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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주말에 큰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그런데 내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그 자리에서 고꾸라질 것처럼 졸음이 쏟아졌다. 서둘러 집에 가자 보채서 초저녁부터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로 들어갔다. 늦은 밤 나와보니 설거지 빨래는 그득그득 그대로고 아이는 재우지도 않고 거실에 자유로운 영혼들이 두 마리 … 단전에서 화가 치밀었다. 입을 굳게 닫고 너저분한 물건들을 치우고 있는데 미간의 인상이 많은 말을 하고 있었는지 케군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 얼굴 하지 말고) 말해 말해 내가 도와줄게.” 그 한마디에 장전된 총알이 오발되기 시작했다. 난 방아쇠를 당길 기력조차 없었다. 근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뭐??? 뭘 도와!!? 누가 누굴 도와?? 이거 니가 먹은 거 니가 입은 옷 니가 쓴 거. 니가 니가 한 짓을 처리하는데 왜 그게 도움이야! 왜 몸이 이렇게 힘들어도 이런 건 왜 내 일인데?? 어!!!!” 갑자기 날아든 폭격에 케군이 얼었고 하루는 굳었고 바퀴벌레처럼 둘은 후다닥 호다닥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러다 말겠지 했겠지만 그날의 내 서러움은 좀 오래갔다. 3일 동안 쌀쌀맞았고 1주일을 거의 채울 때까지 떽떽댔다. 케군은 그동안 진짜 머슴처럼 안팎의 일을 했다.
나는 내가 왜 짜증이 났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으면 이 악마의 사이클을 끊을 수 없단 걸 느꼈고 (지금까지 계속 끊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은 해결책이 필요한 거 같다.
집안일을 내가 더 많이 해서가 아니라 매번 시키는 것만 하고 말하지 않은 건 건드리지도 않아서다. 설명하고 지시하기 귀찮아서 그냥 내가 하다가 속이 문드러져서 태도에 드러나면 “말해. 그럼 하잖아. 누가 안 한대?” 이런 소리를 듣는 게 싫은 것이었다.
새로 들어온 알바가 한 명 있다 치자. 신입이 하나하나 묻고 지시한 것만 하는 건 당연하지만 걔가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도 할 일을 알아서 찾지 못하고 계속 시키는 일만 하면 잘린다고 예를 들어줬다.
이것이 첫 번째 스트레스
1. 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하는 피곤함
내가 아르바이트 끝나고 집안일 하는 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타산이 맞을 수 있다. 케군이 더 중압감과 스트레스 속에 나보다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인정한다. 근데 ‘시간’이란 자원을 똑같이 쓴다는 개념으로 보면 명백한 불평등이다.
하루가 집에 돌아오면 보통 7시간(밤 10시까지)을 내가 상대하며 숙제 봐주고 틈틈이 집안일하고 학원 셔틀 하고 위생 관리하고 개인 시간 못 갖고 시간을 점유당한다. 오히려 더 늦게까지 정리며 준비며 과제가 끊임없이 나오니까 내 시간은 훨씬 없다.
“와 내가 애한테 붙들려서 그렇지 나도 나가서 너만큼 벌 수 있어! “ 이런 말은 아니다.
“솔직히 가사 일도 급여로 따지면 연봉 장난 아니다?” 이런 말도 아니다.
이것이 두 번째 스트레스
2. 자유 시간의 불평등
마지막으로 누군 일하고 누군 뒹굴거리는 그 시간이 제일 화가 난다고 했다. (나는 학생 때도 같은 그룹 중에 얌체 같이 과제 협동 안 하고 겉도는 멤버는 대놓고 비난하는 재수탱이였다. 알바 할 때도 혼자 살살 농땡이 치는 동료가 제일 꼴 보기 싫었다) 일할 때 같이 일하고 쉴 때 같이 쉬는 것. 집안일이 누군가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닌 공동체 의식이 있을 것. 그래야 누군가 해 준 집안일에 고마움이 들고 마치지 못한 집안일을 셋이 다 같이 함께 처치하고 다 함께 뒹굴거릴 수 있으니까. 그게 맞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그게 평일이든 주말이든 우리가 다 같이 붙어서 끝내면 더 빨라지니까 함께 끝내버리고 모두가 가족의 시간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쓰레기는 누가 버리고, 평일엔 빨래를 누가 하고, 주말에 누가 뭘 하고 이런 과제와 분담은 진짜 의미 없는 일이라 말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스트레스
3.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 집안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는 공감 능력 제로의 시추에이션.
