.
세상에…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
나는 몇 년 전에 내가 느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며 나한테도 이런 일이 일어나서 정말 신기함을 감출 수가 없다고 칭찬했다.

-엄마. 사실 일주일 전부터 무서웠어. 진찰실 앞에서 최고로 무서웠어.
내 말을 다 듣고 강아지 눈을 한 하루가 이렇게 말했다. ㅋㅋㅋㅋㅋㅋ

칠 년 전 내과에서 만난 여자아이와 아홉 살 하루에게 가장 기특했던 점은 친하고 편한 엄마에게 자기의 불쾌한 감정을 쏟아붓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루는 여전히 문제가 잘 안 풀릴 때 나한테 짜증을 부리기도 하지만 꼬박꼬박 혼이 나고 그게 잘못된 행동인 것을 안다.  그걸 일일이 바로잡고 따지는 것도 성가시고 진 빠지는 일인데 나는 그걸 했고 하루도 납득을 하는 순간을 우리는 층층이 쌓았다. 그런 어느 역사를 엿본 기분이었다. 예방접종도 공부도 본인을 위한 일이란 걸 알고 참아낼 수 있게 된 것…. 하루와 나의 칠 년 간의 성과를 본 것 같아서 감동적이었다. 육아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란 이렇게 너무 사소하고 훅 지나가서 잘 알 수가 없다. 미미한 기회를 곱씹게 된 그날에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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