뭐 어떤 집이든 다 똑같지도 않고 성향에 따라 아님 우선순위에 따라 각 가정이 다 다를 것이다. 난 케군이 회사일로 늦게까지 일하고 있으면 안쓰럽고 맛난 거라도 차려주고 신경 쓰는데 반대의 배려는 늘 없고 확고한 자기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말을 하지~ 몰랐어라는 되풀이가 불만이었다.
한 번은 케군이 집안일을 나중에 몰아서 하면 되니까 너도 그냥 쉬어~라는 근본적으로 핀트 나간 소리를 해서 그게 왜 안 되는지 말해줄 테니 듣다가 귀가 멀고 싶냐고 물었다. 집안일은 틀어 놓은 수돗물처럼 계속해서 밀려오는 것이다. 여기에 유급 휴가도 육아 휴직도 없다. 솔직히 집안일은 그다지 힘든 일도 없다는 게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틈틈이 다 같이 조금씩 신경 써 주면 그렇다. 근데 이게 신기하게 좀 밀리면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느 날 손도 못 쓰게 되는 것이 문제다. 자 그럼 그때 되면 그건 누가 할 건지 정하다가 잔소리가 아니라 이혼소송 갈 거라고 말했다. 매일 집안을 조금씩 닦아두고 쓴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그날그날 꾸준히 빨래와 설거지를 하고 먼지가 쌓여 굳기 전에 조금씩 털어두고 눈에 보일 때 그때그때 해 두면 별 거 아니다. 내가 바라는 협조도 아직 개키지 못한 빨래를 헹거에서 빼거나 나와 있는 물건들을 다시 넣거나 하는 것들인데 눈에 버젓이 보이는 일을 일일이 “빨래 좀 헹거에서 빼줘. “ 하고 말할 때마다 위의 세 가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밀려와 극한의 복잡한 분노가 치민다.
솔루션 첫 번째, 위의 적은 내 기준, 내 감각, 내 지표를 말해주며 공감을 유도하는 것과
솔루션 두 번째, 빼곡히 우리 집에 필요한 가사의 메뉴얼을 적어내려 갔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입이 아프지 말고 한번 팔이 아프게 마지막으로 쓰자라는 심정으로. 그렇게 일일이 말해야 하는 눈치 없는 알바생이라면 메뉴얼을 찾아보라고. 누군가 그 일이 보이면 하는 거라고. 그리고 누군가 일을 하고 있으면 다 같이 붙어 도와서 끝나면 다 같이 쉬는 거라고.
내가 일주일 내내 감정 소모하면서 불편하게 굴고 나서야 온 가족이 그나마 좀 쓸만한 알바생이 되었다. 그리고 케군의 참 고마운 점은 원래 자기주장이 딱히 없는 ‘무’의 상태라 내 의견에 잘 물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게 매우 피곤하기도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행운인 것도 같다는..) 그러고 나니 마음도 누그러지고 애쓴 케군한테도 많이 고마웠다. 하필이면 예민하던 그동안 케군은 잔업이 많아 늦게 오고 주말에도 시부모님 댁의 다른 일로 바빴기 때문이다. 케군의 젖은 손을 애처로이 꼬옥 잡으며
-여보짱, 이번에는 여보짱이 위로받을 차례야. 일요일에 여보짱이 좋아하는 고기 먹으러 갈까? 이케부꾸로 파르코 옥상에 한국식 바베큐집 오픈했던데 엄청 맛있어 보이더라. 술도 무제한이래. 예약할까?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면서
-이번 주 너무 힘들오또 일도 많코 스트레스 봐봐 이거 보이지? 머리털 빠져또.
난리가 났다.
그.. 그래.. 토닥토닥
이번 주는 케군을 위한 파티야!!



엄청 피곤하고 졸렸던 문제의 공원 ㅎㅎ
그날 잔뜩 흐렸던 사진들을 보니 저기압으로 인한 두통과 컨디션 저조였던 거 같다. 요새 기압 예보해주는 어플을 다운 받았는데 경고가 뜨는 시간에 정확하게 두통이 온다. 개선하는 좋은 약이나 비타민 추천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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